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마음의 이해:
계획이 너무 완벽해서 문제입니다

나의 삶을 방해하는 완벽함에 대하여

by 이도

생각이 완벽할수록

결과는 이상해진다




9시엔 자야 해요


저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규칙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 버릇 때문에 부모님이 제게 자주 하는 말씀 중 하나가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라'일 정도니까요. 보통은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저는 반대였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이럴 진데, 하물며 회사 생활할 때는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제가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분명 온갖 것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했을 것이란 생각에 지금도 후회가 남습니다.


도대체 저는 언제부터 이렇게 규칙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요? 사실 저도 최근까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주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무렵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제 입장에선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을 무렵부터 규칙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위해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저는 여름방학 때 근처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큰아버지 집에 가서 얼마간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큰아버지 집에 가서 아주 난리를 쳤던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9시엔 자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9시에 자야 한다고 설쳤던 이유는 대단치는 않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착한 어린이는 9시엔 꿈나라에 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고 그 말을 그대로 믿은 저의 방학 시간표에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꿈나라 여행'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직접 크레파스로 적어둔 내용입니다.


이러한 규칙이 설정되고 나자 저는 저녁 8시 30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집과는 달리 큰아버지 집에선 8시 30분은 퇴근하고 돌아오신 큰아버지가 씻고 밥을 먹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9시에 잠을 잘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큰어머니는 모처럼 집에 놀러 온 어린 조카를 위해 사과도 깎아주시고 제가 심심할까 봐 미리 비디오 가게에 들러 만화영화 테이프도 대여해 두셨습니다.


하지만 9시엔 꿈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제게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9시에 출발하는 호그와트행 기차를 놓친 해리포터의 심정이 저와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8시 40분이 돼서도 큰아버지 부부께선 전혀 주무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저는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9시엔 자야 하니 빨리 잘 준비를 하자고 말입니다. 심지어 자기 전엔 양치를 하셔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8살 무렵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워온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행동이지만, 그래도 큰아버지 부부께서는 제 말에 수긍해주시며 저와 함께 잘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9시 뉴스는 보고 자는 게 어떻겠냐는 협상이 들어왔지만 저는 냉정하게 거부했습니다. 사실 9시 뉴스가 뭔지도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9시에 자야 한다는 계획밖에 머리에 없었기에 계획의 진행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 요소들은 전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9시 정각이 되자 저는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계획을 지켜나간다는 사실에 저는 마음이 편해졌을 것입니다. 이제 눈을 감고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큰아버지 부부의 집은 제 입장에선 낯선 환경인 것입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베개, 이불의 촉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난리를 피워 9시에 자게 되었는데 잠이 안 온다고 다시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저는 꽤 오랫동안 뒤척이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생각의 함정


제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말씀드린 이유는 훌륭한 생각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어린이가 일찍 잠드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으며 밀어붙이게 되면 어릴 적 제가 경험했듯 짜증만 실컷 부리고 정작 잠도 들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크게 화를 내거나 다른 방법에 대해선 조금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표적인데요, 그분들의 반응이 그렇게밖에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오랫동안 깊이 고민해왔고, 혼자서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충분히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자신이 애써 완성한 완벽한 생각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생각이 없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혼자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보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생각에 확고한 신념이 생긴 분들에겐 이런 말이 모두 방해 요소처럼 들릴 뿐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완벽한 계획과 생각 끝에 실행되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예상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고집한 대로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본인의 몫이 될 것입니다. 또한 책임을 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나타난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의 차이가 심할 경우엔 자신의 계획이 반드시 옳다고 믿었던 그 신념체계 자체가 무너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마음의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심한 외골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변의 조언을 들을 생각은 없는 것입니다. 타인의 의견을 참고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적어둔 글을 보는 정도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완벽한 생각과 계획을 세움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워진 계획이 이번이라고 앞의 계획과 큰 차이가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결국은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두 번째는 아예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훌륭하다고 믿었던 생각이 깨져버리고 나니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계획을 수정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또다시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앞으론 뭔가를 생각하는 것도 싫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완벽함과 옳음


저는 완벽함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로 완벽함과 옳다는 것에 대해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완벽함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저는 9시에 잠을 잠으로써 방학 계획표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단, 모처럼 만난 큰아버지, 큰 어머니와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 인생에는 올바른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숫자 하나의 오류를 가지고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것보단,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생각해본 뒤,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부서원들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회사원으로서 제가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것보단 훨씬 결과가 좋았을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강하게 들수록 생각을 실천하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조건이 갖춰지면 열심히 할 것이다'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완벽한 조건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계획과 생각이라는 것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인 것이지, 결과까지도 완벽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친김에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한자론 '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완벽은 [화씨지벽]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이 유래가 상당히 재미있는데요, 제가 간단하게나마 소개를 드려보겠습니다.


중국 조나라의 혜문왕은 흠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옥구슬인 화씨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문을 들었던 진나라의 소양왕은 조나라에게 성 15개를 줄 테니 화씨벽을 넘겨달라는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말이 협상이지 진나라는 처음부터 소국에 불과한 조나라에 성을 넘겨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화씨벽만 달라고 하기엔 모양이 살지 않으니 형식적으로 성을 주겠다고 말을 한 것이고 속셈은 옥구슬을 빼앗아올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조나라는 진나라의 협상에 대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거절하면 이를 빌미로 진나라가 침략해올 것이 뻔히 보였고, 그렇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화씨벽을 넘겨주는 것도 왕의 체면이 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가 자원해 자신이 직접 화씨벽을 들고 가 진나라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진나라에 도착한 인상여는 우선 소양왕에게 화씨벽을 건네었습니다. 한참 소양왕이 아름다운 화씨벽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 인상여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왕이시여, 사실 화씨벽에도 흠집이 하나 있는데,
제가 흠짐이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흠집이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란 소양왕은 인상여를 불러 다시 화씨벽을 건네주며 흠집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다시 화씨벽을 손에 넣은 인상여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소양왕에게 소리치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실 화씨벽에는 흠집이 없다. 그러나 왕이 조나라에 성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당장 이 옥구슬을 깨트려버리고 나도 죽을 것이다.


이제 협박의 주체는 진나라에서 인상여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화씨벽을 가지고 싶었던 진나라 소양왕은 약속대로 성을 줄 테니 일단 진정하라고 인상여를 다독인 뒤, 그대의 용기에 감탄했다며 멋진 사내를 만났으니 오늘은 축하연을 즐기자며 진수성찬을 대접합니다. 물론 이것은 인상여가 술에 취했을 때 다시 화씨벽을 뺏어오려는 소양왕의 계략이었지만, 인상여는 소양왕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상여는 축하연이 준비되는 동안 사람을 시켜 소양왕 몰래 화씨벽을 다시 조나라로 돌려보냈고 화씨벽이 안전해졌음을 확인한 뒤에야 소양왕과의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뒤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리면, 인상여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화씨벽은 여전히 조나라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완벽함의 흠결


저는 이 [완벽]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흔히 완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100%의 완전무결한 어떤 것을 생각하지만, 정작 완벽이라는 단어에는 완벽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흠집'덕분에 사람도 살고 위기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유래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볼 때, 완벽하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처음부터 100%의 상태가 아닌 약간의 흠결이 있더라도 흠결을 인정하며 안고 갈 수 있는 포부와 능력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의 계획은 불만족스럽더라도 계속해서 고쳐나가고 개선해 나가다 보면 마지막엔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바뀔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표 달성과 성공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생각해볼 법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 역시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전에 써둔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종종 느끼셨을 것이라 짐작하는데요, 제 글을 보면 오타와 비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느끼신 적이 많으실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제가 비문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일단 완벽하지 않더라도 100편까지 다 써보는 것을 우선하자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00편의 글을 다 작성한 뒤, 수정과 퇴고는 다시 목표를 설정해 찬찬히 해보겠다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저는 이게 참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는데요, 하지만 뭐든지 처음부터 잘하려고 마음을 먹다 보니 정작 중요한 실천을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어설프더라도 일단은 목표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짧은 기간 동안 이만큼의 글을 적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이 쌓여갈수록 퇴고의 부담도 함께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흠집도 허용하는 마음이야 말로 완벽에 더 가까울 수 있으니까요. 과정은 흠집투성이라도 결과만 좋으면 그것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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