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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04. 2020

수레바퀴 아래서 / 독후감84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그가 40대 초반에 출간한 [데미안].

그의 이름은 꽤나 유명한데 신기할 정도로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25세의 나이에 쓴 초기작인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 유년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그의 연보를 보아도 책 이야기와 닮아 있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자신이 자란 소도시에서 특별한 존재로 등장하고,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똑똑한 소년들이 걷는 단 하나의 길을 가도록 일찌감치 정해져 있다. 주州 시험에 합격해서 신학교에 입학하고, 그 후 튀빙겐 대학에 들어간 다음 교사나 목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신학교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한스는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학업을 중단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잠시 위로를 받지만 자연은 이미 망가진 그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그는 소설의 제목처럼 수레바퀴 아래 깔려버리고 말았다.

구둣방 주인인 플라이크 씨의 조카딸인 에마에게 느낀 첫사랑으로 혹은 직업인으로서 첫걸음인 공장에서 수습공으로 일하며 느낀 노동의 기쁨과 삶의 의욕으로 상황의 반전을 기대했으나 모두에게 서글픈 미소를 남길뿐이었다.


 주州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한 한스는 신학교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으나, 독자인 나는 이야기 전개에 크나큰 기대가 없다. 일반적인 인생처럼 이야기는 흘러갈 것이다. 소설이지만 헤르만 헤세 유년시절의 자전적 이야기이므로 논픽션적인 요소가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작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스가 신학교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된 이유는 신학교에서 만난 친구 헤르만 하일러 때문이다. 하일러도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아이로 손꼽히지만 노력파인 한스와는 다르다. 그는 분명한 자신의 생각과 말을 가지고 있다. 교사에게는 다른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사고를 일으키는 ‘골칫덩이’ 일뿐이다.

 한스가 하일러에게 용감하게 용서를 구하는 부분부터 나는 한스가 힘겹게 투쟁하며 알에서 깨어 나오는 줄 알았다. 반대로 한스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반전은 없었다.


 반전이 좀 없으면 어떤가?

좀 더 강한 자극과 영웅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이다.

유년시절의 회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면 이유 없이 어떤 날이 떠오른다. 왜 그날이 기억나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기억나는 그 날은 나에게 무의미하지만 이 책을 통해 회상하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한창 예민할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한스의 방황을 통해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많은 위안이 될 듯하다.

유년기가 가물가물한 나에게는 한스의 이야기가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한스네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섬세한 묘사도 너무나 좋았다.

학창 시절의 갖가지 에피소드, 첫사랑이 남기는 작은 감정들까지 모두 글로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엄청난 반전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지금 유소년기의 내 자녀들을 잘 토닥이지 못하는 나에게 따뜻한 아빠이지 못하는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 아닐까?

한스의 아버지인 요제프 기벤라트 씨는 얼마나 허망할까? 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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