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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30. 2022

명상록 /독후감193

 부모가 자녀에게 잔소리가 잦아지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일까?

혹은 성장기 자녀가 부모의 말을 반복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순리일까? 

잔소리가 잦아지고 있는 나를 또다시 발견한다. 얼마 전 동생이 건네 준 [명상록]이란 책이 보이고, 나는 명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명상’이란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121-180)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로서 [명상록]을 저술했다.

 첫째, 죽음을 어떤 식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에 대해. 

둘째,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정당화해 주는 논리는 발견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자연 세계 속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항상 고민한 내용들이 [명상록]에 담겨 있다. 결국 자신 내면 깊은 곳의 생각들을 살펴보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를 고민해온 그의 흔적들이다.


 [명상록]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장점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처음 도입부인 ‘제1권’이 가장 마음에 든다. 주변인들로부터 배울 점들에 좋은 영향을 받아 삶에 반영하면서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 장점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중히 관찰하고, 기억에 남기며, 메모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이 사람들로부터 그런 장점들을 배워서 자기가 실제로 행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장점들을 보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가 그런 점을 배우려고 한 것 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떤 명상들을 했고, 어떤 내용들을 마음에 새겼을까?’가 궁금했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심취한 스토아학파의 철학까지 궁금한 것은 솔직히 아니었다. 하지만, 스토아학파의 철학사상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계속 [명상록] 속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독一讀만 한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어떤 명상을 하는지, 그가 갖고자 하는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의 명상 속에서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반복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명상의 내용은 매번 바뀌기가 쉽지 않다. 생각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명상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쉬이 바뀔 수가 없다.


 어떤 내용들이 반복될까?

우주 (혹은 자연)의 섭리와 신들의 존재를 무조건 믿는다. 나의 본성은 우주의 본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주의 본성에 따른다면 그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신들이 존재한다면, 인간 세상을 떠나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설마 신들이 너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겠느냐. 우주의 본성이 네게 할당해 준 것들 중에서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네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고,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게 해 주며, 그 어떤 일에도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않게 해달라고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이냐.


 죽음에 대해 담대하다. 대양 전체는 우주에서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고, 아토스 산은 우주에서 한 줌의 흙에 불과하다. 모든 현재라는 시간은 영원 속에서 하나의 점이고, 모든 것은 소소한 것 들로서 쉽게 변하고 신속하게 사라진다. 사는 날 동안에 어떻게 하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죽음도 자연의 뜻 가운데 하나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중요하다. 너의 내면을 파라. 너의 내면에는 선한 것이 솟아 나오는 샘이 있고, 그 샘에서 언제라도 선한 것이 솟구쳐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샘을 파야만 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악을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은 피할 수 없는데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그의 명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네 힘이 미치지 못하는 외부의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네 자신으로 말미암은 원인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바르게 하라. 다시 말하자면, 너의 충동과 행동은 너의 본성에 부합하는 공동체적인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145년에 결혼해서 1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에서 일곱 명은 어릴 때 죽었다. 마르쿠스가 180년에 죽을 때, 그에게 남은 아들은 당시 18살이었던 코모두스뿐이었다. 코모두스는 황제에 즉위해서 폭정을 일삼다가 192년에 암살되었다. 기원후 4세기의 저술가였던 아우소니우스는 “마르쿠스가 자신의 조국에 끼친 유일한 해악은 그런 아들을 두었다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명상을 그렇게 한 마르쿠스도 자식을 키우는 것만큼은 녹록지 않은 것에 마음에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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