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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May 25. 2019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독후감38

 어느 날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생각한다. ‘난 첫 소설에 감히 도전할 만큼 성숙했다.’

그리고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 소설은 글로벌하게 대박이 났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확률은 100살 노인이 요양원을 탈출하여 우연히 한화 60억 원 남짓되는 5천만 크로나를 훔쳐 흥미진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확률만큼 낮을 것이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소설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1905년부터 2005년까지 살게 되면 100회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어릴 적 스웨덴의 폭탄공장에서 일한 덕분에 원자폭탄 만드는 법을 알고 있어서 100세 노인은 충분히 회상할 만한 인생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가 회상하는 100년의 기간 동안 원자폭탄은 강대국들의 원수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Must-Have 아이템이다. 덕분에 주인공 알란 칼손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역사책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지도자들을 만난다.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 어린 김정일, 그리고 몇몇의 미국 대통령들까지.

 난 여기서 인류 역사의 키워드를 ‘폭탄’으로 선택한 작가의 탁월함에 박수를 보냈다. 폭탄 투하가 인류 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온 것도 사실이지만 “증기기관 발명”같은 키워드보다 훨씬 참신하기도 했다.


 100년의 회상은 회상대로 스펙터클하지만 요양원 창문을 뛰어넘은 후의 100세 할아버지 알란의 경험은 특이한 캐릭터의 친구들과 함께 알차고 흥미진진하다. 스토리에 억지가 없다. 경찰과 절대 친숙할 수 없는 할아버지 율리우스 (할아버지라도 알란보다는 한참 어리다.), 아는 것이 너무 많은 핫도그 집 사장 베니 (그래도 벤츠를 몬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구닐라 (진짜로 코끼리를 키운다.), 갱단 두목 등등등.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다음 상황이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는 이유는 알란과 그 친구들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5천만 크로나가 들어있는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기도 힘들겠지만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또 다른 친구도 만나게 되고, 이것이 다음 경험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다 보면 모험이 하고 싶어 진다. 모험에는 고난과 역경이 따르게 마련인데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심한 표현은 ‘죽을 뻔했다’이다. 고난과 역경을 진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쿨하게 포장하는 기교로 히말라야 산맥을 별 장비 없이도 넘을 수 있을 것 같고, 소련 강제수용소 굴라그에서도 몇 년은 거뜬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아쉬운 것은 항상 ‘술 한잔’이다. 이것이 풍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실천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루틴에서 벗어나야 모험이 혹은 모험이 아닌 무엇이라도 뒤따른다.

알란 할아버지가 창문을 넘어 요양원을 탈출했기 때문에 500페이지 소설도 시작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인의 옛 회상을 더듬는 반토막 소설이었을 것이다.



 알란의 강점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 반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도 않는다. 단지 누워 잘 수 있는 침대와 세끼 밥과 할 일. 그리고 이따금 목을 축일 수 있는 술 한 잔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 삶인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다.

알란의 삶을 보면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겠구나!’ 싶다가도 ‘어떻게 사람 인생이 이럴 수 있겠어!’하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소설 전체에서 알란 할아버지는 천천히 걷는다. 요양원을 나올 때도 슬리퍼를 신고 나왔지만 뛰는 법이 없다. ‘뛸 수 없다’가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거꾸로 이런 표현이 떠오른다. 100살까지 달려간 노인의 삶!

문장마다 쿨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조만간 스웨덴 슈납스나 러시아 보드카인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 한 병을 구매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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