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에 앞선 작가의 『하는 말』을 읽으며 벌써 비참함을 느낀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의 흔적들은 오갈데없이 갇혀버린 남한산성의 비참함을 찾아내었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은 글을 쓰기 위해 남한산성에 머물렀을 것이다. 산과 물의 형세를 관찰했을 것이며, 성의 지세를 살폈을 것이다. 인조 14년 병자년의 그곳을 상상했을 것이며 무참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의 글로 인해 남한산성에 갇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지금에 왜 이 책을 선택해 독후감을 쓰려는 것일까?
나는 그의 글이 좋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쓰기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책을 펴자마자 글이 읽힌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암담할 듯 슬프다.
글쟁이가 글로 표현하기 전에 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부와 고민을 했을까?
이렇게도 쓸 수가 있구나! 작가는 정말 한글을 버릴 수 없겠구나!
나는 김훈을 피할 수 없었다.
몇 개월 전부터 그는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책장에서 그의 책들을 눈여겨보았으나 나의 결정은 매번 다른 책으로 향했다. 올해가 몇 주 남지 않은 오늘 결국 나는 김훈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소설 첫 구절은 항상 책의 반절을 넘게 읽을 때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읊조려진다.
그의 모든 소설의 첫 구절은 묘한 매력이 있다.
[남한산성]은 다음 구절로 시작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을 때부터였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첫 구절에서 멈춘 채 한 시간은 되뇌었을 것이다.
민족 최대의 굴욕 병자호란에 대한 소설이다.
명을 섬기던 조선은 청淸군의 침입에 임금과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빈궁과 왕자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간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투항하고 세자 일행은 심양으로 끌려간다.
기병과 보병이 치르는 전쟁을 내가 가늠할 수 없지만, 옥좌에 앉아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을 청병에게 내주었느냐고 묻는 왕은 우리의 왕이었고, 우리의 역사였다.
강화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화도도 갈 수 없었다.
남아있는 갈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청 황제 칸의 사신 일행은 대궐에서 가까운 별궁에 보름씩 묵으며 기녀를 불러들여 교접했다.
이는 정삼품 접반사가 사신 일행을 수발했다. 사신이 기녀를 내치면 사신의 부관과 구종잡배들이 내쳐진 여자를 끌어들여 품었다. 조정은 얼어붙었고 아무도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이 상황도 우리의 역사였다.
가마니를 풀고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으며 남한산성을 지킨다.
성첩을 지키는 군병들은 자정에 교대한다. 보리밥 한 그릇에 뜨거운 간장 국물 한 대접을 마시고 군병들은 캄캄한 성첩으로 올라간다. 싸우고 돌아온 유군 전원에게 밥 한 끼를 더 주며 남한산성을 지킨다.
그렇게 지키고 있는 성 안에서도 하나의 목소리는 나올 수 없었다.
싸우자고 싸워야 한다고 하는 이가 있었고, 화친하자고 하는 이가 있었으나 결론은 없었다.
모두 다 우리의 역사였다. 나는 역사가 부끄럽지 않다. 나는 임금이 부끄럽지 않다.
역사는 역사로 기억하여 지금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최대한 올바르게 이끌어 줄 것이다.
중국과 교류하고, 무역하고 외교하는 현재에서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남한산성은 다행히 우리 곁에 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하지만 [남한산성] 덕분에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남한산성에서 기억할 수 있다.
[남한산성]이 아니었다면 남한산성은 나에게 둘레길 정도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작가 김훈은 나에게 산문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칼의 노래]를 통해 이순신 장군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김훈은 나에게 남한산성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