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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04. 2020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 독후감71

 2020년 이제 우리 모두에게 1년 365일이란 새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주어진 시간에 대해 어제와 같은 하루 혹은 작년과 같은 1년이란 생각으로 무덤덤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새해의 포부로 희망찬 계획들을 쓰고 지우며 행복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계획에 우리는 만족할까? 어느 정도의 성과를 기대할까?

우리에게는 낯선 류비셰프 (아주 유명해지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 란 러시아 과학자는 우리가 무엇을 기대했건 간에 기대 이상이다. 러시아 과학사에 남긴 업적도 업적이지만 살아생전 그의 철저한 시간관리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통해 2020년 초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질문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올 한 해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류비셰프(1890-1972)는 누구인가?

우리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를 명백히 설명하는 것조차 힘들다.

[류비셰프는 학문을 넓고 깊게 연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박학다식하였던 것이다.

(중략) 스스로도 한때 자신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학자들 중에는 사진을 찍을 때 얼굴보다는 엉덩이를 찍어줘야 하는 부류가 있는데 나도 그런 쪽에 속한답니다.”]

 나는 그의 이론이나 업적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82세에 생을 마친 그의 방대한 연구 실적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어떤 방법이 이를 가능케 했는지에 더 관심이 쏠린다.

그의 시간 사용법이 그의 시간관리법이 궁금하다.


 그가 26세였던 1916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날에도, 전쟁 기간에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답사 현장에서나 기차간에서도 일기를 썼다. 사망할 때까지의 일기는 학생용 공책에 쓰였는데 나중에 류비셰프 자신이 다시 투박하지만 튼튼하게 몇 권으로 제본하였다.

 하루 동안 한 일을 간단하게 나열하고 시간과 분을 계산했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시시콜콜 적고 자기 생각을 풀어 내려가는 보통의 일기와는 전혀 다르다.

1964년 일기를 잠깐 살펴보면

1964년 4월 8일, 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 : 어제 그렸던 곤충의 정체를 완전히 밝혀냄 - 2시간 20분
> 이 곤충에 대한 논문 집필 시작 - 1시간 5분
> 추가 업무 : 다비도바야와 블랴헤르에게 편지, 여섯쪽. - 3시간 20분
> 이동
> 휴식 : 면도,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 지誌 – 15분, 이즈베스티야 지誌 – 10분
> 문학신문 – 20분, 톨스토이   [흡혈귀], 66쪽 -   1시간 30분
>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황제의 신부] 감상
기본 업무 - 6시간 45분

수십, 수백 쪽이 모두 마찬가지다. 사무적이고 지루한 대여섯 줄의 기록뿐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을 서는 시간 등의 자투리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3킬로미터 정도 되는 짧은 거리라면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산책 삼아 걸었으며, 여행을 할 때에는 반드시 가벼운 책을 읽거나 외국어 학습을 하였다. 영어도 ‘자투리 시간’을 통해서 독학했다.

 이렇게 아끼고 철저한 계산과 관리된 시간으로 시간통계 방법을 보완하고 완성했다.

매일 기본 업무에 사용된 시간이 측정되어서 한 달 통계가 나왔다.

예를 들어 1965년 8월에 기본 업무에 총 136시간 45분이 소비되었다.                    

> 기초과학 연구 - 59시간 45분
> 곤충 분류학 - 20시간 55분
> 추가 업무 - 50시간 25분
> 곤충조직 연구 - 5시간 40분
총계 - 136시간 45분

 물론 위에서 언급한 59시간 45분이 소요된 ‘기초과학 연구’ 시간에는 주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항목과 정확한 계산이 나와있으며,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계획을 세웠고, 매년 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또 5개년으로 묶었다. 5년이 지날 때마다 자신이 이루어낸 일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전반적인 느낌을 기록하였다.


 이런 식으로 시간통계를 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까?

시간통계를 내는 시간에 실질적인 업무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열심히 절약한 시간이 시간통계에 너무 많이 허비되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어김없이 계산되어 있다. 한 달 동안 시간 통계에 든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이다. 

다음 달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 다시 1시간이 들었으니 결국 한 달 동안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류비셰프에게 있어서 시간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도 같을 것이다. 통장의 잔고처럼.

그의 사례를 통해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비난해야 할까? 그저 그의 개인적 취향이었을 뿐이다. 

류비셰프 자신도 시간통계 방법을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철두철미하게 시간을 지켜 연구하는 과학자였지만,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산책도 함께했던 따뜻한 사람이었고, 시간통계 방법을 통해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1분을 한 시간처럼, 그리고 한 시간을 하루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올 한 해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으로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류비셰프라는 부지런함 성실함 근면함을 대신할 수 있는 대명사를 선사해주었다.

모두다 새해에는 '류비셰프'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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