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 반한 왕자는 무도회에 나타난 어느 가문의 어떤 성품의 여성인지도 모를 처자에게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왕비의 자리를 내어줄 태세이다.
> 마녀의 저주에 걸려 100년을 잠들어 있는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저주가 풀린다는 동화에서 사실은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히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 백설공주에서도 왕자가 공주를 되살리는데 기여한 바는 없다. 유리관을 들고 가던 도중, 시종 하나가 덤불을 타 넘다 비틀거리는 바람에 백설공주의 목에 걸려 있던 독사과 조각이 튀어나와 공주는 다시 살아난다.
> 원작동화가 구전되던 당시에는 첫째 왕자가 왕국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왕국을 물려받지 못하는 둘째나 셋째 이하의 왕자들은 왕국을 떠나 이곳저곳을 방랑하면서 딸만 있는 왕이나 영주들의 눈에 들어 결혼하는 전략을 펼쳐야만 했다. 이들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 유럽 대륙의 국가와는 달리 영국은 어떻게 판타지 문학의 대국이 되었을까? 판타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인 일본과 영국이 섬나라이기 때문일까?
세상이 알아주는 문화 콘텐츠에는 무엇이 있을까?
신데렐라와 백설공부로부터 시작해서 마징가Z, 건담을 지나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아이언맨 같은 슈퍼 히어로 정도면 (우리가 무엇 하나에 꽂힌 진정한 오타쿠가 아니라면) 대략 모두들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화 콘텐츠들을 비틀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화 콘텐츠를 비틀어 생각해 보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그리고, 세상에 많은 것들 중에 하필 왜 문화 콘텐츠를 비틀어야 하는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동화, 만화책에서부터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상품 등등의 콘텐츠들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우리가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서 이걸 비틀어보고, 뒤집어보고, 벗겨보고, 조각조각 난도질을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흉한 마음으로 스토리를 모두 19금으로 패러디해도 되고, 등장인물을 동물로 바꿔 쳐도 되고, 반대로 등장하는 동물을 모두 의인화해서 새롭게 만들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문화 콘텐츠를 비틀어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문학의 대표적인 질문들만 보아도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왜 사람은 살아가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하나일 수 없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들과 결별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익숙한 자신과 헤어지고 새로운 자신을 얻기 위해, 조금은 달라진 자신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 관련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습관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다르고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선 일단 익숙한 것과 싸워서 몸과 마음과 머리에 차지하고 있는 익숙한 놈들을 몰아내야 하는데, 이런 이별 연습에 가장 좋은 대상이 우리가 늘 가까이서 접하는 문화 콘텐츠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틀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 콘텐츠들을 비틀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면 무엇이 좋을까?
‘발칙한’이라는 형용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괘씸하다는 느낌보다는 통통 튀고, 신선하고, 가식이 없는,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신비함까지 듬뿍 담긴 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단어인 키치 kitsch란 단어와 연결시키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왜 이 발칙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용어가 되었을까?
아마도 발칙함을 맘껏 발휘하라고 내모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모두가 발칙함에 매달려 다른 사람과는 다르고 새롭게 보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 콘텐츠를 비틀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를 발칙함으로 비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