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 Oct 28. 2020

5-7. 백수의 경제 이야기:
노동의 자본화에 대하여

마르크스와 피케티를 통해 노동과 자본을 고민하다

자본과 노동은

착취 관계인가

협력 관계인가






웹소설도 쉽지 않다


 저의 가족 중에는 웹소설 연재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엔 가족 모두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소설을 연재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작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제 가족이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방에서 키보드 소리만 들어도 손가락 끝에서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는 것처럼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나 가족이 소설을 쓴다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른 걱정도 생깁니다. 그것은 웹소설 작가로 산다는 것이 각종 악성 댓글과 소재의 고갈,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상 등등 여러 가지 고민들로 밤새우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느 시점에 가서는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큰 고민은 어쩌면 플랫폼과의 수익배분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들어보니 플랫폼과 계약을 통해 유료 소설을 연재하면 소설 한 편이 100원에 판매되었을 경우 작가에겐 약 45~50원 정도가 들어오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전문 편집자가 있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작가에게 들어오는 수익배분 비율은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 가족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는데 들이는 시간과 수고에 비해 수익으로 돌아오는 금전보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이 힘들었는지 이럴 바에는 건실한 기업에 취업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면 승진도 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직장생활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고민에 공감은 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상담을 통해 힘들더라도 지금 쓰는 소설은 꼭 생각한 대로 완결을 지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너의 글을 비용까지 지불하며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소설에 재능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포기하지 말고 최소한 5개의 소설은 완결 지어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제가 가족에게 이와 같은 조언을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오늘 제가 드릴 이야기도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월급만큼 일하면 안 된다


 직장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은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말을 종종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자주 할 필요가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것이니까요. 저희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 1주일에 몇 시간 근무하는지에 대해 이미 회사와 협의를 하고 계약을 한 것인 만큼, 회사원이 월급 받는 만큼 일한다는 것은 제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는 이야기처럼 식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듯 직장생활 중에는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말을 굉장히 친한 사람들 앞에서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말이 나보다 상급자인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월급만큼만 일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말로 해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번에도 잠시 등장했었던 경제학자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오려고 합니다.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경제현상 중 하나는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앞에서 말한 방식대로 설명해보면 1800년대 중후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받고 있는 월급 이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생산시설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마르크스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는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노동이 투입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상품의 이윤은 바로 인간이 투입한 노동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단순하게 예를 들어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노동자가 투입한 노동의 가치 : 100원

자본가가 판매한 상품의 가격 : 150원 (50원 이윤(잉여가치) 발생)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노동자에겐 얼마만큼의 이윤이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노동자는 최소한 자신이 근로한 100원만큼은 급여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본가와 협의를 통해 새로 만들어진 50원에 대한 분배 비율을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착취는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상품 판매로 창출된 50원의 잉여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그 가치만큼을 노동자의 급여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50원은 물론이고, 노동자가 당연히 보상받아야 하는 100원만큼의 급여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1800년대엔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엔 이러한 자본가로부터의 노동자 착취 문제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생산시설을 보유한 소수의 자본가가 벌어들이는 부의 증가속도를 노동자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서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들이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받는 월급 이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가의 반론


 마르크스의 주장만 듣고 나면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불합리한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자본가들 역시 반론을 가지고 있는데요, 자본가들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누구 덕분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투자와 도전정신이 일자리를 창출해 근로자들에게 생활기반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혁명을 외치던 1800년대와 달리 오늘날 회사에서 근로를 하는 직장인들은 단순히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소속된 직원들이 더욱 능력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유학경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에 자녀와 가족의 학비와 경조사비를 회사의 복지정책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또한 근래의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사주와 같이 회사의 주식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직원이 노동자임과 동시에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로 활동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로자들이 정말로 '내가 곧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자본가들은 오히려 월급만 가지고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회사를 다니며 제공받는 월급 이외의 혜택들이 적지 않을뿐더러, 이러한 복지 혜택들 역시 비용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이윤을 착취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자본가들은 말합니다.


 또한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회사라고 보았을 때, 국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해 근로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며,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는 회사가 함부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기구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령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해 어떤 노동을 하더라도 최저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에 정해두는 것이 국가의 근로자 보호를 위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저희는 노동자와 자본가 양 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았습니다. 아마 양 쪽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고 있어 어느 쪽이 반드시 옳다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본가의 반론을 듣고 나니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생산시설에 투자해 자본가가 되기 위해선 큰돈이 필요하고, 또 사업에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수로 살아가며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나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 시점에, 자신의 삶을 오로지 노동자의 삶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아니면 자본가로서의 삶을 살아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선택지에 따라서 자신의 전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고민에 대해 약간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최근 경제학계에서 유명해진 학자의 책 내용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피케티의 주장


 2013년 출판된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800pg가 넘는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 저와 같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피케티의 주장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경제학 저서와 달리 수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은 겨우  3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3개의 수식 중 가장 많이 논란이 된 것은 이 부등식입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으면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된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입니다.


 피케티의 주장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앞으로 남은 21세기에도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 보다 높은 상황이 유지된다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에 대해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통계적 데이터를 활용해 주장을 입증해나갑니다.


 이러한 피케티의 주장이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해오던 '평범한 시민이 재벌을 앞지를 수 없는 이유', '금수저로 태어난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앞으로도 잘 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이제는 학술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피케티의 주장대로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자본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를 훨씬 더 빠르게 축적하는 구조가 단단해진다면,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이러한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연구한 결과,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잘 사는 집 자녀가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피케티는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습 자본주의'가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는 곧 '한 번 금수저로 태어났으면 영원히 금수저로 살아간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다면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을 쟁취하는 것은 보다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피케티는 자본가들이 보유한 자본이 증가하는 만큼 세금도 늘어나게 되는 '자본 누진세'라는 것을 만들어 전 세계의 국가가 협력해 단일한 세금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피케티가 국제적인 협력을 이야기한 까닭은 조세피난처를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는 경제학자들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다시 저희들은 원래의 문제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저는 글의 앞부분에서 웹소설을 쓰는 것에 고통받는 가족에게 힘들더라도 참고 5편 정도는 집필해볼 것을 조언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이러한 조언을 하게 되었던 이론적인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론 제가 '왜' 이렇게 말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노동과 자본의 융합

 

 제가 가족으로 하여금 포기하지 말고 소설을 여러 편 집필해둘 것을 조언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완성한 소설 자체가 '자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많은 비용의 투자가 없이도 자신만의 자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본을 갖출 수 있게 세상을 바꿨습니다.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는 저희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자본축적의 방법을 찾아 스스로의 능력을 활용해 자신만이 생산해낼 수 있는 자본시설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자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계설비를 갖춘 공장이나 빌딩과 같은 건물, 그리고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이 자본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웹툰, 웹소설, 동영상,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Sns 계정이 곧 자본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배웠던 마르크스의 이론과 피케티의 주장을 다시 떠올려보겠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자본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소득을 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일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자본가의 시대가 지속될 것이라면, 우리 스스로가 자본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웹소설이든 웹툰이든 어떤 창작활동을 시작하였거나 생각 중인 분들에게는 항상 두 가지를 염두에 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충분한 분량이 쌓일 만큼 꾸준히 해나간다.
2.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한다. 


    

 창작물을 만드시는 분들은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게 되고, 실력이 늘고 나면 자신의 창작물을 소비해줄 사람을 언젠가는 만나게 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겐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합니다.


 저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유지해줄 수단이 바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노동을 통해 단순히 급여를 제공받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복지혜택과 보험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기에 업무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매일 주어지는 것도 소중합니다.


 만약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준의 소득이 창출되고 있다면,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직장에서 월급으로 400만 원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매월 200만 원을 지급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창작 활동으로 약 100만 원, 또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찾아 100만 원 정도를 버는 일을 하는 것은 조금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이때 핵심은 자신의 창작 활동으로 2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함과 동시에 근로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이미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또한 꼭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가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활동 자체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쌓아둔 자본은 언젠가 수익을 창출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회를 만드는 것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쌓아온 창작물이 자본이 되어 스스로 수익을 벌어들이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찾아보시면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저 또한 이러한 사례로서 예전 글에서 A, B, C의 부업을 소개핬었습니다.


 이래서 백수의 하루는 굉장히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밝히는 것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저도 지금 소설을 하나 준비하고 있어서 수면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에 올해까지 브런치 글도 100편까지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둔 터라, 개인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현재 하고 있는 근로활동까지 함께 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은 아니긴 합니다. (사실 이 때문에 지난 주말에 몸살이 나서 3일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살아가면서 매 순간 보람과 확신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를 제가 하고 싶은 일, 스스로 해야겠다고 선택한 일을 하며 채워가고 있습니다. 노동활동과 자본 축적을 병행하는 것 역시 쉽지 않지만 제가 확신을 가지고 하다 보니 힘들면서도 동시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는 마르크스와 피케티의 주장을 먼저 설명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본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두 경제학자의 이론적인 주장을 접하시고 나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취업하는 것 이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했기 때문입니다. 어떠신가요? 앞으로의 시대는 노동이 아닌 자본이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는 두 경제학자의 주장에 공감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저처럼 자본 축적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셨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본을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보실 것은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