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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19. 2019

복화술사들 / 독후감59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식민지 시대의 조선이 궁금하다.

식민지 조선을 생각하면 칼을 찬 순사들의 감시와 독립투사의 고문당하는 장면만 떠오른다. 

일본의 수탈과 억압을 규탄하는 과장되고 흥분된 기록들은 넘쳐흘러도 식민지에서의 일상생활을 차분하게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사실적 기록들을 학창 시절에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역사적인 문헌보다는 우리네 삶을 투영하는 ‘그 시절 소설들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조선을 관찰할 수 있겠다 라는 아이디어로 쓰인 책이다. 

그 시절 소설들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대입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한국 근대 소설들이다.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배따라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그리고, 이인직의 [혈의 루] 등이 있다.



 식민지 시대는 ‘신구 혼합’의 시대였다.

외부로부터 신문화가 들어오게 되면 비판하는 이와 찬양하는 이가 생기듯 소설가들도 여러 측이 있었는데, 조선어로만 소설을 쓰는 이, 일본어로만 소설을 쓰는 이, 한문/한글/영어/일본어를 모두 섞어서 쓰는 이들 중에서 식민지의 문화적 갈망을 표출하는 여러 단어들이 흥미롭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나오는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를 끼인” 것은 ‘샌드위치’이고, 이기영의 [고항]에서는 “연애 사탕”을 “쪼코렛트”라고 한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는 “난찌(lunch)라구, 서양 즘심 말이예요.”라는 대화를 볼 수 있다.  새로운 문화 유입과 동시에 한글 표기도 기묘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다시 김남천의 [맥]이라는 소설로 표현하자면 ‘우리들은 이층에서는 양식을 잡숫고 아래층에 와서는 깍두기를 집어먹는 그런 사람들이오’라는 말과 똑 떨어진다. 

일부 먹고살 만한 계층의 소설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어릴 적 시장 초입의 미제 가게에 가면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미제 물건들, 일제 물건들은 모두 다 처음 보는 물건이고 디자인도 예뻐서 ‘무조건 좋다’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런 근거 없는 나의 생각들은 식민지 조선 때부터 자리 잡았을 수도 있겠다. 

식민지 조선에서 ‘경성어’ 위에 자리 잡은 말들은 영어와 일본어였다. 언어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영어/일본어 > 경성어 > 방언 이런 식으로. 조선의 지식인층에게는 영어와 일본어가 무언가 있어 보이는 언어였던 것이다. 말은 조선어를 사용하더라도 이미 서양문물이 좋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이후 바로 우리 시대로 껑충 건너온 것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제시대를 겪었듯이 우리 한글도 똑같이 조선어로서 역경과 고난을 겪고 난 후에야 지금의 한국어가 되었다. 역경과 고난들은,

>> 첫 번째, 근대와 처음으로 대면했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외래적이었다. 

이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노력과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다.

>> 두 번째, 조선 지식인에게 한글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에 부족하고 제한적이었다. 

‘한국어(조선어) = 한국의 국어’ 혹은 ‘한글 = 한국의 문자’라는 등식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글쓰기에는 대부분 한문, 한글, 영어, 일본어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에 순한글체로 소설을 쓰고 신문에 연재된 이광수의 [무정]은 사건이라 칭할 만하다.

>> 세 번째, 193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내선일체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논의들이 있었다. 

조선인이 조선어를 버리고 완전히 일본어를 사용하게 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가, 정말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되기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등등.

이와 같은 질문들은 ‘조선 문학은 조선 ‘글’로,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여 쓴 것’이라는 조선 문학의 일반적 정의도 고민거리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작은 고뇌에 빠진다. 글자의 띄어쓰기, 구두법 punctuation과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정답은 있겠으나 정답이 없는 것이 이것들이다. 기초 국문법 강의를 찾아서 들어야겠다는 욕구가 어디에선가 울렁인다. 

직업이 에디터인 제수씨의 우연찬은 힌트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문장에서 의미가 어느 부분에서 끊기나요? 그 부분에서 띄어쓰기를 하시면 돼요.” 

그 이외에도 고뇌는 많다. 띄어 쓴 부분에서 쉼표를 찍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침표를 찍고 괄호를 열어야 하나, 괄호를 닫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식민지 시절 소설가들도 이와 같은 고뇌를 느꼈을 것이다. 나의 몇십 곱절은 괴로웠을 것이다.

초콜릿을 연애 사탕이라고 써야 하나 쪼코렛트라고 써야 하나. 


식민지 시절에 우리는 조선어만 고수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신문물에 의해 있어 보이는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했으며, 작가는 이들을 일종의 복화술사(複話術師)라고 부른다. 그들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 두 개의 혀를 가진 자들이다.

여기서 ‘복’은 배 stomach가 아닌 두 개 double의 의미이다.

(복화술의 한자는 ‘腹話術’이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複話術’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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