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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18. 2021

무기여 잘 있어라 /독후감174

 독후감이 시절을 품어야 한다면 이번 주 독후감은 논란을 품었다.

일주일이라도 논란 없는 세상사는 없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 중단과 대선후보의 가족 리스크까지 논란투성이인데 거기에 더해 책 제목까지 논란을 더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 아닌가?

영어인 책 제목은 [A Farewell to Arms]로 문제없이 쓰이지만 한국어 맞춤법 기준으로 민음사의 책 제목은 [무기여 잘 있어라]이다.




 두 번째 논란은 책 내용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논란거리였다.

미국 청년 프레더릭 헨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 전선에 앰뷸런스 부대의 장교로 참전한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영국 출신의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만나고,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전투에서 연합군이 대패해 퇴각하던 중 탈영 혐의로 총살당할 위기까지 처하지만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밀라노까지 돌아온다. 다시 만난 프레더릭과 캐서린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에서 출산을 기다리며 잠시나마 평온한 행복을 누리지만, 결국 아기와 캐서린 모두를 잃게 된다.


 이것이 소설의 결말인가?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마지막 페이지를 닫고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책 제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좀 더 전쟁의 참혹한 면면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래서 전쟁은 옳지 않다는 교훈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독서의 여운이 찾아온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프레더릭은 홀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건축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탈리아군에 입대했다. 이 무렵 그는 음주와 섹스 말고는 뚜렷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삶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캐서린의 출산을 기다리던 프레더릭은 달랐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 온갖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 그리고, 캐서린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고, 이와 같은 소통이야말로 삶을 충만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무기’와 안녕을 고하는 방법을 책을 읽으면서 나 혼자 상상한다.

프레더릭이 스위스에 머물 동안 아흔네 살의 백작과 당구를 치고 나누는 둘의 대화에서 나 혼자 소설의 복선을 찾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백작님도 영원히 삶을 누리시기 빕니다.”

(중략) “나는 늘 경건해지기를 바라 왔어. 내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신앙인으로 죽었지.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나는 그래 지지가 않더라고.”

“아직 때가 이른가 보죠.”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지. 너무 오래 살아서 종교적인 감정이 없어졌나 봐.”

“저한테는 그런 감정이 밤에만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하고 있군. 잊지 말게나, 그것이 종교적인 감정이라는 걸.”

“그렇게 믿으십니까?”

“물론이지.”

 이미 군인이기를 포기한 프레더릭이 혹시 종교인으로 귀의하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았지만 소설은 내가 아닌 헤밍웨이 씨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전쟁소설에서 전투의 위치와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전선의 지도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갈리아 전기 Commentarii de Bello Gallico]에서도 그랬고, 올 초에 읽은 [일리아스 ILIAS]에서도 그랬다. 읽는 동시에 지도를 참조하면 훨씬 글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무기여 잘 있어라]에도 지도가 첨부되어 있지만 한 번도 지도를 쳐다보지 않으며 읽었다. 

짧지 않은 소설임에도 읽는 동안 지루함이나 어려움이 없다.

이때부터 시작된 헤밍웨이의 저력은 [노인과 바다]까지 쭈욱 이어지는 듯싶다.

역시 헤밍웨이다! 의미 있는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게 만드는 독서의 여운이 아직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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