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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20. 2022

솔로몬의 노래 /독후감208

“내 앞에서 언성 높이지 마라.”

“아버지가 열두 살 때도, 할아버지한테 이런 취급을 받으셨어요?”

“말조심하지 못해!” 메이컨이 소리쳤다. 그는 주머니에서 두 손을 뺐으나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메이컨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아들의 질문이 주변 풍경을 바꿔 놓았다. 그는 열두 살 소년으로 돌아가, 밀크맨의 입장이 되어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




작가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1931~2019)은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발견하고 ‘흑인’이 되고자 적극적인 결단을 내리기 위하여, 흑인임을 ‘선택’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뿌리를 깨닫지 못하는 모든 눈먼 흑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글을 썼다. 그리고, 흑인문학을 주목받게 했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해방 노예였던 할아버지 메이컨 데드 1세, 흑인이라는 이유로 정상적인 삶과 가족을 모조리 박탈당하고 필사적으로 자수성가를 꿈꾸었던 아버지 메이컨 데드 2세,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흑인’이었던 세대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3세대인 밀크맨 데드는 삶 속에서 특별한 억압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흑인 중산층이라는 신인류다.


 토니 모리슨은 스스로 ‘흑인’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늘 자랑스럽게 내세웠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흑인 박해와 설움의 역사를 고스란히 시인하면서도 그 역사 인식이 증오나 피해의식으로 귀결되지 않고 언제나 한 단계 넘어선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흑인이라고 여성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일반적인 것이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 사랑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깨닫는 과정은 흑인이든 흑인이 아니든 다르지 않다. 누구나 깨닫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고 그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릴 적 아버지에게 대들었던 자신이 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깨달음의 과정이다.

 소설 전체에서 ‘흑인 문화’가 깊게 깔려 있고, ‘흑인 정서’가 철철 넘치고 있으나 밀크맨이 깨닫는 과정,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동시에 아버지인 메이컨도 무언가 깨닫게 되는 상황이다. 흑인 문학 소설이 분명 하나 읽는 내내 일반 소설로 읽혔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3세대 밀크맨에게 타자他者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자신이 소속한 세계와의 모든 끈을 거부하며, 아버지를 벗어나려고만 하는 무책임한 비상만을 꿈꾼다. 허나, 소설의 2부에서 (순수한 동기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의 뿌리를 찾아 나선 밀크맨은 정신적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타자他者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는 ‘성숙’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었으나 기나긴 시를 읽은 듯한 흔적이 마음에 남는다. [솔로몬의 노래]는 시로 느껴지는 사랑의 소설이고, 독후讀後 감정感情이 몽환적이며 무언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모리슨이 전달하려고 했던 깨달음은 소설의 형식으로 전달되었고, 전달하려고 했던 흑인 문화는 시時의 감정을 빌어 나에게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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