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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백수의 경제 이야기:
도대체 유동성은 무엇인가

어떠한 경제현상도 설명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

by 이도

대부분의 경제현상은

유동성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경제신문의 단골손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자신들의 직감에만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듯, 경제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발생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탐정들은 비록 개별적인 사건의 형태는 다양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피해자와 평소 원한관계나 금전문제가 있었다던지, 혹은 범죄를 통해 피해자가 사라지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용의 선상에 두고 추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탐정과 비슷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경제현상이 발발하더라도, 그러한 경제현상이 벌어진 원인이 대부분 [유동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즉, 어떤 경제현상이라 하더라도, 유동성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를 통해 지금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경제성장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거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유동성이란 단어를 꽤 자주 들어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경제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유동성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주식이 떨어지면 유동성이 부족해서, 물가가 오르면 유동성이 회복되어서, 은행에서 예금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서 등등 유동성을 빼놓고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정도로 유동성은 온갖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경제신문의 단골손님인 유동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대체 유동성이 뭐길레 경제신문에선 이렇게나 많이 언급되는지, 또 유동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저와 함께 고민해 보면서, 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유동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제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실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what-does-liquidity-mean-in-business-750x422.jpg 오늘은 유동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가진 돈


먼저 유동성(Liquidity)에 대해 개념적인 이해를 해봅시다. 우리는 우선 유동성을 이렇게 정의할 것입니다.


유동성 : 내가 가진(언제든 쓸 수 있는) 돈


제가 만약 누군가를 만나 "지금 돈 얼마 정도 있어요?" 라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마 질문을 받는 사람에 따라 대답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현재 지갑에 들어있는 지폐나 동전의 액수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통장에 있는 예금잔액을 포함해서 대답하거나, 혹은 [돈=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정기예금과 각종 부동산 같은 자산들의 시가를 계산해 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여러 가지 자산들의 금액을 포함하여 대답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것들이 '돈'으로 환산할 수만 있는 것들이라면요.


하지만 제가 돈이 얼마 있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분이 소중하게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포함해서 말하면 그 대답은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식이나 적금에 들어간 돈을 포함해서 대답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유동성의 개념을 정확하게 다시 정의해 보겠습니다.


유동성 : (자신이 가진) 자산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정도(수준)


즉, 유동성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환전성'에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자산을 현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일수록 유동성이 높은 자산이며, 반대의 경우엔 유동성이 낮자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유동성이 가장 높은 자산은 우리가 보유한 돈, 화폐 그 자체일 것입니다. 따라서 [유동성=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유동성에 대한 이 간단한 정의만 가지고도 경제신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시중(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기사 제목의 의미는 어떠한 이유로 인해 시장에서 돌고 돌아야 할 돈이 적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동성 부족의 원인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배운 개념들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금리가 올랐다는 것이 유동성이 부족해진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금자 입장에선 은행에 돈을 저금해 둔다면 예전보다 이자를 많이 주니 돈을 인출하고 싶지 않게 되며,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엔 금리가 오르면 대출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가 비싸져 금리가 내릴 때까지 돈을 빌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한 번에 수백억을 빌리는 경우도 있는 기업들의 경우엔 금리인상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이 되는 것 역시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물건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경제상황을 보니 물건이나 서비스의 이용 가격이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물가 하락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소비나 구매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제 추측으론 이러한 분들이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물건들의 경우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은 소비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말해 라면 가격이 1,000원에서 900원이 되었는데 그냥 사면되지 무슨 700원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는 생각에서 물가 하락에 따른 소비활동 중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걸 잘 이해하는 방법은 액수가 큰 자산을 구매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이 그렇습니다. 강남에 있는 500억 가치의 건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경기가 좋지 않아 물가가 계속해서 하락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500억을 주고 건물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건물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은 건물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건물 가격이 10%만 떨어져도 무려 50억이나 아낄 수 있으니까요.


반대의 경우인 인플레이션 상황도 유동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중에 유통되는 돈이 풍부한 상태, 즉 유동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보통의 경우 물가는 유동성과 비례해 상승하게 됩니다. 이를 돈이라는 것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상품으로서 돈이 많아졌다는 것은 돈의 상품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경우 우리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들의 가격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이전보다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일반적으론'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1550144949539.png 유동성이 높은 자산일수록 쉽고 빠르게 현금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플레 vs 디플레


제가 앞에서 화폐의 유동성 증가에 따라 '일반적으론' 물가가 오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일반적'이라는 것에 여러분들의 눈길이 가게끔 의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을까요? 사실 보통의 경우엔 시장에서 유통되는 돈이 많아지고, 또 개인이나 기업에서 가지고 있는 돈이 늘어나면 물가는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물가가 올라야 하는 조건이 다 갖춰졌는데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지 않기도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앞서 저희가 함께 생각해볼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에 있어 물가는 오르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내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경제에는 물가가 올라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들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왜 좋은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설명을 조금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경제 전제의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내가 보유한 자산들의 가격도 함께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주식,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물가가 상승하여 기업에서 판매하는 물건 가격이 오른다면, 경쟁력 있는 회사의 경우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를 누릴 수도 있게 됩니다. 애플 사의 제품 가격은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판매량이 크게 줄지 않다 보니 매년 높은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회사의 매출이 높다면 보통 순이익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회사의 근로자들과 주주들에게 지급될 보너스, 배당으로 줄 수 있는 여유자금이 생깁니다. 또 사람을 고용하거나 승진을 통해 직원들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더라도 벌어들이는 이익이 많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물가상승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론적인 설명입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할 때는 앞에서 예로 들었던 사람들의 '가격 하락을 기대하는 심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실 것입니다. 물가가 하락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가격을 높이기 어려워 매출 증대를 추구하기 어렵고, 당연히 순이익은 줄어들어 직원들을 해고하는 등의 비용절감 시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각 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에서는 경제정책을 시행할 때 되도록이면 물가가 상승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물가가 갑자기 급등하게 될 경우 그에 따른 경제 충격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추구하는 경제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물가가 오르되, 느리고 완만하게 올라가도록 정책을 시행한다.


그렇다면 국가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높여 물가를 상승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크게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을 통해 진행되는 통화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재정정책은 쉽게 생각해서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시설을 건설하거나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등, 정부에서 사업을 추진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시장에 돈이 유통되도록 하는 것이 재정정책입니다.


통화정책은 보통 금리의 변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는 금리의 표준이 되는 기준금리에 대한 수준을 결정하는 회의를 개최해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해 공표합니다. 그러면 시중은행들 역시 공표된 기준금리에 따라 은행에서 적용하는 금리를 변동시킵니다. 이러한 금리의 변동을 통해 화폐의 유동성과 물가 수준을 관리하는 것은 통화정책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이 많이 유통되도록 만들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건 기준금리를 내림으로써 사람들이 시중은행에서 적용받는 대출이자 또한 하락해 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예금이자는 줄어들어 은행에 예금하기보다는 현금으로 찾아 소비하거나 다른 자산에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간단해 보입니다. 정부는 재정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며 시장에 돈을 지급하고, 중앙은행에서는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예금의 매력을 떨어트리고 대출 부담을 줄여 계속해서 돈이 시장에서 유통된다면, 정부에선 물가가 상승하는 속도만 완만하게끔 잘 조절한다면 경제는 항상 좋을 테니까요.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우리가 유동성만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 경제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유동성 함정]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Government-Policy-502x280.jpg 재정정책(Fiscal)은 지출과세금에, 통화정책(Monetary)는 금리와화폐에 대한 정책입니다




유동성 함정: 돈이 멈추다


유동성 함정의 의미는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정부의 정책이 함정에 빠진 것처럼 기대했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유동성 함정을 이야기할 때는 정부의 재정정책보다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패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과정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중앙은행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시장에 유통되는 돈, 즉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지, 그리고 이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첫 번째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이유입니다. 짐작하셨듯 현재 시장경제를 가만히 놔두면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아 물가가 내려가며 경제가 나빠질 것 같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해 기준금리를 내려 부족한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것입니다. 즉, 중앙은행이 나서서 금리를 인하한다는 것은 현재 경제상태가 좋지 않다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앞으로 물가는 계속해서 하락하게 되며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지금 중앙은행에서 금리인하라는 처방을 내렸음에도 경제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경제회복에 대해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이들은 계획했던 소비와 투자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자꾸만 돈을 모아두려는 행동을 보입니다. 이 상황이 바로 유동성 함정입니다. 중앙은행에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려고 계속해서 금리를 인하하지만,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참여자들은 이에 반응하지 않고 소비와 투자를 줄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동성 함정 상황에 대해 글로만 읽으면 그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유동성 함정이 '주식 시장'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좀 느낌이 오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동성 함정을 주식시장에 비유한다면 [모두가 주가 폭락을 예상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주식 가격이 폭락할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락을 예상한다면 그들은 주식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할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증권사나 은행에서 좋은 조건에 대출을 해준다고 해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현금을 모으는 것에만 신경을 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유동성 함정입니다.


문제는 유동성 함정이라는 이유로 중앙은행이 무한정 기준금리를 낮출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금리에는 0%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0%까지 낮추게 된다면 국가는 통화정책이라는 경제정책 하나를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을 포함한 소수의 국가에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지만, 현재까지는 그 효과에 대해 찬반이 갈리는 상황입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유동성 함정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동성 함정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소비와 투자활동을 극단적으로 줄임으로써 경제에 유통되는 돈의 움직임이 멈춰버린다는 특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동성 함정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두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미래 경제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게 되면서, 강제적으로라도 돈이 유통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유동성 함정의 해결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볼 것입니다.

GettyImages-1227117113-c0c9561f5d7248d1af7e45fa01dce911 (1).jpg 돈이 어딘가로 빠져나가 경제에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 유동성 함정입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기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99%가 수령했다고 하니 다들 이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신 경험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재난지원금에는 좀 특별한 부분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사용기한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 수령한 재난지원금의 경우 사용기한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왜 그렇게 짧은 사용기한을 두었는지에 대해선 유동성 함정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다'라는 말처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14조라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소비에 활용되게 함으로써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기왕 유동성 함정을 배웠으니 이를 통해 재난지원금 지급을 이해해본다면, 정부에서는 재난지원금의 지급이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보다는 최소한 '위축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소비와 투자활동을 중단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고 이를 저축하지 못하도록 기한 내에 사용하게끔 만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현상을 다르게 설명한다면 정부에서 '화폐 유통속도'를 최대한 높임으로써 유동성이 높아지도록 정책을 실행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100년 전 미국의 경제학자의 경우 화폐 유통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화폐에 유통기한을 두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당시엔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실행될 수 없었던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100년이 지난 지금은 현실에서도 적용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 화폐 역시 화폐 유통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만약 디지털 화폐가 활성화된다면 앞으론 재난지원금을 받으러 동사무소에 갈 필요도 없이 중앙은행에서 클릭 한 번으로 국민들의 전자지갑에 돈이 숫자로 찍혀서 들어올 테니까요. 반대로 기한 내에 돈을 사용하지 못하면 전자지갑에서 숫자가 줄어들기만 하면 되니 물가관리에는 디지털 화폐가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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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의 촉박한 사용기한에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의도가 들어있었습니다.




코로나 대처의 경제적 의미


각 국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이유 또한 유동성 함정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에 실패해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에 확진되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가 격상되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소비와 투자를 당연히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코로나 바이러가 발발한 올해는 비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취업을 준비하던 분들 역시 채용공고가 축소되거나 취소되어 반강제적으로 백수의 삶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분들이 많아질수록 전체 경제에서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어 버립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기업 차원에서도 상당히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비와 투자활동이 줄어든다는 것은 수입과 수출 물동량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회사의 중요한 생산시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게 된다면 회사의 생산시설은 가동을 중단하게 되어 이로 인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버리기에 국가의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환경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국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를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국가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이 현재 받고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기업과 가계가 경제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상대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국이 성공적인 바이러스 대처로 인해 경제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coronavirus_stocks_041620.jpg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이와 같이 유동성은 한 번 배워두고 나면 다양한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노력 대비 성능이 괜찮은 개념입니다. 너무 길어질까 봐 설명은 드리지 않았지만 경제신문에서 종종 언급되는 양적 완화와 같은 개념도 유동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유동성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이 개념이 백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백수들은 언제나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는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비슷한만큼, 우리가 직면한 유동성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 역시 정부에서 사용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개인에게 있어 화폐의 유통속도를 높인다는 것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먼저 은행에서 잠들어 있는 돈은 시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투자를 통해 유통속도를 높여 돈에 유동성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어줍시다.


다음으론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동성 함정의 시작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낙관적이고 즐겁게 기대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를 하는 것에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현재 인생의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백수로 지내는 매일이 유동성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Why-Are-Room-Escape-Games-so-Popular.jpg 알 수 없는 미래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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