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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02. 2019

군대, 취업 그리고 결혼

40대 남자들의 자기소개서 II

진학을 하든, 취업을 하든 스무 살(만 나이로 19세)이 되면 국가, 정확하게는 병무청으로부터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온다'. 신체검사 통지서의 안내에 따라 신체검사를 받고 나면 학력과 신체 등급에 따라 병역의 종류가 정해진다.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40대는 출생아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입영 대상자도 그만큼 많았다. 그래서 요즘처럼 원하는 날짜에 입영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또, 일반 현역병보다 복무 기간이 짧고 출퇴근이 가능한 방위병으로 복무한 경우도 많았다. 40대 후반 남자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폭력적이었던 군대 문화를 마지막으로 겪었던, 소위 말하는 마지막 '쌍팔년도(88) 군번’ 세대였다. 부대마다 문화 차이는 있겠지만 1990년 초중반에 입대한 사람들도 세습화된 폭력에 시달린 경우가 빈번했다. 1980년대 군대처럼 아랫 군번들을 줄줄이 엎드리게 하고 매질을 하는 일명 ‘줄빠따’는 거의 없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군대 내에서는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반면에 군부대 안에서 일어난 사고가 뉴스를 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군대라는 곳이 워낙 고립되어 있었고 지금과는 다르게 인권에 대한 관심도 적다 보니 권위적, 폭력적으로 굴러가기가 그만큼 쉬웠다. 그런 곳에서 2년여를 지냈으니 군대식 권위주의가 40대 남자들의 의식 안에 은근히 베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전역을 한 후 남자들의 삶은 다소 진지해진다. 20대 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곧 닥쳐올, 상황에 따라서는 이미 눈 앞에 와 있는 사회생활에 대비해야 했다. 지금 40대 중반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무렵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대학 1, 2학년을 다니던 지금의 40대 초반 남자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휴학이나 입영을 택했다. 당시 졸업을 할 나이였던 지금의 40대 중반 남자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도 외환위기에서 안전하지 못했다. 많은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진출을 준비하고 있거나 갓 사회에 나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던 지금의 40대 남자들에게는 고통의 시절이었다.


외환위기 사태가 어느정도 정리되던 1999년을 전후로 IT(정보통신) 산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IT 산업 분야를 정책적으로 키웠고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당시 사회 진출에 목전에 둔 지금 40대 남자들의 많은 수가 벤처기업에 종사를 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며 IT 산업 분야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그 많던 스톡옵션(당시 벤처기업들은 낮은 임금 대신 스톡옵션을 조건으로 직원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들이 휴지가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외환위기로 한껏 경직된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팍팍한 삶에 익숙해진 채로 21세기를 맞이했다. 그런 와중이었지만 결혼적령기가 된 지금 40대 후반들을 필두로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다. 40대의 맏형 격인 1970년 생이 2000년 당시 만으로 서른이었다. 남자의 평균 혼인 연령이 33세를 돌파한 지금 관점으로 보면 이르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랐다. 비록 외환위기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20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남자의 평균 혼인 연령은 30세가 채 되지 않았다. 덕분에 40대 남자의 맏형 격인 49세 남자들의 자녀가 2019년 현재 대학생인 경우도 그렇게 드물지 않다.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퍼져있던 지금의 40대 남자들은 각자의 자리매김을 위해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사회 진출을 준비하던 지금 40대 초반의 남자들은 자격증 시험, 공무원 시험, 토익, 토플 따위에 매달렸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급속하게 변화한 취업시장의 구조는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에 취업준비생들을 몰리게 했다. 일반 공무원만이 아니라 경찰, 교사, 군인 등의 직업도 예전보다 높은 인기를 끌었다. 일반 기업에 취직하려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적고 대우가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애를 썼다. 


경쟁자들과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한 스펙 쌓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이미 취업을 한 사람들도 자기개발 시장으로 내몰렸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상황에서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오직 자신의 실력과 능력 밖에 없었다. 직장인의 고전적인 자기개발 분야인 어학뿐만 아니라 직무능력 개발, 직장 생활을 위한 처세술, 심지어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재테크 분야도 학습의 대상이었다. 외환위기 사태가 만든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30대와 20대의 불안과 초조함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30대에 들어서면 남자들의 삶은 극적인 변화가 드물다. 삶을 유지하고 이어가기 위한 경제활동, 가정의 유지, 육아로 집중된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길을 택하는 일은 드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것 하나 없이 쳇바퀴를 도는 듯한 삶의 궤도에 몸을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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