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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07. 2019

자살을 참았더니 암이 오더라

40대 남자들의 지금 I

모든 연령층은 저마다의 현실을 짊어진다. 10대는 학업을, 20대는 사회 진출을, 30대는 삶의 안착과 발전을, 50대는 생활의 안정과 노후준비를, 60대와 70대는 남은 삶의 안위를 짊어진다. 서로 모양새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미래를 향한 방향성이 있다는 점은 같다. 반면에 40대 남자의 현실은 현재에 묶여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껏해야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에 들거나, 값이 오를만한 집을 사거나, 괜찮은 주식을 사두거나 하는 정도가 전부다. 대부분의 노력과 힘은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데 집중으로 쓰인다. 자녀들은 스스로 삶을 일구기에는 아직 어리고 부모님은 자식에게 의지할 나이가 되어간다. 집안의 대소사도 챙겨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서 신경 써야 할 일도 끊임이 없다. 게다가 삶을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지금의 사회 구조 안에서는 경제능력이 약할수록 미래 보다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40대가 되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 충고와 조언은 담은 글이나 책은 인터넷이나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솔개의 환골탈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서 40대 인생 설계를 말할 때 단골처럼 등장한다. 솔개는 수명이 70년 정도인데 40년 정도 살고 나면 부리와 발톱이 너무 길어져 먹이감을 쉽게 잡을 수 없게 되고 깃털은 너무 많아져 날아다니기에 무거워진다. 솔개는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 뽑아 새로운 부리와 발톱을 자라게 하고 깃털을 뽑아서 몸을 가볍게 만든다. 이것이 솔개가 남은 30년의 수명을 대비하는 방법이다. 40대가 되면 부리가 부러지고 발톱과 깃털이 빠지는 수준의 변화를 통해 남은 삶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교훈이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솔개가 제 스스로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과 깃털을 뽑는 일은 없다. 부리와 발톱이 정상적으로 다시 자랄 리도 없지만, 설령 부리와 발톱이 다시 자란다고 해도 그 동안 사냥을 하지 못하면 솔개는 죽고 만다.


40대 남자의 처지는 환골탈태가 가능한 우화 속의 솔개가 아니라 부리와 발톱과 깃털이 다시 자라지 않는 솔개와 가깝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게다가 그 위험부담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이 같이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말이 좋아서 ‘인생 2막’이지 새로운 막을 올리기 위해서는 희생과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성공이 값지다고들 말하지만 고통이 따른다고 성공이 보장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에는 노력이 반드시 따르지만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을 뽑아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며 변화의 용기와 희망을 갖으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공 사례가 많다는 것과 나의 성공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과 깃털을 뽑는 변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 성공 사례가 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삶에는 관성이 있다. 달리던 차가 급히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바꾸면 몸이 한쪽으로 쏠리듯이 삶의 경로를 바꾸거나 급정거를 하면 생활도 중심을 잃는다.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지 않았다면 유리창이나 핸들에 머리를 처박을 수도 있다. 20대나 30대 초반은 아직 속도가 많이 붙지 않아서 그나마 충격이 덜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는 30대 중반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속도가 거의 정점에 이르는 40대 남자들이 삶의 관성을 이겨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뒷자리에는 가족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급커브나 급정거를 했을 때 겪어야 하는 상황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핸들을 굳게 잡고 속도를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잘 다니던 대기업 직장을 그만 두고 1인 사업가가 되거나,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던 장사를 걷어치우고 연극배우가 되거나 하는 일은 보통의 40대 남자들에게는 낭만이 아니라 위험일 뿐인 것이다. 


이런 현실은 40대 남자들에게 변화에 대한 도전을 기피하게 만든다. 옹졸하고 비겁하다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패하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도전이 도박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외치는 그 누구도 개인의 실패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풍족한 삶을 타고 났거나 일찌감치 성공을 거둬 여유가 있지 않은 평범한 대부분의 40대 남자들은 위험이 따르는 변화보다 작은 안정이라도 보장되는 머무름을 선택한다. 사실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직업을 지속해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40대 남자들은 이미 벅차다.


한편으로는 그 벅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현실의 삶을 지탱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은 의식주 해결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삶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의식주로 대변되는 생리적 욕구 이외에 사회적 욕구도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여행을 가고, 문화생활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더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더 큰 차를 타는 것도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세상이다. 삶의 벅참은 그런 욕구들이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의식주를 비롯한 여러 욕구들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을 치뤄야 한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한 수입이 필요하고 그 수입은 일을 해서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장에 출근을 하고,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는 것만으로 모든 욕구를 해소하고 생계의 안정을 확보하며, 미래의 안락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자영업은 2~3년을 넘기기가 힘들고 원대한 포부로 시작한 사업은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꼬박꼬박 월급을 타는 직장생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때 등장했던 '사오정'의 개념은 이제 직장생활의 기본 조건이 되었고 '평생 직장' 개념은 아버지 세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설의 단어가 되었다. 그래도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40대 남자들은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들을 아직 한창 일할 나이로 인정한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40대의 실업률이 늘어나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 많은 40대 남자들은 신체 능력을 30대에 고정시켜 놓기 일쑤다. 쓸 일이 없어서 그렇지 여전히 30대와 맞먹는 신체 능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다. 오랜만에 한 운동에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 것이라 자신을 합리화한다. 처지는 가슴살과 솟아오른 배를 나잇살로 얼버무리고,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피로 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주저앉는다.


2017년 통계를 보면 40대 남자들은 암으로 가장 많이 죽는 세대이며 지난 5년 동안 자살률이 두 배로 뛴 세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첫 번째는 자살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10대, 20대, 30대는 아직 '신체적 결함' 때문에 죽을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평균 수명을 대입해 보아도 아직은 신체적으로 괜찮은 축에 속해야 하는 40대의 첫 번째 사망원인은 암이다. 10대~30대의 첫 번째 사망원인이 자살이었다가 40대부터는 사망원인이 암으로 순위 바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고 싶어도 참고 살았더니 암이 오더라."라는 서글픈 우스개 소리도 있다.


그렇게나 참았던 자살도 40대에서는 평균을 넘어선다. 위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녀를 통틀어 인구 10만 명 기준 자살자의 수는 26.5명인데, 남성은 37.5명이다. 10대~30대 남성의 경우 연령대 별 자살자의 수는 각각 (10만 명당) 4.6명, 20.3명, 32명으로 남성 전체의 자살률인 37.5명 아래다. 하지만 40대 남성은 42.1명으로 평균을 추월한다. 이는 40대 여성의 자살률 17.3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여성의 자살률은 15.5명으로 10세를 단위로 한 모든 연령층에서 남성보다 낮다. 심지어 50대를 넘어가면 남녀의 자살률 차이가 세 배를 넘어간다. 40대 남자의 사망률을 보면 글을 쓰는 나 역시 40대 중년 남자의 한 명으로서 우울하기까지 하다. 10대~30대 남성의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9.3명, 50.8명, 86.6명이다. 그러다가 40대가 되면 221.4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40대 여성의 사망률이 99.2명인 것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그 후로 50대, 60대가 되면 사망률이 500, 1000 단위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삶을 지탱하기 늙어가기 시작한 몸을 혹사하며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바로 40대 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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