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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백수의 매력:
건강함을 되찾다

몸과 마음에 안식과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것

by 이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다

건강은 한순간에 나를 떠나갔다





저는 남들보다 고통을 잘 견딘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웬만큼 아파도 그걸 티 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어린 시절 소년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고통=성장을 위한 수단이라는 이상한 신념이 머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일들은 기합과 정신력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을 무참히 박살 낸 것이 대상포진이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저의 두 번째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걸렸던 대상포진의 출발은 왼쪽 손가락의 붉은 반점이었습니다. 그걸 처음 봤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손가락에도 여드름이 나는가? 하며 며칠 지나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붉은 반점을 발견했을 시기는 부서가 가장 바쁠 때였습니다. 저는 회계부서에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회계부서는 결산 작업으로 인해 연말이 가장 바쁩니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선 야근과 주말출근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회사에서도 회계부서가 연말에 바쁘다는 것을 아니 업무가 없는 연초에는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곤 합니다. 그래서 연말이 끝나기를 바라며 매일 버텼습니다.


문제는 이 붉은 반점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손바닥 전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혓바늘 같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팔꿈치까지 반점이 올라왔습니다. 통증도 갈수록 심해져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공포가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지난 글을 읽어보신 분은 기억하실 수 있는데, 예전에도 저는 과다한 업무로 귀에서 이명이 사라지지 않는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공포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정체모를 붉은 반점은 제게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주기엔 충분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을 다녀왔고, 면역력 저하로 인한 대상포진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됩니다.


unnamed (1).jpg 얼마나 아픈지를 적지는 않으려 합니다. 두 번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습니다.




건강에 대한 착각


저는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나서, 사실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최근 업무가 많아져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자부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나이도 20대 중반이라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면역력 저하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_methode_times_prod_web_bin_ca2ba6bc-59c7-11e8-9ed6-2a2b8ba208a7.jpg 안 먹어본 비타민과 영양제가 없을 만큼, 챙겨 먹었습니다.


특히 저는 월급을 받으면서, 제 몸에 도움이 된다는 비타민을 구입하는데 지출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종합비타민보단 함량이 높은 개별 비타민을 먹었고, 합성이 아닌 해외에서 제조된 천연 비타민을 복용했습니다. 이 외에도 집에서 보내 주거나 회사에서 선물로 들어오는 홍삼진액도 생수처럼 마셨습니다.


binge-drank.jpg 술은 양보단 품질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심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흡연을 하진 않았지만 술을 좋아한 편이라, 음주량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안 마시는 것은 제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저는 타협점을 만들어냅니다. 그건 취하지도 않는 소주 맥주를 많이 마시지 말고, 아주 독한 술을 한두 잔만 마시면 그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근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제 생각엔 마셔보고 싶었던 양주를 구매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스스로 고안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식자리에서 과식하며 폭탄주 말아먹는 것보단, 자기 전에 브랜디 한두 잔 깔끔하게 마시고 자면 그게 낫다는 생각은 왠지 그럴듯하게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이유든, 저는 대상포진을 경험하며 제가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대상포진은 너무 큰 고통이었고 무엇보다 한창 건강해야 할 시기인 20대 중반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통증이 찾아왔다는 것은, 제가 건강관리에 실패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백수로 지내면서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보통 이런 건강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직장을 퇴사하고 나면 곧장 건강해진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진 않았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 퇴사했지만, 그럼에도 직장 생활하며 얻어진 습관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퇴사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평소처럼 살았습니다.


다만 확실히 퇴사를 하고나서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편해졌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6시 30분에 일어나던 것을 7시로 30분 늦췄을 뿐인데도, 개운함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때 고품질의 수면상태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수면만큼은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 생각했는데, 역시 수면시간을 늘리는 것이 수면품질을 높이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21862875I05Ci4G.jpg 최근엔 구멍 난 커튼을 달았습니다. 아침에도 별을 보는 기분




207990868-H.jpg 제철 채소와 된장찌개만 있어도 든든합니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구해 직접 요리해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에 즐거움을 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선 한 끼를 만들 때마다 저의 요리실력이 늘어간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고, 나름대로 건강을 생각하며 식사를 챙겨 먹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는 요리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취미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산책코스에 재래시장이 포함되었고, 배달음식은 주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요리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남길 만큼 많이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요리해놓은 음식이 버려지는 것 자체가 마음 아픈 일이니까요. 그리고 많이 만들어두면 아무래도 며칠을 계속 같은 것만 먹어야 하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리를 만들 때는 하루에서 이틀 정도 먹을 정도로만 만들게 되었고 구체적인 연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먹는 양도 줄었습니다.


eating-habits-small-portions-1024x666.jpg 적게 먹어서 생기는 병은 영양실조밖에 없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적게 먹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회식할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저는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식사를 하는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이노가 시라 씨도 음식 하나하나에 굉장히 집중해서 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저도 어느샌가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만든 음식이다 보니 맛 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요.




저절로 좋아지는 건강


이렇게 충분히 자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매일 산책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보니, 건강함은 아주 자연스럽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건강함이라는 것은 아프거나 불편함이 없으면 그게 건강하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현재 아픈 곳 없고, 몸에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으니 건강합니다.


그리고 백수로 지내는 동안 사람을 만나면 인상이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를 참 여러 번 들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그럼 이전의 내 인상이 어떠했길래...'라는 걱정도 들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는 의미인만큼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다 보니 이젠 잘 웃기까지 하게 된 것 같네요.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조금 신경을 쓰면 못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점심식사도 건강을 고려한 구성으로 식당에서 나오거나, 아니면 정기 도시락 배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비단 백수만의 매력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시간의 여유가 충분한 지금 시점에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며,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며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으로 알게 된 것을 실천을 통해 몸에 습관을 형성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직장에 다니며 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자신만의 건강한 삶에 대한 생각 정리를 해보길 추천드립니다.


IMG_8767.jpg 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것도 좋은 방법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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