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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11. 2021

신곡 지옥편 /독후감173

 단테 Dante Alighieri (1265~1321)하면 [신곡]이고 신곡神曲하면 지옥이다.

연옥도 있고 천국도 있지만 단연코 많이 인용되는 것이 지옥 편이고, 많은 책에서 조금씩 인용되는 지옥의 모습은 너무나 끔찍할 따름이다.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도 누군가 그곳을 묘사해 놓았다면 인간으로서 궁금할 것이 당연하고, 더구나 죄인들이 쉼도 없이 계속 벌을 받는 지옥은 회피하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어쩔 수없이 얼마만큼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지 자꾸만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다.

 막연히 무의식의 저 끝으로 치워 놓아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죄의 진정한 본질을 배우기 위해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를 직접 읽는다는 것은 허구를 읽고 있지만 쉽게 허구라고 말할 수 없기에 실재하는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 고난과 역경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천로역정]과는 좀 다르다.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는 죄인이 어떻게 벌을 받고 있는지, 죄인은 누구이고 어떤 죄를 지었는데 이와 같은 벌을 받고 있는지 직접 보고 느끼게 된다. 죽지도 않은 살아있는 단테가 운 좋게 지옥 여행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는 지옥의 가장 깊숙한 아홉 번째 고리에 있다.

그곳은 가장 낮고 가장 어두운 곳이다.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하늘에서 가장 먼 곳이고 가장 깊숙한 곳이기에 제일 무서운 지옥이다.

 지옥 여행은 악의 세계를 빠져나가기 전까지 더 끔찍한 지옥 구경을 하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어떤 이들이 지옥에서 죄를 받고 있을까? 어떤 죄를 받고 있을까?

가장 낮은 첫 번째 지옥의 고리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리스도보다 이전에 태어나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죄 없는 영혼들이 사는 곳이다. 육체적 고통이 없으며, 정신적 고뇌만 있을 뿐이다. 이곳을 림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는 부활했을 때 림보의 영혼들을 선별하여 천국으로 올려 보냈다.

 이렇게 지옥의 순례는 시작되어 맨 아래인 아홉 번째 고리까지 이어지면서 나는 궁금했다.

어떤 죄가 가장 무거울까? 어떤 죄를 지었을 때 더 깊숙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육욕의 죄부터 탐욕과 탐식, 분노, 인색과 낭비, 자살, 사기, 공금횡령, 불화와 분열, 질투와 교만 그리고, 배신까지.


 책 읽기를 마치고, 나는 죄의 경중을 따질 순 없었다.

모든 벌들이 끔찍하고 섬뜩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위에 있는 고리의 벌이라고 그 아래 고리의 벌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한 것은 끝이 없는 절망이다. 

벌거벗은 영혼의 숱한 무리들이 서러워 슬피 울고 있는데 모래사장 위로 거대한 불꽃들이 끊임없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불꽃은 비가 되어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부싯돌 아래의 기름처럼 모래에 불이 옮겨 붙어 고통이 배가되었다. 그 가엾은 손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춤을 췄으니, 이곳저곳으로 떨어져 새롭게 타오르는 불꽃들을 몸에서 떼어 내느라 황망했다.

 불비가 내리는 뜨거운 모래사장을 걸어야 하는 벌을 받고 있는 이들은, 만약 걸음을 멈추었을 때는 100년 동안 모래사장에 누워 불비를 맞아야 하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죄인들 바로 뒤에는 마귀 하나가 대기하고 있다가 죄인들이 열을 지어 고통의 길을 한 바퀴 돌면 하나하나에게 칼을 휘둘러 또다시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마귀에게 입은 상처는 죄인들이 길을 돌아 마귀 앞을 다시 지나기 전에 아물게 된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단테가 마주친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불평이 없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죄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뿐이다. 하긴 지옥에 가서도 그렇게 고통받는 와중에 자신의 죄를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지옥에서 모두 적용되는 규칙이 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과거와 미래를 완벽하게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일은 알지 못한다. 새로 지옥에 오는 영혼들을 통해서만 알 뿐이다.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도 어마어마하지만 자신의 과거와 미래는 뚜렷한데 현재를 알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벌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죽지 않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원하는 초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기하다.

 1300년대에 쓰인 이 글이 현재를 사는 지금도 어색하지 않으니 또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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