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Mar 12. 2022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독후감186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연보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상당히 인상 깊다.

50세까지 자신의 연보를 직접 적은 작가는 지금 칠순이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금 당해 그 좌절로 실어증을 겪었다는 내용 같은 것은 없다. 근래에는 평론가로서 각종 대담 프로그램이나 방송에 출연하여 팝 문화에 대해 평론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문학 안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다. 

 그래서 그런지 언어 표현을 실컷 해체하고 재구축한다.

책을 한 권 다 읽어가는데 내가 도대체 무엇을 읽었는지 정의할 수 없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일본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일본인들의 정신, 나아가 일본의 문학을 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일본 문학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일본인들의 마음속의 비밀을 캐기 위해 일본 야구를 선택한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 조합이다.


 야구가 사라진 미래의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걸어가는 궤도가 하나의 줄거리를 이루지만, 소설적인 형태를 거부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학의 틀로 전달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한다.

 야구 소재인 소설은 분명하지만, 모든 소재가 야구로 연결된다. 야구는 모든 소재로 치환될 수 있다.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로 은유될 수 있으며, 표현될 수 있다.

“상상해. 상상해.”

나도 모르게 상상을 했다ㅡ게이오 플라자 호텔의 벽면을 기어 올라가는 달팽이를.

(중략) “설마, 달팽이 따위를 상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네” 나는 대답했다.

“물론, 야구를 상상하고 있겠지?”

“물론이죠.”


 나는 책을 읽다가 자주 ‘야구’라는 주제를 벗어난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등장인물의 수가 많을까 이 소설에서 언급된 등장인물들이 많을까?

빈번하게 반복되는 희한하고 특이한 등장인물들의 호칭만 생략해도 책 분량은 2/3로 줄어들 것이다. 등장인물들도 많지만 반복되는 호칭을 계속 읽고 있으면 호칭은 무의미한 기호가 된다.

 ‘발 빠른 닭’과 ‘배고픈 늑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도망가는 닭과 쫓아가는 늑대의 이야기가 아닌 누가 쫓고 쫓기는지 혼란이 온다.

 호칭이 무작정 반복된다고 추격자가 도망자로 바뀌진 않는다.

이야기를 이어가고 살을 붙여 내는 능력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모모] 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대적할 만한 내공을 느꼈다.

 닭과 늑대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의 석학 카를 슈미트와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 마루야마 마사오를 아무나 연결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책이 야구 이야기를 등한시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올곧이 야구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은 다른 독자는 재미를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 알고 싶어 지고, 그래서 재미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라니. 

번역이 되었지만 원본 제목도 동일하다. [優雅で感傷的な日本野球]

 일본 소설가들에게 묻고 싶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를 아는 이가 있다면 분명히 ‘괴짜’라고 대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즐거움 /독후감18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