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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백수의 매력: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

by 이도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것들이 있다

이제는 하지 않을 이유도 핑계도 없다




그래, 도쿄에 가자


벌써 5년은 된 일이네요. 저는 친구들과 졸업을 기념해서 일본에 여행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5명이서 가는 여행은 시작부터 갈등이 꽤 심했습니다. 크게 도쿄를 가보고 싶다는 쪽과 후쿠오카에 가고 싶다는 쪽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각각의 논리는 다 일리가 있었습니다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후쿠오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최종 결론은 후쿠오카에서 출발해 규슈 지역을 돌아보는 1주일 여행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은 발생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3일 차에 착오로 계획했던 일정 하나를 취소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들 아쉬움이 컸는데 특히 도쿄 여행을 주장했던 2명의 반발이 매우 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아마 그 친구들의 생각은 자신들이 도쿄 여행을 '양보'하면서까지 따라와 '줬는데' 이렇게 일정이 꼬이니 심사도 꼬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물론 이 친구들이 양보하거나 따라와 줬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문제죠.


하지만 저를 포함해 일본 여행이 처음인 친구들도 있었고, 여행지에서의 피로감이 겹치다 보니 갈등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가서도 크고 작은 갈등과 시비가 연이어 생기는 탓에 출발 당시의 즐거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흉흉한 분위기만 감돌았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분위기 자체가 너무 싫었습니다. 모처럼 여행을 왔는데 이대로 가다간 여행을 망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질렀습니다.


야, 내일 도쿄 가자




당일치기 도쿄 여행


친구들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했지만, 저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있다면 도쿄에 가는 것은 해외여행이지만, 지금 있는 곳은 후쿠오카입니다. 즉, 도쿄라고 해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서 부산 가는 것과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선 친구들이 싸움을 그만두고 제 이야기에 주목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저희가 묵은 숙소가 하카타역 주변인 데다, 여기서 후쿠오카 공항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가는 비행기는 충분했습니다. 비행시간도 약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습니다.


a0001495_main.jpg 도쿄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제 친구들에게 달렸습니다.


사실 저의 속마음은 도쿄를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비행기 값을 일정 부분 보태주고, 그 친구들은 도쿄에 가고 나머지 친구들과 규슈 여행을 하면 불화 없이 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들 친하게 지낸 세월이 얼만데 이런 일로 싸우는 것은 전혀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상황이 저의 기대와 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친구들은 저의 신박한 제안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미 규슈에 와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도쿄에 간다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난데없이 지진이 나버려서 계획했던 곳에 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꿩 대신 닭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갑자기 이야기의 화제는 서로의 탓을 하는 것에서 내일 도쿄 당일치기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꺼낸 지 30분이 채 안되었는데 이미 내일 도쿄에 가는 것은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역시나 대책 없는 인간들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또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말씀드리면, 도쿄는 모레 아침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당일 늦은 밤 비행기를 하고 다시 후쿠오카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출발하지 못한 이유는 역시 당일치기 계획을 세우다가 너무 늦게 잠들어 다음 날 늦잠을 잔 데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어찌 되었던 당일치기 도쿄 여행은 즐겁게 다녀왔고 후쿠오카에 돌아와서도 나머지 일정을 잘 소화한 뒤 한국에 돌아왔었습니다. 요즘도 이때 같이 여행 간 친구들을 만나면 당시의 이야기를 꼭 하게 되는 추억이 되었네요.




일단 해본다는 것


이때의 무모했던 여행 경험은, 이후 제가 살면서 뭔가 고민이 들 때마다 하나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뭔가 고민이 들더라도, 일단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겨본 다음, 결과를 보고 나서 생각을 하는 것이죠. 즉 예전에는 너무나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면, 이제는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부터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일단 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 뒤부터, 뭔가를 함에 있어 후회를 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막상 해보고 나면 '아 괜히 했어'라는 생각보다는 '역시 해보니 알겠다'는 생각을 훨씬 많이 했거든요. 물론 결과가 생각한 만큼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많이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나중에 '그때 해볼걸 그랬나?' 하며 후회하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낫다는 확신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많은 것들을 해보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막상 실행에 옮겼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생각만 했을 때는 되게 겁도 나고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정작 직접 부딪혔을 때는 큰 문제없이 잘 해낼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제가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만으로 일을 심각하게 상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엄청 깊은 바다인 줄 알고 만만의 준비를 갖춘 채 뛰어들었지만, 알고 보니 다리도 잠기지 않는 얕은 바다인 거죠.


971698.jpg 걱정만 해봐야 의미 없습니다. 직접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냥도 충분한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수기간을 보내는 것에 있어 불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었고 지금도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인간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걱정은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저도 딱 그만큼만 걱정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백수로 살아가는 시간 동안 그 시간이 지닌 장점은 알려고 하지 않는 채,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분들과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굉장히 심성이 착한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본인의 미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벌써부터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마땅히 해야 할 명확한 이유와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 생각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냅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요, 그건 '그냥'도 자신이 뭔가를 하기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의 관심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령 저는 오토바이를 탄다거나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냥'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선택지들은 제가 고민할 이유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제가 '그냥' 떠올리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게 되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입구에 있는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할 수 있게 된다던가, 제가 적은 글과 소설을 읽고 누군가가 좋은 글 읽어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 이런 것들은 제가 하루에도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이유는 특별히 없습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그냥 생각나는 것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이 바로 제가 좋아서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그냥'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시기가 인생에서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 하더라도 이 기회를 얻기 위해서 꽤 많은 기회와 대가를 지불해야 했거든요. 그만큼 시간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진 재산 중 가장 값진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체력과 에너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체력,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젊은 시절의 백수기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뭐든지 해보세요, 이유는 '그냥'이면 충분하니까요.


do-it-wallpaper-9.jpg 이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랍니다. 중요한 말이에요




2장을 마치며 : 즐거운 오늘을 위하여


이로써 2장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1장 마무리하면서 2장은 굉장히 즐겁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역시 기대했던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제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과, 평소에 하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보여드리면 그걸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제가 2장의 제목을 '백수의 매력'이라고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누군가 한 명정도는 백수로 지내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실제로 제가 백수로 살아보니 약간만 잘 준비하면 백수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백수로 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 또 해야 하는 것들을 여러 가지 소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의 글에 본인만의 멋진 하루를 보내기 위한 방법을 추가한다면 더 좋은 방법이 생기겠죠?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2장도 끝났으니, 다음은 3장이겠네요. 아, 참고로 이거 10장까지 적을 예정입니다. 제가 프롤로그에 [맑고 하얀 손을 가진 당신을 위한 '100'가지 이야기]라고 제목을 달았는데요, 1장에 10편의 글을 모아 10장으로 완성시킬 것이라서요. 이제 20편 적었으니 80편이 남았네요. 갈 길이 아직은 머네요.


3장은 '근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백수에게 근로라니? 싶으실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백수의 삶에는 근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지금까지 백수로도 즐겁게 사는 것이 모아둔 퇴직금이 많아서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진 않고요. 저는 백수지만 근로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통해 소득도 발생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왜 제가 스스로를 백수라고 부르는지, 또 백수생활에 근로활동이 왜 필요한지가 3장에서 이야기할 내용입니다. 그럼 3장에서 뵙겠습니다!



204ebf68e74302eeae1bf67745de2742267b77d8.jpg 지금까지 2장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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