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 gossip, 개인에 대한 나쁜 소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항상 말이 떠돈다. 사실이 떠돌기도 하고 거짓이 떠돌기도 한다. 말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떠도는 말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원해서 떠도는 말도 있다. 사람들의 입을 건너 다니는 그런 말들을 우리는 '소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직장에도 소문은 즐비하다. 그리고 소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도 의외로 많다. 잡코리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쁜 소문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59.1%나 되었다. 직장인을 곤란하게 만든 소문으로는 사내 연애 등 이성관계에 관한 것이 32.5%로 가장 많았다. 주사(酒邪) 같은 특정한 버릇에 관한 소문이 21.2%, 경쟁사로의 이직에 관한 소문이 17.2%, 낙하산 채용이나 부정 채용에 관한 소문이 7%, 임직원과의 혈연관계가 5.4%, 금전문제 4.2%였다.
소문을 무조건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문은 지극히 가치중립적이다. 소문은 그 내용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면 그것은 좋은 소문이다. 소문의 당사자는 낯간지럽거나 쑥스러울 수는 있어도 해를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문의 내용이 위에서 본 설문의 응답 같은 것들이면 당사자는 곤란한 입장이 되기 쉽다. 처음 말을 한 사람이나 그 말을 옮긴 사람은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을 별로 구별할 필요가 없겠지만 소문의 당사자에게는 '나쁜 소문'이다. 게다가 위의 설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직장인을 곤란하게 하는 소문의 소재들은 거의가 업무와는 관계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떠도는 개인에 대한 말들은 그냥 소문이 아니라 '가십(gossip)'이 된다.
가십 때문에 곤란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남의 개인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 말이 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지 답답하고 속이 상할 것이다. 물론 그들도 어느 때는 다른 사람의 개인사를 입에 올렸을 확률이 매우 높다. 사무실에서 나누는 대화의 90%가 가십에 해당한다는 암스테르담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남의 개인사에 대해 말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남 얘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에 대한 풍문을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왜 하는 지 물어보면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이유가 나올 확률은 아주 낮다.
가십의 기능
위키피디어는 가십을 '다른 사람의 개인 신상이나 사적인 일에 대한 잡담이나 소문'이라고 정의한다.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딱히 얻을 것이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남의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에 끌린다. 일부 학자들은 사람들이 가십에 이끌리는 것을 본능과 연관시킨다. 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이며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개인에 대한 소문을 만들거나 험담을 하는 성향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언어가 발달(진화)하게 되는데, 남에 대한 이야기인 가십도 그 과정의 하나라는 것이다. 로빈 던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나누는 대화 중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65%에 이른다고 한다.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 사무실에서도 여실히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듀크 대학교 신경과학과 마크 리어리(Mark Leary) 교수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이를 신뢰할 수 있을지, 집단의 규범을 깨는 이가 누구인지, 누가 누구의 친구이고 적인지, 사람들의 성격은 어떻고 관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정보를 듣고 전파하는 것은 '살아남는 방법'의 일종으로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크 리어리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개인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의 하나이며, 가십과 같은 소문은 그러한 행동의 부산물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서 학자들은 가십의 순기능을 말한다. 학자들이 말하는 가십의 첫 번째 순기능은 비공식적인 정보 교환의 촉진이다. 비공식적 정보 교환이 활발해지면 제도나 시스템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직원들로부터 무능하고 무례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상사가 있다고 하자. 그 상사에 대한 평판은 가십이라는 비공식 정보 교환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떠돌게 된다. 그리고 그 정보의 교환이 활발할수록 그 내용이 조직의 공식적인 평가 시스템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시 말해 가십이 시스템을 보조하거나 시스템 운영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십의 영향력을 주목한 로빈 던바 교수는 가십이 제도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말한다.
가십의 두 번째 순기능은 사회적 감시다. 개인이나 집단이 비윤리적 행동을 했을 경우,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한다. 그런 평가는 대상의 평판을 낮추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십이라는 일종의 '비공식적 감시 체계'에 들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가십을 통한 사회적 감시가 '무임승차자'를 통제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가십의 세 번째 순기능은 타인에 대한 통찰력 강화다. 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관찰과 탐구가 필요하다. 관찰과 탐구를 통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행동이 적절했는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강화된다. 유명한 명상가이자 작가인 샐리 캠프턴(Sally Kempton)은 이를 가리켜 가십이 '인간 드라마의 뉘앙스'를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표현한다.
부정적 가십의 매력
이렇게만 보면 가십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사람들이 나누는 잡담 모두가 특정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또, 특정한 인물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메간 로빈스(Megan Robbins)는 가십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메간 로빈스 교수는 일반인 467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일상에서 하는 모든 대화를 수집하여 메타분석을 했다. 그 결과 대화의 약 15% 정도만이 부정적인 가십으로 볼 수 있는 대화였다고 한다. 메간 로빈스 교수의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개인사를 듣고 말하지만 부정적인 내용은 예상 밖으로 적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이 갖는 가십에 대한 느낌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중립적이거나 선한 내용의 가십도 분명히 많다. 하지만 대상을 험담하거나 평판을 깎아내릴 수 있는 내용의 부정적인 가십들이 더 빨리 퍼지고 더 오래 살아남는다.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말의 생명력과 파급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입에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가십보다 부정적 내용의 가십이 더 빨리 퍼지고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부정적 가십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뜻이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 보다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가 된다. "어제 회식에서 이 대리가 고기를 거의 혼자서 다 구웠다" 보다 "김 대리가 잔뜩 취해서 최 부장한테 손가락 욕을 두 번이나 날렸다"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가십에 더 끌릴까?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일면에 관심을 보이고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행위는 아니다. 뒷담화 내지는 나쁜 소문의 근원지, 혹은 경유지 역할을 하는 것은 평판 측면에서도 좋지 않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비합리성을 기꺼이 감수하려 든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감정이 비합리적 행위의 동기로 작용한다. 부정적인 가십에 끌리는 것도 그것이 주는 '감정적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적 이익이란 바로 우월감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알게 되었을 때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게 된다. 그 우월감은 쾌감을 불러온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엘레나 마르티네스쿠(Elena Martinescu) 교수는 가십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가십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분석한다.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정보가 필요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가십이 자신에 대한 높은 가치 평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엘레나 마르티네스쿠 교수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소문은 대상을 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십의 생산자와 수용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로부터 얻는 상대적 우월감이 주는 기쁨이 사람들을 가십에 이끌리도록 하는 것이다.
가십의 시작과 확산
가십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과장되거나 왜곡된 사실, 거짓, 추측이나 해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김 과장이 협력사 클레임 건으로 인사위원회에서 감봉 조치를 받았다" 같은 가십은 그 내용이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구두 경고만 받았는데 감봉 조치를 받은 것으로 소문이 떠돈다면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다. "김 과장이 협력사 클레임 건으로 인사위원회에 들어갔는데, 아마 감봉 조치를 받은 듯하다" 같은 추측이나 "감봉 조치는 면했다지만 이번 건 때문에 인센티브가 물 건너갔으니 감봉 조치나 다름없다" 같은 해석이 가십의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사실과 거짓, 추측과 해석 따위들이 뒤죽박죽 된 가십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진위 여부와는 관계 없이 부정적인 가십은 대상을 불쾌하고 곤란하게 만든다.
부정적 가십을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엘레나 마르티네스쿠 교수의 분석처럼 상대적 우월감에서 오는 쾌감(기쁨)을 얻기 위함이다. 내용의 진위 여부나 과장과 추측의 정도와 관계없이 사람의 약점이나 단점, 오류를 지적하는 데서 오는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가십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상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한 악의적인 목적이다. 이 때도 가십의 진위 여부 따위는 크게 상관이 없다. 거짓이나 사실의 과장, 부정적 추측과 해석 따위는 대상을 곤혹스럽게 하고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남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건너 다니게 된다. 말을 옮기는 '경유지' 역할을 하는 사람은 큰 고민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를 옮긴다. 그들은 단순히 들은 얘기를 전달하는 것뿐이기에 그 말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자신은 그냥 전해 들었을 뿐이라는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많은 가십이 '내가 누구한테 들었는데'로 시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일단 자신의 결백함을 담보해두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저 들은 대로 말했을 뿐이라는 사람에게 가십으로 인한 곤란함과 불쾌함의 모든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경유지'가 새로운 맥락의 생산지가 된다는 것이다. 가십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형태를 갖는다. 이야기가 듣는 사람의 귀를 솔깃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극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서사 본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서사 본능은 자신이 한 이야기가 남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기를, 나의 이야기에 대한 다른 이의 관심을 욕망하도록 만든다. 급기야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양념이 뿌려진다. 과장, 왜곡, 그럴듯한 추측과 해석 따위가 그 양념의 재료다. 이야기가 사람의 입과 입을 건널 때마다 양념이 더해지기도 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양념이나 재료가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실'이 아닌 '인식'만 남게 된다.
가십의 문제
앞서 얘기했듯이 가십의 장점을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가십이라는 형태의 비공식적 정보 교환을 통해 시스템을 보조하고, 무임승차자를 감시하며, 연대감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기능들이 부정적인 가십에도 해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이는 '질(quality)'을 고려하지 않은 원시적인 공리주의에 가깝게 느껴진다. 가십을 퍼 나르는 행위로 얻는 집단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가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상처는 무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십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인에 대해 나쁜 소문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을 공리적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가십은 공식적인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조직이 직접 다루기가 쉽지 않다. 가십의 생산과 확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조직 구성원들이다. 그들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단순한 유희나 남을 괴롭힐 목적으로 가십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십을 옮기고 전달하는 사람은 많다. 남에게 들은 얘기를 했을 뿐이라는 방패 뒤에 숨으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너절한 방패 뒤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의 구차한 신변잡기를 소곤거리며 얕은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비루하지 않은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보다 악의적인 소문을 더 많이 얘기한다고 한다. 남에 대한 소문을 듣기 좋아하고 퍼뜨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존감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고양하는 행위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에게 좋지 않은 얘기를 해서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귀를 닫고 입을 막기 어려운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다. 숱한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고, 들은 얘기를 퍼뜨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게다가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원하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 말하지 않는 것이야 굳건한 다짐으로 해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고 혼자만 고고한 듯이 자리를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어느 심리학자가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으로부터 멀어지는 그럴듯한 방법을 제시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소문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그런데 나한테 그 얘기를 왜 하세요?" 이 질문은 두 가지 효과를 낸다. 하나는 소문을 내거나 말을 옮기려는 사람이 갖고 있는 동기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대화에 끼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들어봐야 얻을 것도 없고 말해봐야 기분만 찝찝한 가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
스피노자는 기쁜 감정을 가까이 하고 슬픈 감정을 멀리 하라고 했다. 하지만 기쁜 감정에도 수준이 있고 품질이 있다. 다른 사람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으로 만든 기쁨의 감정은 수준 미달에 저품질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세워진 자존감은 당연히 허접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존감을 북돋우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세운 자존감으로 너무 의기양양해 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런 비루한 모습이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듣고 말하는 즐거움을 주게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