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 Oct 11. 2021

(6) 게으름의 대가


 오랜만에 글을 적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바빴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단지 게을렀던 것이 전부입니다. 돌이켜보면 올해만큼 게을렀던 적이 없었는데, 유독 올해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게을러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제가 적어보려는 글은 게으름에 대한 것입니다.


 빈둥빈둥, 먹고 마시고 자고


 제가 본격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은 올해 7월 무렵부터였습니다. 3월엔 은행에 입행한 뒤 한 달간 연수를 받느라 게을러질 수가 없었고, 4월부터 6월까지는 새롭게 은행 업무에 적응하느라, 또 따야 할 자격증은 뭐가 그리 많은지 게으르고 싶어도 그러기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하루 종일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던 은행업무도 3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긴장도 조금은 풀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즐길거리들이 하나둘씩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적었던 글 중에, '노는 것에도 게을러진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기대와는 달리 저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있어서조차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의 글을 적었다는 것은, 적어도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 정도는 미루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다짐을 했었기 때문일 텐데, 참 부끄럽습니다.


 지난 3개월간의 제 삶을 되돌아보면, '먹고, 자고, 마시고'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퇴근할 때 편의점에 들러 4캔에 만원하는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해진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지나고 나면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는 일들을 하다가 잠드는 나날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엔 이런 저의 삶에 대해 합리화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 그동안 취업 준비하느라 애를 썼고, 또 오랜만에 다시 하는 직장생활이 힘들 수 있으니, 충분히 적응할 때까진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당시에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


 게으름의 대가


 이유야 어떻든, 7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약 100일간 차고 넘칠 만큼 게을리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는 다음 주에 응시해야 할 자격증 시험을 스스로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최소 한두달은 공부를 해야 쳐볼 수 있는 수준의 시험인데, 전혀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응시할 수 있지만, 오늘까지 시험 접수를 취소하면 절반의 응시료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참지 못했습니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몸무게를 측정하니,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10킬로나 늘었습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체중이 불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화장실에서 거울을 볼 때 얼굴이 통통해졌다는 확신이 들었었습니다. 살이 쪄서일까요, 요즘은 뭔가를 새로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게으르게 사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올해 들어 유독 일기 쓰는 것이 밀리는 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기는 3일만 밀려도 제대로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쓰는 일기는 아무래도 그 당시의 감정과 경험을 제대로 담기엔 정보량이 부족합니다. 결국 아쉬움이 남는 일기가 돼버립니다.


다가오는 초조함


 이처럼 게을러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특히 저와 같이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고 목표를 설정해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게으름의 대가는 더욱 뼈아프게 찾아옵니다.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목표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예정일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이번에 포기한 자격증 시험을 다음 회차에 응시하려면 또다시 3개월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예전의 건강하고 나름 만족했었던 몸상태로 돌아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진 현재로선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올해 안에 100편의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는데, 지금 남은 시간으로는 하루에 1편을 써도 시간이 부족해졌습니다. 


 결국 초조함이 가득해진 저는 휴가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가를 써서라도 밀린 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초조해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게으름에 대한 반성의 글을 적으면서도 저는 끝없이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게을렀던 만큼, 충분히 쉴 수 있었고 그 시간이 썩 불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점이 두렵습니다. '게을렀기에 즐거웠다는 것' 이 사실을 인정해버린다면 앞으로 제가 열심히 살아갈 이유보단,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은 이유들만 찾아내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이래서 열심히 산다는 것이 참 어려운가 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