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의 거리는 “난로와의 거리와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너무 멀면 춥고, 너무 가까우면 데기 마련이다. 난로나 사람이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기준이 되어야 상대방이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제일 처음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내 욕구와 느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인간관계는 나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거쳐서 나의 욕구와 감정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는 ‘같이 모드’와 ‘혼자 모드’를 자유자재로 전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와 친하고 교류가 활발해야 한다는 너무나 높은 목표의 인간관계도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는 정도의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인간관계가 적당하다.
자신이 생활하는 현실과 자신의 마음속이 너무 다르지 않아야 한다.
두가지가 너무 다른 상황이 누적되면 마음에 병이 나든 몸에 병이 나기 마련이다.
내 마음은 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생기는데 내가 만드는 상황이나 습관들은 자꾸 내 마음을 저지시킨다. 거꾸로 내 마음은 하고 싶지 않은데 어린 시절 알게 모르게 규정지어졌거나 기존 방식대로 해야만 하는 경우가 쌓이면 병이 나는 것이다.
참 자기 True Self와 거짓 자기 False Self가 충돌하는 것이다.
여기서 병이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혼미한 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자꾸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아야 한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주제에 유독 예민해지는지 나를 욱하게 하는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림자는 억압된 나의 욕구이며 때로는 내 안의 깊은 소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경멸하거나 비판한다면 그것은 나의 무의식적 욕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의 그림자와 마주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감정이 싹트게 된다.
나의 그림자와 마주 보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울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거나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두렵고, 그러한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옥죄고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내 마음속의 두려움이다. 이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가 불확신이 연속인 삶이다. 불확실함 속에서 답을 찾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때로는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지는 비현실적인 기대가 아닐까?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 이외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찬찬히 바라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바라보지 못하면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슬프거나 서운한 감정을 화로 표현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화가 난다. 혹은 자꾸 간섭을 하게 된다. 타인을 내 마음에 들게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내 앞에 놓인 상황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통제해야만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것은 자신인데, 타인을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이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자. 그런데 어떻게?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느낀 ‘첫 감정’을 떠올리는 것이다. 내가 느낀 처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읽어주어야 한다. 서운했으면 “서운했구나”, 슬펐으면 “내가 슬펐구나”라고 말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첫 감정 속에 들어있는 나의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원했던 상태, 내가 상대에게 바랐던 반응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해결에 도움이 된다.
막상 시도해보았으나 쉽진 않았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이 마음속에 올라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냥 느껴야 하는데 그대로 인식하기 전에 회피하거나 억압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올라오는 감정들은 무수히 많은 감정이 혼재된 채 엉켜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들을 분리하고 그것에 충분히 머무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을 괴롭히던 감정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편안해진다.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내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경청하는 것이다.
내 생각만으로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도 인간관계를 방해하는 문제점이다. 과도하게 자신에게 쏟는 에너지, 다시 말해 자기에 대한 집착 Self Interest를 외부로 돌려 타인에 대한 관심 Social Interest로 돌려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할 수 있다면 상대방도 나도 상처 받지 않는 적당한 거리의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힘들고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의 특단의 조치는 바로 이것이다. 바로 침묵!!
무시의 방법이 아닌 ‘친절한 침묵’은 묵묵부답이 아닌 상대와 나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 ‘인간관계’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직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말자.
직장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며, 나의 정체성을 오롯이 대변하는 곳도 아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이며 내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훨씬 나 자신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