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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03. 2022

구해줘 Sauve-moi /독후감222

메말랐던 사랑의 싹을 틔우고 꽃 피우기에는 이틀이면 충분하다.

얼마나 오래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런 순간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의 문제일 뿐이다.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서겠다는 열망을 품고 뉴욕에 왔지만 절망만 가득 안고 사는 프랑스 여자 줄리에트와 어두운 과거의 한 지점과 와이프의 사별에서 비롯된 상처를 떠안은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의사 선생님은 오후 7시 8분부터 8시 6분까지 58분 동안의 대화로 서로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했던 한 가지 식의 거짓말을 제외하곤 불안할 것 없는 둘의 러브스토리는 응원받아 마땅하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줄리에트는 왜 자신의 직업을 변호사라고 속였을까?’ ‘왜 샘은 사별했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결혼했다고만 말했을까?’

 나의 너무나 단순하고 일차적 수준의 걱정은 소설 쓰기 시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초반에 설레며 시작된 러브스토리는 오간데 없고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들로 꽉 채워져 있다. 내가 걱정했던 거짓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더라면 너무나 뻔한 소설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챕터가 끝나고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하나의 실마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씩 의혹을 일으키고 있다. 끝맺음을 이어갈 수 없을 듯하나 작가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이야기들은 이어져 간다.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빠르게 읽히는 첫 번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연히 ‘재미’다. 기욤 뮈소 Guillaume Musso가 풀어놓는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눈앞에 영상이 펼쳐진다. 상황이 상상이 간다. 머릿속에 띄워진 영상은 독서와 동시에 전개된다.


 책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만 읽는 것은 아니다.

근래 몇 주 동안은 휴식처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라 주로 소설들을 선택했다.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책을 펼치는 순간 또 하나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 안에서의 세계는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덮는 순간 정지되니까.

[구해줘 Sauve-moi]는 ‘일주일 동안 읽기에 너무 글 밥이 많은 것 아닌가?’ 걱정 반과 기욤 뮈소에 대한 기대 반으로 시작했지만 450페이지 분량의 책을 4번 만에 읽었다. 한 번 책을 펼쳐 읽게 되면 평균적으로 100페이지 넘게 책을 읽은 셈이다.

의도에 맞게 소설로써 주중에 짬짬이 나만의 휴식을 성공적으로 확보한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지금 나에게 연말이라 쉼이 필요한지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또 다른 몇 편의 소설들이 필요하다. 구해줘ㅋㅋ!!!!




 지금도 소설의 여러 가지 장면이 눈에 선하다.

가본 적도 없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와 타임스퀘어 주변의 어느 공원도 떠오르고, 마약상과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브루클린의 저주받은 빈민가도 스쳐간다. 줄리에트와 샘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해안도로를 따라 찾아갔던 코네티컷과 로드아일랜드의 경계선에 있는 별장도 떠오르고, 모든 사람들이 생동감에 넘치고 활기찬 워싱턴 광장도 영화 장면 같이 떠오른다.

 소설은 허구虛構이지만 모든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소설은 역시 허구인지라 이야기를 위해서 나에게는 머쓱한 소재 두 가지가 등장한다.

하나는 죽음의 사자!

죽음의 사자가 등장한 순간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나?’ 싶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의 사자’가 웬 말인가?

두 번째는 마약!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는 마약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나라일까?’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중에 마약이 등장하지 않는 현대소설이 있을까 싶다.


 등장인물이 남자 주인공 샘과 여자 주인공 줄리에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사자도 나오고, 대머리 독수리도 나온다. 안젤라도 나오고, 레오나드도 나온다.

내가 머쓱했던 소재 두 가지는 아무런 불편과 충돌 없이 소설에 안착되었다. 나만의 우려를 인정한다. 충분히 우리의 연말을 채워줄 수 있는 휴식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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