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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09. 2019

감정의 정의

인간의 감정 I

우리의 몸이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것을 감각(感覺)이라고 한다. 감각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신체 기관에 따라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으로 분류되며 우리는 이를 오감(五感)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몸은 자극을 받으면 해당 감각에 대응하는 감각기관이 작동을 한다. 감각기관은 물리적 자극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신경세포(뉴런 neuron)를 통해 뇌로 전달한다. 이렇게 전달된 감각을 뇌가 해석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를 지각(知覺)이라고 한다. 자극에 대한 신체의 물리적 반응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자극에 대한 반응은 단지 물리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리적 감각과는 별개로 우리의 마음도 자극에 반응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향해 욕설을 한다고 가정하자. 일단 감각기관인 귀로 받아들인 자극을 뇌가 소리로 지각할 것이다. 그리고 욕설의 정도에 따라서 불쾌함이나 분노, 미움, 혐오 같은 감정(感情)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우리의 몸이 자극에 대해 물리적 반응을 할 때 우리의 마음도 자극의 맥락을 해석하여 반응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이다.


감각은 ‘나’ 이외의 ‘타자(他者)’로 이루어진 외부 세계와의 접점이다. 나와 외부세계는 감각으로 연결되며 우리는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의 인식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생긴다. 이 말은 곧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외부 세계와 접점을 유지하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다. 삶의 모든 순간은 우리의 마음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마다 감정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물리적 고통과 정신적인 흥분을 시작으로 자극에 노출된다. 심리학자들은 태어난 지 2~3개월 정도까지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그저 좋음과 나쁨 정도로 구별한다고 말한다. 그 후 7개월 정도가 되면 기쁨, 분노, 슬픔, 놀람, 공포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시기는 오로지 외부 자극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2살 정도가 되면 부러움, 자부심, 죄책감,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을 나타난다. 이런 감정들은 자기를 인식하고 평가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감정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상황을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한 자극들은 더욱 다양해진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자극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세분화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갖게 된다. 


감정은 나의 의지나 바람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성에 기초한 의지로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지는 감정의 표현을 제한할 수는 있어도 감정이 생겨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감각 체계는 모든 상황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극들은 감정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애를 써도 감정은 무조건 생겨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경험해온 것이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감정이 우러나는 현상을 원래 그런,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원래 그렇고’, ‘당연히 것’들은 우리의 지각에서 홀대받기 마련이다. 


우리가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에 얼마나 무감한지는 그것의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할 수 있다. 특히 특별한 목적이 없는 생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의 내리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감정이야말로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에 대해 쉽게 정의하지 못한다. ‘감정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기껏해야 ‘기분’이나 ‘느낌’ 같은 유사한 개념의 단어들로 치환하는 정도에 그친다. 물론 세상 모든 정의가 그렇듯이 감정에 대한 확고하고도 불변하는 정의도 없다. 그럼에도 감정에 대한 정의는 필요하다. 보편적인 정의가 있어야만 같은 창을 통해 집 밖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인식과 이해의 틀이 같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은 감정을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 ‘직면한 사건에 대한 순간적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정의하기에 감정은 너무 세밀하고 복잡하다. 감정을 뜻하는 쓰이는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말로 정념(情念), 정동(情動), 정서(情緖), 느낌, 기분 등의 단어들이, 영어로 emotion, affect, passion, sentiment, feeling 같은 단어들이 감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 말들은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는 하지만 어감이나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정념(情念)은 영어로 passion이며 ‘고통받다’라는 뜻의 라틴어 passio가 어원이다. 주로 격정적인 감정을 뜻하며 열정, 정열, 격정 따위로도 해석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정서 중에서도 격렬한 것을 정념이라고 했으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사랑, 증오, 두려움, 분노 같은 일시적이고 격한 감정들을 정념으로 구분했다. 


정동(情動)은 객관적으로 드러난 감정을 뜻하며 영어로 affect다. affect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마음이나 몸의 상태를 뜻하는 라틴어 affectus에서 나온 말이다. ‘관찰 가능한 감정 상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주로 정신과 분야에서 많이 쓰인다.


정서(情緖)는 emotion, feeling, sentiment 등으로 번역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과 가장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emotion은 흔들리다, 흥분시키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emotus에서 나온 말이고, sentiment는 ‘느낌’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sentire가 어원이다. 정서는 정념과는 반대로 약하고 장시간 계속되는 감정들을 뜻할 때 쓰이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기분’이라는 말이 정서와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기분’은 어떤 감정으로 인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며 영어로 mood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감정을 뜻하는 말이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것은 감정의 속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서, 자극의 세기에 따라서, 경험 여부에 따라서 제 각각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보편성은 있지만 모든 상황에 부합하는 기계적인 규칙성은 없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근래에는 과학자들까지 각자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감정에 관한 탐구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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