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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ul 27. 2019

낮의 목욕탕과 술 /독후감47

 낮의 목욕탕과 술!! 

꼭 지금 목욕탕을 다녀와 낮술을 하고 있지 않아도 예전 낮술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생각만 해도 최고의 조합이다. 사람 입 꼬리를 쓰~윽 올라가게 한다.

글을 읽고 있으면 목욕탕을 다녀와 낮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지만 어찌 보면 글만으로도 족하다. 읽는 자체만으로도 마시고 있는 듯하다.




'그 첫 한 모금은 그야말로 무적.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가게 안을 휘 둘러본다.

뭐 불만 있어?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중략)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벚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요즈음은 일본과의 강제노역 배상 문제로 충돌 탓에 일본 여행을 피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일본 가는 것을 정말 포기해야 할까?’라는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책의 내용이 통렬한 인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배워야 할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정보라고 말할 것이 있다면 목욕탕 위치와 그 주변에서 간단하게 한잔하기 좋은 술집정보가 전부지만, 일본에 자주 출장 가는 친구에게는 꼭 한 권 선물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글에서 통쾌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소소한 것들을 작고 예쁘고 귀엽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자신 있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약간은 뻐기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 구스미 씨 (그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이다.)를 연상하게 한다.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책을 아껴 읽은 흔적이 기억난다.

나의 독서 습관 중 하나는 읽기 시작한 책의 펼친 페이지 왼쪽 상단에 해당 날짜를 적어 두는 것이다. (일정한 위치에 적어놓는 것이 나중에 확인도 편하다.) 이렇게 메모해 놓으면 책을 언제 몇 번에 걸쳐 읽었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다. 400~500페이지의 책도 평균적으로 7번 정도의 횟수에 다 읽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일곱 번(7)에 나누어 읽었다.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책을 1회에 1개의 이야기씩 충분히 즐기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0번이 아닌 7번에 다 읽었다는 것은 1회에 1개의 이야기씩 읽기는 실패한 모양이다. 너무 재미있으니.

여러모로 즐거운 추억이 많은 책이다.


 출퇴근 시 버스에 앉아 있으면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흘깃흘깃 바라보거나 혹은 내 옆자리에라도 앉게 되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살짝 쳐다보게 되는 적은 있어도 남자가 남자들의 벗은 몸을 조목조목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정당하게 해주는 책이다. 정말 사람의 몸은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그런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고 묵언의 합의를 한 셈이니까.

 표현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나체 남자들의 성격이나 직업, 과거 살았던 행적들까지 상상한다. 

벗은 몸을 보고 이름까지 지어 상상의 나래를 끝도 없이 펼쳐내어 살았음직한 인생 이야기를 지어낸다.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낮의 목욕탕 나체 남자 관찰기]라고 부제목을 써도 될 정도다.


 [낮의 목욕탕과 술]은 ‘낮에 목욕탕에 갔다. 낮술까지 한잔 걸친다. 너무나 황홀했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실제 과거를 회상하며 오늘의 추억을 만든다.

예전 한낮에 처음 목욕탕을 갔던 첫 경험을 회상하고, 한낮에 목욕탕을 처음 데리고 간 멋지다고 생각했던 출판사 사장을 생각한다. 과거 즐거움을 넘어 현재를 감사할 줄 아는 작가가 멋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낮술은 마신다고 해야 할까? 먹는다고 해야 할까?

술은 액체이니 ‘마신다’가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훌륭한 만찬을 접한듯한 효과 이상으로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므로 낮술은 ‘먹는다’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마시든 먹든 책을 마치며 여전히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나에게 남는다.

낮의 목욕탕 후에는 생맥주를 마셔야 하는 것일까? 병맥주를 마셔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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