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Oct 12. 2019

파이 이야기 / 독후감58

Life of pi

 어머니께서 내 글이 어렵다고 하신다. 사실 나의 어떤 글이 어렵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한 피드백이었다. 쉬운 것을 어렵게 풀어내는 쓸모없는 능력이 내게 있던지, 아니면 독후감 쓴 책을 읽지 않으시고 내 글만 읽으셔서 어렵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많은 경우 나는 글의 줄거리 요약을 생략한 채 내가 책을 읽은 것만으로 나만의 독후감을 쓰고 있었다. 사실 독후감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이 내 독후감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 책을 읽어보게 하고 싶은 것인데. 누구든 글의 줄거리를 대강이라도 알아야 내가 쓴 독후감에 대해 공감을 하든 반감을 갖든 할 터인데. 혼자 교만하게 독후감을 쓰고 있었다.




 [파이 이야기]는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집안의 둘째 아들인 파이의 이야기다. 

파이는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 3개의 종교를 갖고 있는 신과의 관계가 풍요로운 소년이다. 그러던 중 가족은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동물들을 실은 화물선을 타고 캐나다로 가는 도중 태평양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화물선은 난파되며, 구명보트에 파이와 몇 마리 동물만 살아남는다. 동물들끼리 먹고 먹히는 싸움을 벌이고 결국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 살아남아 227일의 표류 끝에 구조되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이다.



 표류기하면 [로빈슨 크루소]다.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무인도에 닿게 되고 장장 2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육지에서 생활한다. 바다 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파이는 32인용 구명보트가 있어도 탈진해서 누워있을 수도 없다. 동물원에서 키우던 몸무게가 200킬로그램도 넘는 벵골 호랑이가 7~8미터짜리 배에 누워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에 뜨는 노, 구명부표, 밧줄과 같은 생존 물품을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 그 위에서 잠도 자고 호랑이 영역 밖에서 생활할 수 있다. 아무리 뗏목이라고 해도 물이 차올라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부르튼다. 뗏목 아래는 상어가 지나다닌다. 좁은 공간에서의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묘사는 넓은 공간에서 보다 어렵다. 구명보트 위에서 뗏목 위에서 현장감 있는 묘사로 파이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다. 뱃멀미가 났다가 죽도록 갈증이 났다가 춥다가 피부가 쓰리다가. 아! 상상만 해도 싫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생존 음식과 물이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는 어드벤처 모험같이 느껴졌으나, 생존 비스킷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이후의 고난은 참으로 처절하다

표류의 고난 중에 하나는 갈증도 있겠지만, 더디게 흘러가는 혹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시간일 것이다.


‘내가 애용한 일상 탈출법은 가볍게 질식하는 것이다. 남은 담요를 잘라낸 천 조각을 이용했다. 나는 그걸 ‘꿈의 걸레’라고 불렀다. 천을 바닷물에 담그되 물이 뚝뚝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적셨다. 나는 방수포 위에 편히 누워 ‘꿈의 걸레’를 얼굴에 올려놓고, 피부에 달라붙게 폈다. 나는 미몽에 빠져들었다. (중략) 그러면 시간이 잘 흘러갔다. 경련이 일어나거나 숨이 막히고 걸레가 밑으로 떨어지면, 나는 의식을 찾았다.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 게 고마웠다.’


 

 파이의 표류기는 신이 필요한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신이든 필요했을 것이다. 

선견지명이었을까? 파이는 예수님! 마리아님! 마호메트님! 비슈누님!을 믿는 소년이었다. 

파이는 신을 사랑하는 아이다. 종교를 좋아하는 아이다.

표류하기 전 폰디체리 동물원집 아들 시절인 1부에서는 과할 만큼 종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나와 같이 힌두교에 경험이 없는 독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될 정도다. 우리는 소설에서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와 같이 16세 청소년의 따뜻한 관점으로 3개의 종교를 비교할 수 있는 책은 없을 것이다. 

신의 가호들이 있었기에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그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것도 호랑이와 함께.



 생각해보자! 227일 동안 구명보트에 의지해서 태평양을 떠다닌다. 선택을 해야 한다.

구명보트에 홀로 있는다. 아니면 호랑이와 같이 있는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부터가 이 소설의 시작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즈음에 파이는 상상인 듯 미친 듯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대화를 나눈다.


그래. 순진한 체하지 마. 사람 맛이 좋았어?

아니, 맛은 좋지 않았어.

그럴 줄 알았어. 동물성은 후천적으로 발달한다고 하더라구. 그래 사람을 왜 죽였어?

욕구 때문에

괴물의 욕구라. 후회는 없어?

그들을 안 죽였으면 내가 죽었을 거야.



 드디어!!!! 멕시코의 어느 육지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발견된 파이는 리처드 파커에게 신세를 졌다고, 네가 없었으면 버티지 못했다고,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말 못 하는 호랑이지만 서로의 진심이 통해 역경을 이겨내고 생존한 해피엔딩 스토리였다.




 이야기를 읽고 나서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구명보트에 구비되어있던 생존 물품 중에 ‘모르핀 앰플 주사기 6개’가 있었다. 파이는 이것을 사용하긴 했을까? 사용했다면 어떻게 썼을까? 모두가 궁금하지 않나? 내가 이상한가?

그리고, 한 가지 더! 구명보트에 동물들이 아닌 호랑이가 아닌 사람 종족들과 같이 탔다면 파이는 끝까지 생존했을까?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왓칭 WATCHING / 독후감5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