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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15. 2022

톰 소여의 모험 /독후감178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중 누가 더 셀까?

살다 보면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는 웃음이 슬쩍 새어 나오는 질문을 만들어낼 기회가 좀처럼 없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절로 생겨난다. ‘로봇 태권브이와 그레이트 마징가 (아닌가? 그랜다이져였나??)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와 같은 어릴 적 터무니없는 질문들이 소환된다.

 그런데, 정말로 누가 이길까?

톰 소여가 아마도 조금 더 우세하긴 할 듯하다. 둘은 140년 전 미국 남부 미시시피 강 지류의 작은 시골 마을인 세인트 피터즈버그의 동네 친구인데, 둘이 해적 놀이를 하거나 도적 놀이를 하게 되면 주로 톰 자신이 두목 역할을 차지하고 허클베리는 그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대부분의 놀이 구상을 톰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톰은 책이라도 읽어 허클베리보다는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둘이 싸울 일은 없다.

어른인 입장에서 보아도 둘은 참으로 뒤끝도 없고 쿨~한 친구사이다. 대화를 통해 결정을 하며 무엇보다도 솔직하고 서로의 처한 상황을 인정해준다.




 톰은 이모네 집에서 살며 학교도 다니고 교회학교에도 다녀야만 하는 그래도 어른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지만, 허클베리는 마을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의 아들로 부랑아 취급을 받는 아이다. 싸움질을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자기가 좋으면 아무리 늦게 자도 괜찮다. 봄에는 항상 가장 먼저 맨발로 돌아다니고 가을에는 가장 늦게 신발을 신었다. 절대로 씻지 않으며, 깨끗한 옷을 입지도 않았다. 게다가 욕도 아주 잘한다.

한마디로 톰은 이런 허클베리를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아이’라고 생각했으니 이 책의 모든 독후감에는 ‘신난다!!’라는 단어가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맞다.


공깃돌 열두 개, 구금(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타는 원시적인 금속 현악기) 하나, 투명한 파란색 유리병 하나, 대포처럼 생긴 실패, 아무 자물쇠에도 맞지 않는 열쇠 하나, 분필 한 토막, 유리병 마개, 양철 병정, 올챙이 두 마리, 폭죽 여섯 개, 애꾸눈 새끼 고양이, 놋쇠로 만든 문손잡이, 개 목줄(개는 없음), 칼자루, 오렌지 껍질 네 조각, 못 쓰는 헌 창틀.

내가 책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문구였다.

어린 시절이 소환되지 않으면 지금 마음이 너무나 딱딱해진 것이다. 말랑말랑해질 수 있도록 가끔 회상에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충무로 대한극장에 영화 ‘구니스 GOONIES’ 보러 가는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또 한 장면이 더 있는데 어릴 적 잠자리에 누우면 죽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방에 불을 껐으니 어둡기도 어두웠지만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시작되면 끝도 없이 계속 깜깜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상태를 평생이 아니라 무한하게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천국과 지옥을 상상했다기보단 무한대의 칠흑 같은 어둠을 상상했었나 보다.


 내가 폴리 이모라면 톰에게 과연 얼마나 관대할 수 있었을까?

자는 척을 하다 창문으로 몰래 집을 나가 동트기 전에 들어온다면 나는 얼마나 화가 날까? 학교를 빼먹고 실컷 놀러 다닌다면? 해적이 되겠다고 집을 나가 며칠 후 자신의 장례식에 나타난 톰을 과연 용서할까? 보물을 찾겠다고 동네 부랑자 아이랑 유령의 집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아! 벌써 두통이 온다.

 그래도 누명을 쓴 머프 포터 영감을 위해 용기 있게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고, 며칠 동안 길을 잃은 동굴에서 끝까지 탈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톰이다. 가장 멋진 사실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거침없이 솔직하다. 내가 보물을 찾았다면 일단 먼저 어디 에곤 숨겨놓았겠지만 결국 찾은 금화를 어른들 앞에서 수북하게 쏟아 놓았다. 돈을 다 세어 보니 1만 2천 달러가 조금 넘는다. 그 시절 목사님의 연봉이 365 달러였고, 일주일에 1달러 25센트만 있으면 아이 하나를 먹이고 재우고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돈이었으니 정말로 모험에서 보물을 찾은 톰이 되었다.




 거침없이 금화를 쏟아 놓을 수 있었던 톰은 금화보다 모험에 진심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군상들은 현금에 진심이지만 톰은 모험에 진심이다. 어쩌면 모험에 진심인 사람만이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험을 한답시고 밤낮없이 동네 전체를 들쑤시고 다니는 톰에게 잔소리를 참을 수는 없었지만, 결국 나도 톰 소여의 모험에 빠져 어린 시절도 회상해보고 그가 만들어주는 통쾌함을 신나게 느꼈다. 여전히 톰과 허클베리는 잘 지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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