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회의의 굴레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직장에서의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여럿이 모여서 업무에 대해 의논하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의 그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장인은 없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직장인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모든 회의가 직장인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불필요한 회의가 많다고 응답하는 직장인이 69.6%나 되었다.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하는 회의다. 어림잡아도 1년이면 100번이 넘는다. 불필요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직장인 열 명 중에 일곱 명이 불필요한 회의가 많다고 느낀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회의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처럼 효율성과 필요성에 대해 회의감을 들게 하는 회의의 유형에는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
무결론 회의
'무결론 회의'는 오랜 시간 얘기가 오가지만 결국은 아무 결론이 없는 회의다. 회의를 하는 동안 여러 말이 오가기는 했는데 정작 회의를 마치고 나서 보면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말이 나오는 유형이다. 직장생활에서 이런 유형의 회의는 의외로 많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의 40%가 회의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날 때가 많아서'라고 답할 정도다. 물론 결론을 내지 못할 만큼 의견 대립이 첨예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기 어려운 복잡하고 중요한 안건을 다룰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안을 다루면서도 제대로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그대로 시간 낭비다.
회의가 결론 없이 마무리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회의에 참가한 직원들의 참여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결론을 내기에는 정보나 자료가 불충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일반적으로 리더)이 몫을 제대로 못한 것이 이유다. 회의를 이끄는 사람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으로 하여금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명확한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회의를 이끌어야 한다. 회의 참여자들이 의견을 많이 낸다고 해서 회의의 효율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회의의 결론을 리딩(Leading)하는 것이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의 가장 큰 임무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은 결론을 향한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회의에 참여한 사람의 생각을 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의견 없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면 여러 생각들이 널브러질 뿐이다.
무결론 회의는 일회성 시간 낭비로 끝나지 않는다. 결론 없는 회의는 또 다른 회의를 예정할 수밖에 없다. 회의에 참여한 직원들은 전에 했던 얘기를 또 하기 마련이고 또다시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반복해서 시간 버리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기탄없이 얘기해보라는 말만 던지고 논의가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회의를 이끄는 사람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소 거칠더라도 결론을 내고, 또 다른 논의를 통해 그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는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회의만 해서는 제대로 된 결론을 내기 힘들다. 회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습관적 회의
많은 직장에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전에 회의를 많이 한다. 지나간 주의 중요 업무에 대해서 강평하고, 한 주의 업무 계획을 점검하고, 특이 사항을 확인하고, 실직적인 업무 방안을 수립한다. 목적을 생각하면 실용적인 축에 드는 회의다. 문제는 굳이 모일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모아 놓기만 한다고 회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적의 이유가 될 만한 사안이 있어야 한다. 회의의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특별한 사안이 없을 경우에는 회의를 굳이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안된다.
무슨 얘기를 할지, 어떤 결과를 얻을지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월요일이니까', '매주 이 시간에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모여 앉아 있는 것은 습관일 뿐이다. 모이기는 했는데 할 말은 없고, 다들 앞에 놓여 있는 다이어리만 쳐다보고, 의미 없이 뭔가를 받아쓴다. 그리고 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뭐 할 말들 없어요?"라고 그제야 회의 안건을 찾는다. 이 정도면 "우리는 쓸데없이 괜히 모여 앉아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습관은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에 생각을 덜 하게 만든다. 그래서 습관에 따라 움직이면 생각을 덜 해도 돼서 한편으로는 편하다. 습관적 회의도 규정된 행동 패턴을 따르는 것이라서 그런 편리는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지 고민하는 것도 직장인에게는 일인데, '월요일 오전은 주간 회의'라는 습관을 따르면 하루의 절반에 대한 계획은 따로 필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습관적 회의를 버리면 그 시간만큼 다른 행동과 생각에 투자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가끔 시간을 죽여야 하는 습관적인 회의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날벼락 회의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회의는 직장인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곧 외근을 나가야 할 수도, 업무로 자리를 비웠을 수도, 급한 업무로 촌각을 다투는 중일 수도, 한창 업무에 집중해서 최고의 효율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회의합시다!"라는 한마디는 모든 흐름을 끊어버린다. 정말 다급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일 년에 몇 번이다. 직장이라는 곳은 루틴에 의해 돌아가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의외로 안정적이다. 바로 처리 못해서 한 번에 무너지는 그런 조직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날벼락같은 회의가 잦다면 그것은 리더의 성향 때문인 경우가 많다. 주로 독선적인 리더십을 가진 리더를 만나면 이런 일을 겪기 쉽다. 독선적 성향의 리더는 직원 개개인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은 채 '긴급 사안'이라는 자신의 인식만을 강조한다. 급히 자료를 찾아내라고 호들갑을 떨고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을 빨리 불러들이라고 닦달하는 일도 예사다. 직원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잔뜩 긴장해서 회의에 참여한다. 리더가 빨리 대안을 내라고 직원들을 들볶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경황이 없던 직원들의 머리는 굳어버린다.
물론 리더의 상황 인식이 옳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직원이 항상 긴급한 사안이 발생할 것을 염두 해면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예상하지 못했거나 준비되지 않는 일에 당장 답을 내놔야 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직원들의 두뇌회전을 방해한다. 이런 식의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는 팀원이, 부서원이, 동료 직원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리더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다. 업무의 흐름 따위는 관심 없이 그저 자신의 의지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려 들고 그 안에서 직원들은 그저 '부하'로 여기는 리더의 전형이다. 그러니 회의의 분위기도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회의에 끌려 들어온 판국에 의견이 철철 넘쳐나지도 않을뿐더러 적극적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날벼락 회의야 말로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나쁜 유형의 회의다.
묵언수행 회의
회의를 한답시고 직원들 모아 놓고서는 업무에 관해서는 별 얘기가 없고 굳이 말로 안 해도 괜찮을 전달 사항만 읊어대거나 회의를 주재한 당사자의 훈화(잔소리)만 잔뜩 늘어놓는 것도 직장인들 속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회의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가지 방법이다. 대부분 직장에서의 회의는 여러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업무의 효율을 확보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실제 업무의 주체인 직원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표현되고 그런 것들이 실무에 반영되어야 회의가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원들이 말할 기회는 전혀 없이, 그저 팀장이나 부서장 혼자서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리거나 직원들이나 부서,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면 그것을 회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호 의견 교환이 없으면 회의가 아니다. 리더 혼자서 떠들고 있다면 그것은 그냥 '소집'일뿐이다.
굳이 의견 교환할 필요가 없는 단순 전달 사항이라도 얼굴을 보고 직접 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그런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의미가 있다고 해서 필요성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전달 사항을 공지하느라 굳이 회의까지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또, 리더로서 부하직원들에게 의견이나 감상을 말하는 것도 소통의 한 가지 방식이라는 구실을 내세우기도 한다. 소통은 상호 작용이다.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속마음을 얘기하고 싶으면 직원들의 속마음도 들을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회의다.
블랙홀 회의
직장에서 하는 회의는 보통 부서나 팀 단위로 한다. 하지만 때로는 논의 사항에 한정이 있어서 굳이 모두 모일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처럼 사람을 붙잡아두는 회의가 있다. 이런 회의에 들어가면 어떤 이는 회의 시간 내내 자신의 업무와는 관련 없는 일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척을 해야 한다.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은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업무의 효율 측면에서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직원이 상세한 내용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면 그에 맞춰서 회의를 진행하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끼리 그 정도 관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관심은 필요에 따라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 그렇다. 남의 일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관리자급 리더의 임무이지 일반 직원의 일은 아니다. 억지로 앉아 있는다고 해서 자신의 업무 분야도 아닌 일에 관심이 갈 리는 적다.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원을 회의라는 이름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는 그런 경계를 잘 살펴야 한다.
회의의 시작과 끝은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직장에서의 회의를 이끄는 사람이 리더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의에 대한 리더의 감각과 고민은 회의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회의를 주관하는 리더는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되는대로 회의를 잡다 보면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불편함까지 줄 수 있다. 직원들이 일을 잘하도록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역할은 리더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다. 리더가 이 역할에 대한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직원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안 하느니 못한 회의의 주재자가 되기 쉽다.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의 입장과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의 입장을 모두 아우르는 올바른 회의의 전형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직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회의가 문제의 해결방안을 구하고, 상황을 개선하고, 업무 효율을 재고하려는 목적을 갖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회의의 목적은 결국 실제로 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향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회의는 리더들이 주재하지만 그 주체는 직원들이어야 한다.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필요한 회의, 하는 것이 더 나은 회의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