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나이 든 차

<그랜 토리노>, <드라이브 마이카>, <노매드 랜드>

by 아무거나

요즘 하루가 멀다고 신차가 나온다. 자동차 업체들은 같은 모델이라도 조금이라도 새것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세련되고 반짝반짝하는 외관을 지닌 차들이 서로 뽐내듯이 거리를 달리고 있다. 새 차에는 새로운 기능이 있고, 동시대적인 혹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가졌다.

그런데 필연적으로 새 차에 없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다. 차의 주인과 함께 나이 들어온 시간들. "차 같은 물건에 뭐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세월을 지낸 차에는 세련되지 않을지언정 묵직한 개개인의 감정들이 묻어있다. 이를 잘 나타낸 영화들이 있다 (스포일러 있음).


<그랜 토리노, 2008>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클린트 이스트 우드는 작년, 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92세에도 <크라이 마초>라는 작품에서 주연과 감독을 맡은 현역 영화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강성 보수주의자이다. 그의 정치적인 관점은 그의 영화 안에 숨어있거나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008년작 <그랜 토리노>는 그의 보수주의자적인 관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왈트 코왈스키는 미국 미시간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노인인데, 방금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이제 마음을 주는 존재는 자신의 개 밖에 없는 듯하다. 따로 사는 두 아들, 며느리들과 손주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도, 가깝지도 않다. 그에겐 주변에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그중 한 부류가 자기 집 주변에 하나둘씩 이사를 오는 몽족들이다. 왈트는 그들을 야만인들 혹은 한국전을 참전했던 기억으로 gook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언어로 부른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존재들은 아마도 몽족 마을에 젊은 갱들 혹은 흑인 깡패들 같이 마을을 어지럽히는 이들 인 듯하다. 한편 왈트의 옆집에 사는 몽족 가족은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그 집에는 똑 부러지는 언니인 수와 착한 동생인 타오가 있다. 영화는 타오가 몽 갱들의 협박 때문에 왈트의 1972년형 빈티지 카인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가 실패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왈트에게 그랜 토리노는 그저 멋진 올드카는 아니다. 코왈스키는 과거 50년 동안 Ford 자동차에서 일했었고, 그랜 토리노에 steering column을 넣는 일도 했다. 왈트에게는 그 시절의 (아마도 50년~80년대 정도로 추정되는) 미국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그는 자신의 오래된 냉장고를 “heavy but, runs like clock though, don’t make like this anymore”라고 말한다. 그는 일본차 판매를 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못마땅해한다. 왈트에 눈에 이민자들과 일본차들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시키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1972년형 그랜 토리노는 왈트가 살아온 인생의 좋았던 청춘 시대의 산물이다. 또한 그 시절에 대해 왈트가 느끼는 향수,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하는 차이다. 그런 그가 이민자인 타오에게 마음을 열고, 이 이웃집 소년을 위해 인생을 거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은 심금을 울린다. 왈트가 죽은 후, 그랜 토리노를 물려주는 사람은 자신의 아들도 손녀도 아닌 이민자 타오이다. 왈트는 유서에서 타오에게 그랜 토리노에 이상한 튜닝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타오가 그랜 토리노를 타고 해변 도로를 달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드라이브 마이카, 2021>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본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가 <아사코 I&II>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영화 초반 많은 시간을 들여 보여 주는 것은 주인공 아사코와 가후쿠의 복잡다단한 내면이 형성된 개인의 역사이다. 남에게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과거 연애와 결혼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상대 연인을 상실하게 되고 그로부터 큰 상처를 받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들은 굳이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직시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드라이브 마이카>의 가후쿠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차는 구형 빨간색 SAAB이다. (찾아보니 아마도 80~90년대에 나온 SAAB 900 model인 것 같다). 내성적인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사적이고 편안한 공간은 그의 차 안이다. 그가 과거에 운전을 허락했던 유일한 사람은 그가 사랑했던 아내 오토이다. 그는 혼자 운전할 때 오토가 연극 연습의 상대역을 녹음 해준 테이프를 듣고 연습하면서 운전을 했고, 아내가 죽은 후에도 그 루틴은 계속되었다. 그에게 차는 죽은 아내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런 그는 의도치 않게 않게 젊은 여성 드라이버 마사키를 두게 된다. 처음에 완강히 거부했지만 연극제를 주체하는 기관의 내부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운전을 맡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가후쿠도 시간이 지나면서, 미사키의 세심한 운전 덕에 자신이 자신의 차의 뒷자리에 탑승하는 것에 적응해 간다.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불쑥 들어왔던 마사키에게 점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레 가후쿠와 마사키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개인적인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 어느 날 가후쿠는 차 안에서 자신의 아내의 과거 내연남과 깊은 대화를 마치게 된다. 그 내연남을 내려준 후 가후쿠는 마사키의 옆자리에 옮겨 고 선루프를 열어 같이 담배를 태운다. 그들의 심리적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가장 괴로운 선택을 앞두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마사키에게 그녀의 고향으로 차를 타고 가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랜 토리노>에서 차가 지니고 있는 상징과 가치가 중요했다면, <드라이브 마이카>에는 오래된 차의 다소 좁은 공간과 편안한 소음이 중요해 보인다. 그 공간은 사람의 감정을 무장해제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생각해보면 차 안에서 동승자와 의도치 않게 깊은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인지 <드라이브 마이카>의 연극배우들은 가후쿠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가후쿠의 차에 동승한다.


<노매드 랜드, 2020>

짧게 덧붙이고 싶은 다른 영화는 <노매드 랜드>이다. 노매드들에게 Van는 그 자체가 그들의 집이며 이동 수단이다. 또한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한편 개개인의 애환과 역사도 담겨 있다. 펀은 자신의 오래된 Van을 고치는 것에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정비소 직원의 말에, 그 차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고 그건 나의 집이라고 말한다.


<드라이브 마이카>의 마사키는 가후쿠에게 당신의 차는 그동안 소중히 다뤄온 것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꾸라고 권유하는 시대에 오래 간직한 물건들이 가지는 사사로운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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