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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백수의 매력: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꿈꾸던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by 이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꿈은 이루어질까?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앙드레 말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점이 매력적인 그의 책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드립니다.(저는 '인간의 조건'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앙드레 말로가 남겼다고 알려진 이 말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참 멋진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살면서 한 번도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지금 제 삶은 피겨 스케이팅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꽤 오랜 기간 제가 하고 싶다고 꿈으로 간직했던 일 중에는, 이렇게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꿈이 제게 있었기에, 주말인 오늘도 저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꽤 오래전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크릿]이라는 책의 주된 내용도 이와 유사합니다. '간절하고 꾸준하게 바라고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만, 이걸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꿈과 목표가 달성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령 수학자의 꿈을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은 없죠. 즉,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따라 움직이고 목표를 설정하기 마련이기에, 시크릿 저자의 주장엔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자는 책을 통해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으니 그 주장대로 이루어졌지만요.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생각으로는 다양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실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현실에서 주어진 일이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또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냅니다. 가령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생의 특정 시기에서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내가 요즘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문학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책도 꾸준히 읽고 있다. 거 봐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유명 작가도 내가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응원하지 않는가? 사람이 불안하게 살 수는 없지 않으냐. 나중에 때가 되면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 것이다.


제가 인용 표시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위에 적은 문장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가 직접 들었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백수로 사는 제가 걱정된다며, 다른 사람들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다 참고 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말씀 중 언급하신 하루키의 문장은 아마 '먼 북소리'를 읽으신 듯합니다. 좋은 내용이죠. 그러면서 제가 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길 원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분의 말씀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래도 저는 오랜 기간 수련을 통해 길러낸 저만의 인간관계 기술이 있습니다. 그건 똘똘한 눈빛으로 상대로부터 대단한 지식을 전수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1단계, 내가 지금 당신의 말에 격렬히 동의하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으로서 중간마다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약간의 고개 끄덕거림이 2단계, 마지막으로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주기 위한 물개 박수가 3단계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해줘도 저는 상대방에게 만족과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제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도 필요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 번째로 꿈은 나중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제가 미래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제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락된 시간이 끝날 것 같았습니다.


번역에 오류가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어느 분의 묘비엔 그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하죠?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말입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땐 저도 만약 내일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 묘비의 말보다 적절한 것을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연히 싫었습니다. 기왕 묘비명을 정해야 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적고 싶은 것이 저의 바람이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것, 생각나는 것은 다 해봤습니다.
즐거웠고 후회는 없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바랍니다.




성장의 숙성기간


숙성기간은 김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뭔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꽤 오랜 기간 숙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상상으로만 꿈꾸던 것을 현실에서 멋지게 해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사실은 대단한 비밀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습하기 위해선 시간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인내와 에너지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많은 에너지 소모가 필요한 데다 시간마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 없는 시간을 끌어모아 또 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고문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수의 삶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는 넘쳐나니까요. 그래서 저는 백수로 지내는 기간을 두고 '인생의 유학길에 오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유학의 목표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있다면, 백수기간도 그 점에선 동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백수로 지내는 기간을 절대 대충 살아도 되는 시간으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장과 발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백수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성과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수일 수록, 오히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하게 계획한 대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꾸준해야 하고요. 이렇게 성장의 숙성기간을 잘 보내고 난 뒤엔, 분명 백수로 살았던 이 시절을 행복한 추억으로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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