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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02. 2019

밀레니엄 시대와 중년

40대의 연혁 III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이 노태우 정부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았다. 지금 40대의 절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청년들이 그 당시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경제적 번영의 축복은 계속될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그러한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 말기이던 1997년에 터진 외환위기(IMF 사태)는 지금의 40대에게 미래의 희망 대신 현실의 냉혹함을 던져주었다.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 나이였던 그들은 대중문화에 매료되어 있던 소위 X세대였다. X세대는 캐나다 작가인 더글러스 커프랜드(Douglas Coupland)가 1990년 초 당시의 청년 세대를 지칭한 말이었다. 더글러스 커프랜드는 ‘정의할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X’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나라의 X세대는 이념과 사상보다는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세대라는 뜻으로 쓰였다. 당시 X세대는 경제 호황기의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올랐다. 하지만 마케팅 전략이 만들어낸 그런 감투는 외환위기라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했고 그 보다 더 많은 협력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으며 주식시장은 폭락하고 금리는 미친듯이 뛰었다. 휘몰아친 경제 위기의 광풍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많은 대학생들이 휴학을 하거나 아예 학업을 포기했으며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남자들은 군에 입대하기 위해 줄을 섰다. 사회 초년생들은 줄어든 일자리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때로는 갓 들어간 직장을 잃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아직 사회적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위치에 있었던 당시 20대들은 나라 경제가 무너지고 가계가 쓰러지는 상황을 힘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40대가 태어나던 시기는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의 삶을 질을 향상시키던 때였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끝자락에 벌어진 외환위기 는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씨를 부리는 역할을 했다. 국가의 주도 아래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풍요를 더하는 것은 해묵은 사상이 되었다. 이제 국민들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얻었던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지금 40대의 트라우마이자 의식의 중추가 되고야 말았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 노력은 지우지 못한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지만 결국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위기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2000년 6월에는 한반도 분단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 회담을 가졌다. 이전 정권 때에 비하면 자유와 안정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넘치던 때였다. 그런 기류는 그 시간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도 흡수되었다. 지금의 40대에게는 특히 그랬다. 당시 그들 대부분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역동적인 20대였다. '청춘'이라는 훈장을 달고 꿈과 미래를 그리던 그들에게는 국가가 파산할 수 있던 지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넘어졌던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지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을 얻은 젊은이들은 다시 한번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처방했던 정책들이 결국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시절 뿌리를 내렸던 신자유주의의 기운은 지금의 40대들을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더 없이 무력하게 만들었다.


2002년, 지금의 40대들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포진되어 있었다. 그들은 가장 진보적인 연령대에 있었으며 실제로 가장 진보적이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20대, 30대는 2부 리그에 머물러 있던 노무현 후보에게 60%대의 지지를 몰아주었다. 그것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성 세대에 대한 세대교체 요구와 다름 없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기에 있거나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삶을 일궈야 하는 20대, 30대에게 기존 프레임은 낡은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낡은 프레임을 문화재처럼 떠받들고 권위에 대한 복종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구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경제의 암울함은 조금씩 깊어져 갔다. 집값은 폭등했고 소득의 불균형이 커졌다. 가진 사람은 더 갖게 되고 없는 사람은 제자리 걸음도 하기 힘든 양상이 심해졌다. 양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일자리 대신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평생 직장’은 아버지 시절의 얘기가 되었다. 열정 가득한 마음만은 2002년 월드컵 4강을 응원하던 광장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던 촛불집회에 있었지만 현실의 몸은 ‘사오정(45세가 정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준비가 강요되던 때였다.


이전 정권과 대립하던 정치세력이 집권을 한 2008년, 지금 40대들의 대부분이 30대였다.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세대이기에 그만큼 바쁠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 육아 등의 의무가 주어졌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밤낮 없이 분투를 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딱히 나아진 것은 없었다. 4대강 개발, 천안함 격침 사건, 구제역 같은 사회적 이슈들로 시끄러웠다. 세대 갈등이 뚜렷해졌고 권위주의적인 풍조로 다시 회귀하는 듯 했다. 경제 양극화는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으며 (특히 없는 사람에게) 안락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시 30대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속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패배감에 휩싸였다.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던 2000년을 20년 가까이 지난 2019년. 1970년부터 1979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40대가 되었다. 40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살아온 만큼이나 지난하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능력이 된다는 의식이 공공연할 정도로 빈부의 양극화는 가속되고 있다. 아예 부모의 재력과 능력을 수저의 구성 물질로 구분하는 게 보편적인 표현 방법이 된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삶의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비율이 OECD 국가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나라다. 한번 올라갔던 청년 실업률은 내려오지를 않고 있다. 비록 40대들은 '청년 실업'의 해당자가 아니지만 이태백, 88만원세대, 삼포세대 따위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사이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앞에 놓인 삶에 대한 불안마저 어쩌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어쩌면 40대는 본격적인 늙음을 앞에 두고 그 어떤 세대들 보다 더 심한 불안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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