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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22. 2022

지킬 박사와 하이드 /독후감179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책일 만큼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중인격과 자아 분열에 대한 대명사와 같은 소설이다. 신실하고 한결같이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들 알 것이다.

 남이 쳐다보지 않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갑자기 요즘 대선주자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하이드를 숨기고 있을까?

 지킬 박사는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약을 먹고 변한 하이드의 모습은 지킬 박사보다 훨씬 작고 호리호리하고 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이었다면 하이드의 모습은 우람하고 큰 덩치의 인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누구든 지킬 박사가 만든 약을 먹는다면 하이드가 튀어나올 것이다.

어떤 이는 스머프처럼 작은 하이드가 튀어나올 것이고, 어떤 이는 헐크처럼 떡대가 좋은 하이드가 나타날 것이다. 하이드의 크기를 떠나서 약을 먹는다면 무조건 하이드로 변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이기적이고, 선하기도 하지만 악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지킬 박사는 선하기도 한 자신과 악하기도 한 자신을 분리시키고 싶었다. 선한 지킬 박사일 때에는 착하게 살고, 악한 하이드가 되었을 때에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못되게 살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사실 인간이라면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정상인 것을. 그래서 선행이 드러나면 주변의 칭송과 부러움을 사게 되고, 악행이 드러나면 주변에서 질책과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는 노력하고 정진하면서 다른 하나는 인내하고 조절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이렇게 사는 과정들이 우리네 이야기이며, 지은 이야기들이 소설이다.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에게 자신의 자아가 들고일어나 주인공을 끊임없이 괴롭혀 결국 자백하게 만드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나 무의식 상태에서 구두를 짓는 노인이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같이 인간의 자아 분열과 이중인격에 대한 고전들은 참으로 많다. 선善한 것도 인간스러운 것이고, 악惡한 것도 인간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캐릭터가 아니어도 지킬 박사 버전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하이드 버전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소설들은 조금씩 다른 버전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착하게만 살아도 안 되는 세상인 요즘이다.

당연히 지킬 박사처럼만 살아도 안되고 하이드처럼만 살아도 안된다. 너무나 하얀색으로만 살아도 안되고 너무나 빨간색으로만 살아도 안된다. 때로는 흰색이 많이 섞인 분홍으로 때로는 빨간색이 많이 섞인 또 다른 분홍으로 살아야 한다. 세간世間에 맞추어 적당한 분홍색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나저나 어떤 분홍색을 띤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야 할지 고민인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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