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오감은 성공을 향해 있다!
성공자는 책과 신문을 보지만 실패자는 인터넷과 TV를 즐겨본다!
요즘 지하철을 타게 되면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유심히 관찰 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휴대폰이 나온 뒤로부터, 특히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 10명 중 9명 이상은 고객숙여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10명 중 1명쯤은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지하철에서조차 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책과 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나의 상상속에서 성공풍선이 그들의 머리위에 떠오름이 보인다.
시대가 급변할 수록 성공자의 삶과 실패자의 삶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듯 하다. 성공자는 성공의 키워드를 가지고 성공의 기운을 가득 채우는 반면에, 실패자의 실패의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성공자는 긍정의 말을 듣고 실패자는 부정의 말을 듣는다!
긍정의 말은 긍정을 끌어당기고 부정의 말은 부정의 기운을 끌어당긴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인 시크릿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유한 집단에 속해 긍정의 말을 계속 듣게되면 긍정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이를 당연시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의 잠재의식은 긍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어딜가나 긍정의 기운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간다.
반면에 부정의 말이 들리면 그곳으로 자신을 안내하지 않아 부정의 기운에 휩쓸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우리의 청각 또한 부정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걸러버리고 긍정의 말은 귀를 통해 뇌로 전달하고 온 몸의 세포하나하나에 긍정의 기운을 담아내다. 우리의 삶이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채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공자는 향기를 좋아하고 실패자는 냄새에 찌들린다!
성공자는 향기가 피어나는 곳을 종아한다. 후각을 통해 들어오는 좋은 향기는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퍼져 건강하게 할 뿐아니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악취가 나는 냄새는 우리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고 하고자하는
바를 꺽어버린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직 생각나는 것은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자는 것 뿐이다.
성공자는 향기가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향기가 묻어나는 장소를 좋아한다. 책 향기를 좋아하고, 자연의 향기를 즐긴다. 이를 통해 얻은 행복감을 가지고 삶을 더욱 즐겁게 즐기고 희망찬 곳이라 여기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한다.
성공자는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실패자는 입이 원하는 음식을 먹는다!
예전과 달리 음식이 너무나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할 수록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충동적인 음식으로 인해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하나가 음식을 가려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식을 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음식은 몸이 좋아하는 것과 입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몸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입이 싫어하는 음식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보다는 입의 결정에 따르고 입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먹는다. 이럴경우 여지 없이 몸은 싫다는 반응을 보이고 그에 대한 표현을 하기 마련이다.
보통 성공자는 몸과 입의 취향을 비슷하게 만든다. 입에게 무분별한 자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음식을 섭취할 때에는 항상 몸과 입이 충분히 상의하게 만들고 이에 적극적으로 따라 두 기관(몸,입)이 모두 만족하는 방향을 따른다.
성공자는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실패자는 다가와도 악수를 피한다!
성공할수록 그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서로 도우며 같이 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익숙해져 있다. 첫 만남에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한다. 이렇게 눈빛과 악수라는 스킨십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금새 친해지게 된다. 성공자들의 사람들을 만날때 보여주는 환한 미소와 악수와 같은 스킨십은 그들에게는 이미 본능이 되어 있는 듯 하다. 그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한다.
반면에 실패자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꺼린다. 그들 혼자만으로도 성공하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잠깐의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일까? 누군가가 그들에게 미소와 악수를 청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감마저 든다. 유무형의 스킨십을 거부한 그들에게 남는 것은 고립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