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앞가림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비참해진다.
백수의 자존감
글을 쓰다 보면 몇 번씩 손가락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오곤 합니다. 피곤해지는 것도 원인이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분들이 읽을 수도 있는 공간에 저의 속마음이 글자를 통해 공개된다는 생각과, 형체가 없는 마음속에 담겨있던 생각을 글로 읽어보게 되면 왠지 거울 속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3장의 글을 쓸 때 이런 느낌을 자주 받는 것은, 제가 백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두 가지인데, 3장의 특성상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많이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이의 삶에 도움을 주고자 쓰는 이 글에 저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얼마나 공감받을 수 있을지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생각에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백수로 살아가는 데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일을 통해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이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을 통해 설명했었죠. 이번 글에서 제가 주목한 지점은 자신의 심리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존감입니다.
저는 자존감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자신이 믿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김에 있어 불안감이 없고 당당해질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백수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자존감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존감은 곧 백수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자존감을 잃지 않으며 백수로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해답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소득이자 근로활동이기에 저는 백수라 할지라도 근로를 통해 소득창출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죠.
기대지 않는 삶
다시 말해, 자신이 뜻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백수로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는 다른 이들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걸 받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말한 다른 사람에는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과, 장차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연인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냉정하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원래 가족과 연인관계라는 것은 서로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선 도움을 주고받으며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기왕 냉정해졌으니 조금 더 엄격하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실 백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타인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다정다감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며 소통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비단 백수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소통능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백수인 저희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어 지는 순간은 굉장히 자주 찾아옵니다. 외롭기도 하고 원하던 결과가 생각만큼 빨리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저희가 알아서 열등감에 자격지심을 느껴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그런 일도 종종 생깁니다. 이 과정이 몇 번만 반복되면 초기의 즐겁고 여유로웠던 그 생활이 괴롭고 짜증 만나는 순간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입버릇처럼 혼자서도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겐 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기 위한 자기 주문과도 같은 말입니다.
"알아서 잘하자"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다"
자급자족의 당당함
현재 저는 백수이며, 아직 진정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다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을 하는 이유가 바로 자급자족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당당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선택한 자유로운 삶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누군가에게 내 삶의 자유를 유지시켜줄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받고 나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도 못지는 제 앞가림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상하게 말이 입에서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했을 때 위로와 공감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불편함을 느끼고 살아가지만, 미래에 더 큰 성공을 위해서 지금은 잠시 타인들에게 투자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성공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 회사를 조기에 발굴해 투자를 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더 적합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생각 중 자신에게 맞는 생각을 고르는 데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저는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거나 스스로 자급자족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참하다'라고 생각이 들면, 역시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쪽에 해당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만요.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렸듯 시간이 많더라도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오랜 기간 집중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면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 목표만을 향해 시간과 에너지 전부를 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인 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을 선택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