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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May 07. 2022

아버지와 이토 씨 /독후감194

 예전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삼대三代 가족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혼자 사는 비중이 30%가 넘는다. 일인一人가구가 많아진 요즈음이고, 초고령화 시대로 노인들의 구성비율도 점점 높아질 것이고, 결혼 적령기인 30대에도 결혼을 기피하고 동거를 하게 된다면 동거 커플이 부모님 중 한 분을 모시고 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34세 아야와 54세 이토 씨가 동거 중인 아파트에 다짜고짜 74세 아야의 아버지가 들이닥친다. 잠깐의 방문이 아니다. 방 두 칸짜리 좁은 집에서 세 사람의 어색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원래 그런 걸지도, 실제 부모 자식 사이라는 게 배려가 없잖아. 그래서 도리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우리는 매일 살아간다.

혼자로 살아가고, 가족과 함께도 살아간다. 혼자 산다고 해도 홀로 산다고 말할 순 없다.

사회에서 사는 것이기에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허나, 서로 한 지붕 아래에서 부딪치면서 사는 것은 조금 더 의미가 깊다. 같이 사는 사람이 들어오고 나갔는지 식사는 했는지 서로 굳이 챙기지 않아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따로 떨어져 살던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스무 살 연상의 남자와 동거하는 딸 집에 들어와 같이 사는 것은 불편한 상황이다.

 같이는 살아가지만 마음은 따로 살게 될 수도 있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각색이란 흥미나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하여 실제로 없었던 것을 보태어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동거 커플이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모신다?? 충분히 흥미롭고 강력한 각색이다. 정말로 이런 커플이 있을까? 좀 더 작위적인 상황에서 소설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두드러진다.

 거침없이 무례한 아야의 아버지. 대책 없이 친절한 이토 씨.

언제나처럼 삐걱대는 아버지와 딸. 둘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이토 씨가 당연한 듯 하지만 어쩐지 거침없이 무례한 아야의 아버지와 대책 없이 친절한 이토 씨 가운데서 아야가 새우등 터지는 느낌이다. 각색된 상황이지만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각색된 상황이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고 조마조마하고, 뭉클하고 가슴 따듯해진다.




“이 집을, 나가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내일 이곳을 나가마. 갑작스레 미안하지만.”


다음 날 아야의 아버지는 현관을 나와 역으로 향한다.

똑, 비 한 방울이 얼굴에 닿는다. 뒤이어 두 방울, 세 방울.

아야는 현관 옆 수납장에서 싸구려 비닐우산을 하나 끄집어낸다. 단단히 꽉 쥐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직선을 단숨에 벗어나 모퉁이를 돈다. 세 번째 전봇대 끝쯤에서 비를 맞아 이미 젖기 시작한 아버지의 등이 보인다.

 '나는 머지않아 아버지를 따라잡겠지. 그리고 우산을 건넬 테지. 그때 내밀 말에,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거야.'


 아야가 아버지에게 하려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말을 했을지 정말 모르겠다. 그만큼 어디로 흐를지 모르겠는 소설이다.

‘제가 역까지 우산 씌워드릴게요. 아빠 조심히 가세요.’일까? 아니면 ‘저희와 이사 가서 같이 살아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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