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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29. 2022

리더의 용기 /독후감180

 ‘리더 Leader의 용기’라 하면 혁명의 전장에서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프랑스 대혁명의 삼색기를 치켜세우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한 들라크루아 Delacroixrk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다. 마땅히 리더는 싸움터에서 용감하고 용맹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년 전인 1830년의 이야기다.

 세상이 바뀌면 리더의 용기도 바뀐다.

더 이상 오늘날의 리더는 국기와 총을 들고 앞장서지 않는다.

2020년대의 리더는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취약성이란 불확실성의 위험과 감정에 노출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이다.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승패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과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 때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용기이다. 용기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실패, 실망과 좌절, 심지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용기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용기가 드문 것이다.




 2020년대의 리더는 갑옷이 필요 없다.

전장에서의 갑옷이 아니다. 2020년대 리더십의 진짜 장애물은 우리 자체가 만드는 ‘갑옷’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취약성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게 사용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갑옷인 것이다.

 취약함이 비판과 부정적 평가를 파고들며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만들고, 또 수치심이란 괴물이 그 상처를 이용해 우리의 갑옷을 더욱 단단하게 조이고, 더욱 심각한 경우에는 취약성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상처받을 가능성 자체를 봉쇄할 만큼, 이렇게 더는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갑옷이 지나치게 두꺼워지면 진짜로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지혜와 경험이 취약함을 메꿔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혜와 경험은 취약성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줄 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더는 취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리더인데도 왜 수치스럽게 취약함을 인정해야 할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신뢰는 영웅적인 행위, 눈에 띄는 행위가 아니라 관심을 보이고 경청하는 행위, 즉 진정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관계를 맺는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정한 마음이 만드는 작은 순간과 상호 간의 취약함이 겹겹이 쌓여갈 때 신뢰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신뢰와 취약성은 항상 함께 형성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정작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두렵기 마련이다.


 직장인들은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따라서 도움을 구하는 걸 꺼리지만 그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된다. 1,000명의 리더에게 “팀원들이 당신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가장 공통된 대답은 “도움을 구한다”라는 것이었다. 

리더들은 ‘도움을 습관적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위임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을 신뢰하기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도움의 요청은 지능이나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신뢰하는 인간관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취약성을 인정하려는 용기를 내는 이유는 신뢰를 쌓기 위함이다. 리더뿐만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용기이다. 우리가 취약성을 인정할 때 얻는 이익은 실로 막대하다. 취약성의 인정은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완벽주의를 목표로 삼더라도 완벽해질 수 없다.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신뢰도 구축되지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며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2020년대의 진정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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