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과 소외된 듯한 기분을, '주어진 일'을 통해 극복한다
백수의 위기는 외로움에서 시작된다
[백수의 매력] 편만 읽은 분들은 갑자기 백수생활이 꽤 좋은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좋습니다. 좋은 일들만 적었으니까요. 다들 직장생활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이것도 즐겁고 좋은 일들만 모아서 글로 읽어보면 세상에 이런 좋은 것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것처럼, 백수로 살아가는 것 역시 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외로움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퇴사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혼자 지내도 굉장히 즐겁습니다.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늦잠자기,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며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봅니다. 저는 백수로 지내면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한적한 시간대에 마트에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스트코나 이케아를 주말에 가본 분들은 아시죠? 주차하고 장을 본 뒤 빠져나오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이런 마트도 화요일 오전 정도에 가면 아주 쾌적하게 장을 볼 수 있으니 이건 백수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하루 종일 몰아서 보는 것도 백수라면 가능합니다. 또 경치가 좋은 카페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선물 받은 만년필로 편지도 적어봅니다. 아무 때나 산책하고 싶을 때는 산책을 합니다. 배우고 싶은 악기도 백수가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죠. 저도 이제야 제가 좋아하는 가수 헤이가 불렀던 [혼자 놀기]처럼 살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RDtmQC5cqI
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즐겁게 지내는 것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 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함을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며 직장과 집을 이리저리 오가는 그 삶도 왠지 괜찮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회식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적당히 취한 채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한 번씩 나오는 누군가의 진심을 듣는 순간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럴 기회가 잘 생기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회사생활로 바쁘니까요.
결국 사람마다 계기는 다르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외롭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런 정서적 신호가 오는 이유는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었으니까요. 회사에서도 직장동료들과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소통이며,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누군가 필요로 하고, 내 능력과 경험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수로 일없이 지내는 기간 동안엔 직장생활에선 당연시했던 '소통'의 기회가 사라져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외로움이 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필요해지는 순간
이런 외로움과 타인으로부터 동떨어져 살아간다는 기분이 느껴졌다는 것은 외면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결국 잘 생각해보면 타인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와,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외로움이 조금 더 진전되면, 이제는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삶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불안과 걱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커지는 것인데요, 참 이상합니다. 퇴사했을 때는 그렇게 완벽해 보였던 계획이,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불확실성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이제는 뭔가 대책이 필요한 순간이 온 것입니다. 저는 그 방법으로 '일하는 것'을 추천드리는 것이죠.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건 바로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잘 안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일단 어떤 일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소득이 생긴다면 그 일은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하셔도 문제는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요.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곧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쓸모 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약간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희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고,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이를 통해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내 능력이 인정받았다는 데서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도 외로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일을 통해 외로움을 많이 극복하고 있습니다. 가령 저는 공공기관 2곳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매달 1회씩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보수 명예직입니다. 자격조건도 제가 사는 동네의 주민이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래도 가서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나면 즐겁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 이런 자문단 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것들도 많이 알게 되고, 또 새로운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니 좋았습니다.
저는 현재 근로활동도 비대면으로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업무를 한 뒤 제출하면 되는 일인데도 담당자분과 몇 번은 전화나 메일로 소통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이런 과정이 정말 지겹고 짜증만 났는데 백수인 요즘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것은 물어도 보고, 또 담당자님께 건의도 드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엔 업무 성과가 괜찮아서 다른 일을 소개받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일이죠!
이렇게 저는 백수로 지내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일을 통해 만들었고, 그 덕분에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으면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여러 공공기관에선 다양한 주민참여 행사를 추진하고 있을 것이며, 최근엔 재택근무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여하간 이런 일들을 통해 소득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을 함으로써 내가 여전히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실 수 있게 되는 데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