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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10. 2022

모던 팥쥐전 /독후감223

 나의 할아버지 청년 시절은 이 땅에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던 기묘한 시간이었다. 한복과 양장이, 고옥과 근대식 건물이, 바래고 낡은 옛이야기와 서구에서 밀려드는 요란하고 화려한 이야기가 뒤섞이고 가라앉고 장식이 붙고 사라져 가던 그런 시간들.

마치 흑백에서 컬러로 색감이 바뀌어 가는 와중에 오래된 것과 새것들의 환영이 사이좋게 어울려 나른하게 물결치는 풍경처럼.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태어났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단 몇 분을 지낼 수 없고, 자율주행으로 자동차가 다니며 암호화폐로 결제를 한다. 

나의 할아버지도 지금의 나도 모든 세대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간을 살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전래동화 주인공이 여전히 동시대에 살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의 우리들과 살아가고 있을까?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한 번쯤은 했을 법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상상력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던 전래동화는 권선징악의 가이드라인을 잘 따라 마무리되었지만 그 이후로 여전히 주인공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지금의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는 상상력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다만 약간 으스스하다. 호러 판타지 버전이라고나 할까. 

과거 조상들은 전래동화 속의 주인공이었으나 이제 현재를 살아내야만 하는 자신들의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명랑 발랄 로맨스보다 ‘호러 판타지가 적합하다’에 한 표를 던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작가의 상상력은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바꾸어 보는 것이다.

우렁이가 각시로 둔갑할 수 있다면 다른 대상도 사람으로 변화시켜 본다. 사물의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해 본다. ‘누구의 입장이 되어보느냐’에 따라 관계와 사건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상력은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풀어갈 수 있게 만든다.

<콩쥐팥쥐>, <여우 누이>, <우렁각시>, <개나리꽃>, <선녀와 나무꾼>, <십 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의 전래동화에 새로운 옷을 입혀 다시 소설로 지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책장을 뒤적거려 원본의 오래된 이야기들도 다시 한번 훑어보기도 했는데 각각의 매력이 다르다. 오래된 전래동화는 나름대로의 배움과 멋이 느껴지고 새로이 쓴 소설은 흥미와 작가가 계획한 분위기가 전달된다. 다만, 각각의 단편들이 한 권 분량의 [모던 팥쥐전]이나 [모던 우렁각시] 혹은 [현대판 선녀와 나무꾼]로 쓰였으면 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

연말에 동화로 소설로 잘~~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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