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열 May 02. 2019

유신체제와 10.26

40대의 연혁 I

지금의 40대들이 태어난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하던 제3공화국(1962~1972년), 제4공화국(1972~1981년)에 걸쳐 있다. 40대 후반이라면 제3공화국 시절에 태어나 현재의 제6공화국까지 경험한 셈이다. 비록 40대 초중반은 제3공화국을 거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10월 26일 이후 출생한 사람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40대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시작해 박근혜 대통령까지 아홉 명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그리고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쳐 2018년 현재 열 명 째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박정희 대통령부터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다 보면 아홉 명의 대통령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게 셀 때는 대부분 최규하 대통령을 건너뛰었다고 보면 된다. 최규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후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일주일 만에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한 신군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 후로 군사반란 세력에 의해 대통령은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고, 최규하 대통령은 선출된 지 8개월 만에 사임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상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런 배경으로 인해 사람들에게도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이 매우 작아 곧잘 기억에서 소외되곤 한다.


40대의 유년은 유신체제라고 불리는, 정치적으로 어둡기 그지 없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헌법을 개정했다. 이렇게 개정된 헌법이 유신헌법(維新憲法)이며, 이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모두 쥐고 종신 대통령의 토대를 마련했다. 실질적인 독재를 시작한 것이다. 유신체제는 1979년 10월 26일, 그 체제를 만든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격에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후에 ‘10.26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진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유래가 없던 장기 독재 체제의 일단락이면서 '그'가 없는 1980년대를 시작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유시민 작가는 10.26 사건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시민 작가가 학교 안에서 "민주주의 만세!"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잡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당시는 ‘샤우트 3분에 징역 3년을 정찰제로 때리던’,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초헌법적인 시절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 냉혹하던 체제가 멈춰버린 것이다.


지금의 40대 전부가 그 때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나만 해도 그 때 일곱 살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관련한 일은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에 당시 다섯 살이던 아내는 TV에 나오던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이 기억난다고 한다. 사실 40대 대부분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사건뿐만 아니라 독재체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한참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40대 후반이라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할 때 겨우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2학년, 3학년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하다. 사회나 정치에 대해 관심을 둘 나이도 아니었고, 그런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는 주는 어른들도 없었다. 비록 어른이라고 해도 독재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도 못하던, 막걸리 한 잔 걸친 김에 대통령 욕 한마디 했다가는 경찰에게 잡혀가 고초를 치뤄야 했던 암울한 시절이었으니 당시 어른들을 욕할 일은 못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40대가 대한민국 역사에 획을 그은 때를 함께 살았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나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최규하가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다. 하지만 최규하 정부는 불과 8개월 정도 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1979년 12월 21일에 최규하가 대통령에 취임을 했지만 이미 12월 12일에 전두환 소장이 반란(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군사반란 세력은 대통령을 겁박해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고 완전하게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그리고 그 군사반란 세력의 우두머리인 전두환 소장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군인 출신 독재자가 사망하자 다른 군인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대, 삶의 한가운데에 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