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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26. 2019

공중그네 / 독후감60

 135쇄를 찍은 소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모아 놓은 소설에 종횡무진 이라부 종합병원 정신과 의사가 활약한다.

모든 이야기는 자기 분야에서 나름 인정받는 이들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문제가 생겨 의사 이라부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모음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농구감독인 ‘안 감독’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그의 행동과 말은 ‘괴짜’가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에르메스 양복에 샤넬 선글라스 혹은 샤넬 상하 저지 jersey를 입고 다니는 것처럼 패션감각 또한 특이 특이하다.


 그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의 증상들도 기발하지만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의 직업과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재미있다. 뾰족한 것들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야쿠자, 1루 송구를 두려워하는 베테랑 3루수, 공중그네에서 자꾸만 떨어지는 서커스 팀의 리더. 대박인 것은 장인의 가발 벗기고 싶은 강박에 시달리는 사위 이야기다.

그렇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별의별 강박을 느끼며 밖으로 이야기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인다. 좀 이상해 보여도 거꾸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이라부가 진정한 ‘정상’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 이라부는 정신과 의사로 물리적인 의료행위보다는 대화가 주된 치료를 이룬다. 

덕분에 말의 힘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먼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라부 특유의 말투로 심각한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도무지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자기 자신과 비슷한 처지, 자기 자신과 비슷한 등장인물을 찾아가는 것이다. 동질감을 찾아 동정도 하고 비교도 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모두가 이라부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나는 자꾸만 환자들에게 관심이 간다.

고집이 있는 사람들. 문제가 있는 사람들.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켜 현실의 직시하게 하고, 주변에 사과하게 하는 것이 이라부 진정한 역할이다. 이것이 말의 힘. 대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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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말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왜 조금 더 빨리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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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부에게는 수호천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상황은 모두가 그의 편이다.

어떤 사고를 쳐도 그를 구해줄 사람은 의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이라부의 아버지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의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 일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라부처럼 내뱉어야 할 것들을 당장 쏟아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처자식도 생각해야 하고 일자리도 지켜야 한다. 다만, 이라부를 통해서 나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도 갖는다. 내가 고통스럽다면 내가 괴롭다면 억누르지 말고, 그 아픔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는 슈퍼맨도 아니고, 이라부도 아니니.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작가가 누구인지 인터넷에서 한 번 찾아보고 싶어 졌다. 

왜냐하면 다섯 번째 환자의 직업을 작가와 같은 소설가로 만들어서 자신의 고뇌와 푸념을 대신해서 풀어놓는 느낌이라 그의 속내를 읽는 것 같다. 

‘135쇄를 찍는 소설’을 쓰는 작가의 고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반대로 읽는 독자인 나는 읽으면서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소설 장르 중에 힐링 소설이 있다면 이 소설은 힐링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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