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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06. 2022

이슈, 중국 현대미술(2) /독후감206

중국 미술계에서 아직 공식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개혁 개방 이후 1989년까지를 ‘현대 미술’로 1990년대 이후 현재 까지를 ‘당대 미술’로 서술하고 있다.


문화 대혁명 시대를 포함한 마오쩌둥 시대 (1949~1976)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시대(1976~1989)를 거쳐 글로벌 시대(1989~현재)를 관통한 묵직한 중국 예술가 12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7. 장샤오깡 張曉剛 Zhang Xiaogang (1958~)

1982년 쓰촨미술학원 졸업 작품의 표현 양식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전통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의 그림은 밀레의 영혼을 고흐의 터치로 표현하는 듯했다.

1992년 장샤오깡은 꿈속에서나 그리던 독일과 프랑스에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예를 들어 내가 전에 고흐를 좋아하고 그에게 감동받았지만, 그것이 내가 고흐 같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나 자신에게 단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국인에게 속하면서 나의 마음에도 부합하고, 또 현재에 맞는 새로운 양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 Rene Magritte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강력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결코 수묵화 같은 전통 형식이 아니라 현재 중국인의 정신으로 세계 문화에 참여하여 주목을 끌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현재의 사람들이다. 중국 예술가가 외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 현재의 현실이라는 이 큰 배경과 떨어질 수 없다.”

 [혈연-대가족] (1999, 캔버스에 유화, 150X190cm)와 같은 그의 [대가족] 시리즈를 볼 기회가 있다면 결국 장샤오깡은 중국적이고 개인적이며 당대적인 작품을 완성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의지와 생각이 그림을 통해 투영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8. 팡리쥔 方力 Fang Lijun (1963~)

졸업할 즈음 슬럼프에 빠져버린 작업은 막혔던 물꼬가 트이듯 작품을 쏟아냈다.

그는 무조건 사람을 그려야 했다. 몇 번이나 인간성의 생체 실험대에 오른 중국인들 그리고 실험대에서 그들이 보인 갖가지 폭력과 상처, 가식과 무지, 반항과 포기, 회의와 자조들…

 그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상처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풍자로서 대머리 건달의 실없는 하품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인물들의 표정, ‘한때’의 인상을 주는 광선 등은 모두 편안하고 안정된 기쁨보다 무언가 섣부르거나 덧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팡리쥔은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의 중국 유명한 작가 위화 余華 Yu Hua (1960~)의 소설 [형제 兄弟]를 읽고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동시대인으로 한 사람은 그림을 통해 한 사람은 소설을 통해 동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팡리쥔을 보고 있어도 그의 그림을 보고 있어도 소설 [형제]의 주인공 이광두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9. 위에민쥔 岳敏君, Yue Minjun (1962~)

 가장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화가가 아닐까?

사람은 무언가를 포기할수록 가벼워지고 대범 해지는 경우가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한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다는 판단은 이 삐딱한 문제아에게 당돌함과 거침없음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직 무언가를 아끼고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는 두려운 상대가 된다. 위에민쥔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그의 그림들이 뱉어내는 황당하고도 칼 같은 날카로움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우선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다. 세상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공유한 그들은 워낙 하나같이 ‘불손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진지함 없이 농담과 조소로 일관했다. 위에민쥔은 점점 더 과장된 제스처와 색상으로 그들을 그렸다. 그리고 한 명으로는 부족해 같은 표정의 인물을 바로 옆에 수없이 반복해서 그렸다. 그리고 또 그리고 계속 그려 눈이 어지러워질 정도가 되자 여러 명으로 불어난 그들의 웃음은 거대한 힘이 되었다. 그제야 위에민쥔의 마음도 후련해졌다. 

 맞다!! 그림 속 위에민쥔 자신의 이미지는 후련해 질만큼 시원하게 웃어 까무러칠 것 같은 웃음이지만 그들의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공허하다. 양면의 웃음은 그들이 개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다운 웃음보다는 교육받은 웃음을 웃고 심지어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웃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허하고 가식적인 웃음을 터뜨린 자신과 사회를 비웃고 있는 웃음이다. 결국 그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시각과 심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그림 한 점 집에 걸어 놓고 자주 보며 웃고 생각하고 싶다. 갖고 싶다!!


10. 쩡판즈 曾梵志, Zeng Fanzhi (1964~)

오수五修만에 합격한 후베이 미술학원에서 이미 입학 전에 다양한 창작과 전시 경험을 구비한 쩡판즈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소련식 사실주의를 버리고 대신 ’85 신사조 미술의 영향을 민감하게 흡수하며 표현주의 실험에 몰두했다.

졸업 전시부터 강렬한 인상을 표현하기 충분한 [씨에허] 시리즈 (씨에허 : 병원 이름)는 그가 살아오던 거리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두드러진 윤곽선과 거친 터치, 커다란 눈동자와 손, 의도적으로 과장된 인체 비례 등 노골적이고 본색적인 인상을 주는 요소들은 그림 속 인물들의 참담한 상황과 그들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쩡판즈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한층 더 진전된 [고기肉] 시리즈는 어마어마하다. 직접 보면 알게 된다.

강한 스타일을 구축한 쩡판즈는 젊은 나이에 우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뒀으나 1993년 베이징으로 향했다. 외부에 둔감하고 회색 연기 자욱한 공업 도시 우한과 대국의 수도인 베이징 사이에는 공간 차이뿐 아니라 시대 차이마저 존재하고 있었다. 그에게 모든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새로운 생활과 심리 상태는 곧 그림에 반영되어 [가면] 시리즈로 완성된다.

그는 이후로도 계속 성숙해지고 변화한다.

[가면] 시리즈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성과 내면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듯이 계속 전환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중국 현대사가 걸어온 가파른 변화 속에 처참한 모습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던 자신과 사람들의 심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1. 펑정지에 俸正杰 Feng Zhengjie (1968~)

 1990년대 초 중국 사회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뒤로하고 경제가 폭발적인 탄력을 받는 시기였다. 사람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대중문화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펑정지에는 곧장 대중문화의 포장을 벗겨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싶은 의지를 드러냈다.

 동결된 사회가 양지로 돌아서자 급격한 해빙기를 맞이했지만, 얼음이 녹은 후에는 안에 있던 곪은 상처에서 세균이 들끓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의 범람은 중국 사회에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피부의 서술] 시리즈의 피부는 한 개인의 내면과 외부 사회를 잇는 접선이다. 붉은 복숭아꽃 같은 색깔로 그려진 매혹적인 육체들의 피부에는 한가득 종기가 돋아나 있었다. 병든 피부는 대중문화를 연상시키는 부수적 이미지들과 함께 등장했다.

 급속하게 퍼진 상업화의 물결은 사람들의 감정 표현마저 표본화하고 표피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별다른 깊은 생각 없이 획일적이고 허무한 유행을 필수적인 낭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꽃이나 풍선, 공기방울이 날아가는 화려하면서도 붕 뜬 배경 그리고 그 속에 알록달록 원색의 예복을 입은 신혼부부들은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기꺼이 표현하고 있었다.

 이전에 울긋불긋하던 색상들은 중국 전통 민간 회화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사용해온 붉은색과 초록색 두 가지로 집약되었다. [초상] 시리즈의 미녀들은 날이 갈수록 아름답고 섹시 해졌지만 펑정지에는 여전히 달콤하고 유혹적인 상업 문화가 갖는 이면의 고통과 허무를 잊지 않았다. 아무리 피하거나 외면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미녀의 괴이한 눈동자, 싸늘한 흰자에 비정상적으로 축소된 동공, 양쪽으로 벌어져 초점을 알 수 없는 시선 그리고 그 위에 가시같이 달린 가닥가닥의 속눈썹. 이 매혹적인 고통은 향락적 대중문화의 가감된 바 없는 정확한 모습이다. 이를 간파하고 표현하는 것이 지적이면서도 유행과 재치를 잃지 않는 펑정지에인 것이다!


12. 손국연 孙国, Son Kukgyon (1959~)

 기초 테크닉도 없이 대담한 열정으로 그려낸 정물화. 

대범한 구도와 감각적인 터치, 정열적인 색채를 뿜어낸 그녀의 첫 작품.

 자신이 보았다고 생각한 것을 최대한 가깝게 그려 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들에는 어눌한 확고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손국연의 숙소에 놀러 온 예용칭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고 어눌한데 이다지도 유창할 수가 있지?”하며 감탄했다..

 쿤밍 지역 회화의 시적이고 평면적이며 시공을 넘나드는 특징은 그녀의 그림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지만 텐안먼 사건과 1년여의 아버지의 병치레 등의 힘겹고 어두운 나날은 손국연의 그림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베이징으로 향한 그녀는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에 전전긍긍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첫 그림을 그리던 때처럼 꽃을 마주했다. 정물화를 그렸던 그에게 꽃은 친숙한 소재였다. 새로이 등장한 꽃은 예전의 어눌하고 확고한 꽃과 완전히 다른 강렬한 색채와 과장된 형상, 멍울진 터치로 섬세하고 미묘하며,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여성의 감성과 생리적 특징에 대한 느낌을 나타냈다.

 하지만 꽃은 다른 여성 화가들도 중복적으로 사용하는 소재였다. 좀 더 확실한 자신만의 표현을 원했던 손국연은 꽃 옆에 달린 잎으로 시선을 옮겼다. [잎의 변이] 시리즈에 이르러 더욱 독특한 효과를 추구했다. 그녀는 마치 화선지에 스미는 먹물처럼 포스터컬러용 붓을 들고 묽게 희석한 안료를 캔버스에 섬세하게 흡수시켰다. 안료는 캔버스 조직 사이에 살짝살짝 멍울지기도 하고 번져 나가기도 하면서 그 자체로 신비롭고 유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냈다. 그것은 마치 생명과 여성의 신비로움, 그 따뜻하고 섬세함에 연연해 한 이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는 애무의 손길과도 같았다. 

책에서 언급되는 12명의 화가 중 오직 유일한 여성인 손국연은 여전히 여성의 달콤한 환상을 표현해 낼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




 중국의 현대 미술과 당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든든한 지원군을 찾았다.

1979년부터 1984년의 상흔, 향토 미술로부터 싱싱화회(星星畵會), ’85 신사조 미술, 문화열 그리고, 1989년 중국 현대 예술전(NO U-turn전) 등은 덩샤오핑 개혁개방 시대의 핵심어이다.

이후 1989년부터 현재까지의 글로벌 시대에는 텐안먼 사건 6.4, 경제 개방, 위엔밍위엔 현상, 완세 현실주의, 정치팝, 염속 예술 그리고, 여성미술과 같은 단어로써 중국 당대 미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2인의 중국 예술가는 중국 미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이런 단어들 만든 주인공들로서 이들로부터 중국 현대미술의 이해를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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