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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백수의 매력:
산책이 포함된 하루를 살다

산책을 통해 주변의 공간과 함께 호흡한다

by 이도

산책을 통해 새로운 일상을 만난다.

하루에 한 번 산책하며 걷고, 생각하며 , 웃음 짓는다.




일단 산책합니다


저는 백수인 것 치고는(?) 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 저는 나름대로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 행동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큰 틀만 있는 정도지 유명인사의 스케줄처럼 분단위로 딱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요, 다만 제 삶의 규칙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한 저의 생활규칙 중 하나가 바로 산책하는 것입니다.


716a9afc9a591174133b97d6b08a3aa4.jpg 걷거나 자전거 타기 좋은 모든 곳은 산책장소가 됩니다


저는 최소 하루에 한 번, 경우에 따라서 여러 번 산책을 합니다. 이유는 매일 다릅니다. 그저 하늘이 맑고 푸르다는 이유만 있어도 제가 산책할 명분으론 충분하거든요. 비가 오면 더 좋습니다. 특히 비가 그치고 난 뒤 초저녁의 약간 보랏빛 하늘과, 공기 중으로 전달되는 물 냄새가 느껴지는 날은 거의 100% 확률로 산책을 나갑니다. 이런 날은 특히 윤하의 [빗소리]나 태연의 [rain]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70c627cf77e67624bccabd954efed99c.jpg 바로 이런 하늘이 제가 산책하기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사실 좀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제가 백수의 매력으로 '산책'을 선정하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그냥'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아서 누가 시켜서 산책을 한 적이 없다 보니, 사실 내가 왜 산책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예전에 어느 산수유 광고에서 나온 말처럼 '좋은 건 아는데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죠.



내가 산책하는 이유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어렴풋이나마 제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는 있었습니다. 그건 산책을 통해 저의 반복되는 삶에 매일 새로운 경험과 생각이 들어온다는 것이 제가 산책을 즐겨하는 주된 이유였습니다. 저의 경우엔 매일 같은 경로로 산책을 하진 않습니다. 그날의 기분과 날씨, 상황에 따라서 산책하는 코스는 자주 바꿉니다. 그러면 바뀐 코스에 따라 산책하면서 제 눈과 귀에는 어제까진 몰랐던 새로운 정보들이 감각을 통해 입력됩니다.


cb885c11d88d84cc465280a85d75d79d.jpg 가을의 산책은 제가 기대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가령 산책을 하며 나뭇잎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 저는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올초부터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 되짚어 봅니다. 예상보다 잘 마무리된 일도 있었고 아쉬움 가득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한 번에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제가 졸업했던 학교가 보이네요.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교복을 입었던 것이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또 힘들게 취업준비를 하면서, 우연히 산책하다가 학교 정문에서 보았던 동창의 고시 합격 축하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괴로워졌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마침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나왔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하필이면 김동률의 [출발]이라니, 이건 산책을 도저히 그만 둘 상황이 아닙니다. 더 오래, 더 멀리 산책하기로 저는 지금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발을 굴려 페달을 힘차게 돌려봅니다.


얼굴을 타고 귀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약간 경사가 있는 내리막이라 그런지 자전거에 속도가 붙은 것이 느껴집니다. 저 멀리 2명의 학생이 제가 졸업한 학교의 교복을 입고 대화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멀리서부터 '따르릉~'하고 경적을 울리며 자전거가 가고 있다는 신호를 전달합니다. 자전거의 경적이 전해졌는지 뒤를 쳐다도 안 보고 양옆으로 갈라지는 모습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오늘의 코스는 바닷가 쪽입니다. 이제 성수기도 지났으니 바닷가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하... 제가 순간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일 초저녁 시간대에 바닷가에는 원래부터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까먹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은 퇴근시간이 되긴 좀 이른 시간이었네요. 저는 조금 더 바닷가 근처로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습니다.


fb81b545f7484808a6796f455b555bca.jpg 건물 속 불빛 하나엔 하나 이상의 인생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제 눈에 비친 풍경은 몇 년째 보고 있지만 참 놀랍습니다. 어릴 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저렇게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섰으니까 말이죠. 약간의 시간 동안 눈 앞의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리에서 또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도 한 때는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는 것이 기억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많고 많은 건물들 중에서 내 것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유도 모른 채 저런 곳에서 살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기 때문일까요. 저기 환하게 비치는 창문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분들 역시, 저와 마찬가지고 각자의 삶에 펼쳐진 다양한 즐거움 와 어려움,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매일 행복하진 않을 것이고, 매일 괴롭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저는 여기서 더 생각을 이어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도 조금 고픈 것 같고, 하늘도 꽤 어두워졌음을 느낍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죠. 저는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페달을 돌립니다. 가는 길에 제가 좋아하는 빵집에서 슈크림빵이 아직 남아있다면, 그걸 5개 정도만 사서 집에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산책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상에 생각을 더하다


저의 산책을 글로 읽은 분들의 생각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산책하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인데요, 아마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산책을 매일 한 번 이상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정해두진 않았습니다. 보통 오후에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늦은 밤이나 새벽, 아침에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산책하고 싶은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것도 백수이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될 수 있겠군요. 하지만 보다 넓게 생각해본다면, 매일의 일상 속에 '산책하기'라는 선택지를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백수로 살아가는 것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산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회사원으로 살면서 산책을 종종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당시엔 산책이 그리 즐겁기만 하진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산책을 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사실은 '걱정'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일 있을 회의자료 준비, 보고서 작성, 마감기한이 남지 않은 업무, 동료와의 서먹해진 관계 등등, 회사원으로 제가 했던 산책은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서 정리하기 위한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백수가 된 지금에 와서 하는 산책은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머리의 복잡한 생각을 빼내는 것이 아닌, 산책이라는 경험을 통해 신선한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인데요, 현재는 산책하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산책을 하면 할수록, 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생각이나 영감을 얻게 되어 기존의 생각에 새로움이 더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매일 산책하는 것을 즐거워했던 본질적인 이유였습니다.


또한 산책을 통해 매일 몸을 움직이다 보니, 신체의 활발한 활동이 평소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느끼게 도와준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단순히 걷는 산책을 넘어서,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제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문득 창문을 바라보니 제가 글을 쓰는 오늘도 하늘은 맑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시원함이 느껴지는데요, 저는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 평소처럼 산책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오늘이나 내일 하루정도 시간을 내어, 가벼운 산책을 즐겨보면 어떠실까요? 저는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00502660_20190201.jpg 산책,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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