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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Feb 15. 2020

권력의 언어 / 독후감77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책장에서 이 책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나지 않는 단어 하나를 찾고 있었다. 

내가 원했던 단어! 딱 내 스타일인 단어를.

그 단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책들을 뒤적거려 봤지만 몇 년 동안 찾을 수 없었다. 

운 좋게도 그 단어는 지금 이 책에 있다.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소중하다.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엔 뛰어난 기술을 힘 안 들이고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프레차투라’가 예술의 이상이었다. 예술가는 아무리 어려운 것도 무척 쉬운 것처럼 세련되게 해내야 했다. 작품 뒤에 숨은 고단한 노동과 노력은 절대 드러내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림을 주문한 사람도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는 절대로 볼 수가 없었다.




 ‘권력을 과시하거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주도권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뒤로 한걸음 물러나 상대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는 처세술은 매일매일의 사회생활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무언가 답답하고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충돌은 불가피하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충돌은 우리에게 주도권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주도권을 앗아 갈 수도 있다. 사이다 발언으로 대응할 수도 있고, 거꾸로 비참하게 당할 수도 있다.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부하직원이라고 함부로 대하셔도 되는 겁니까?”와 같은 상사의 욕설에 맞서는 대응도 있지만,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알아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우아하고 간략하게 “네”라고 반응하는 방법도 있고, 정치인들의 수법처럼 질문에 딴소리를 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질문이군요. 질문이 틀렸습니다” 혹은 약간 더 정중하게 “저는 그 질문에 답할 말이 없습니다.”와 같이 질문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착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책이다.

부탁이나 질문을 하려면 그 이유를 알려주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지시나 명령을 내릴 때에는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 괜히 상대방에게 공격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비켜주시겠어요? 기차를 타야 해요.” 보다는 “비켜주시죠.”의 간결한 표현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표현이 힘들다면 “지나갑시다. 기차 탈 겁니다.”와 같이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을 바꾸어 보는 것도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회의 시간에 부정적인 가정을 포함한 질문을 받게 되면 곤혹스럽다.

“이 부서의 혼란을 어떻게 끝내려고 합니까?” 혹은 “인터넷 전략이 참패로 돌아간 이 시점에 왜 협력 파트너를 안 찾는 거지요?” 반대로 이와 같은 유도질문을 잘만 써먹기만 하면 거의 천하무적이다.

사실 대처법도 간단하다. “유도 질문이군요.”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와 같이 간단한 상황이 아니라면, 질문이 전부 가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론하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데 그건 그냥 추측에 불과합니다.” 이어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설명한다. 

강한 대처 방법도 있다. “그 질문에는 뭐라고 해야 할지~~? 유도 질문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하던 말을 계속한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왜 그것이 유도 질문인지 근거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쪽보다는 하던 대로 자신의 논리를 계속 펼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하면서 주도권 게임을 재구성하는 언어들을 배웠지만, 솔직하게 자기 심정을 밝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상황이 급속도로 좋아지진 않겠지만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주도권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있다. 피해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내가 더 낮은 곳으로 가 억지로 상대방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주도적인 피해자 역할은 상대를 부당한 사람으로 몰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내각 겪는 손해, 부당한 일을 상대에게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무조건 극적으로 부풀려 원하는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그 손해의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주지 않으면 그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쾌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예시로써 주어진 상황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는 혹시나 겪게 될 현실에서 나를 덜 비참하게 해 줄 것이다.

갑자기 당해 멍하니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이외에도 책에는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친절한 말투인 권력 언어도 있고, 카리스마를 완성하는 권력 언어도 소개하고 있다. 카리스마엔 스프레차투라 하나면 끝이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은 듯 하지만, 항상 ‘대단한’ 성과를 세련되게 보여준다면 어찌 카리스마가 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카리스마는 탁월한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 난 이 단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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