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인간관계론:
백수의 한턱은 가성비가 높다.

내가 항상 밥을 사는 이유에 대하여

by 이도

짧은 시간의 식사라도

대접받은 사람의 마음엔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습니다




밥은 언제나 제가


무슨 이야기로 인간관계에 대한 시작을 열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문득 '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제가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하는 과정에도 저의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제가 밥을 사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은근히 고집도 강해서 상대방도 밥을 사는 성향이면 화장실을 다녀오는 척하면서 몰래 계산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의 치밀함에 상대방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지만 그래도 싫은 표정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저만 알고 있는 규칙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먼저 연락한 사람이 밥을 산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규칙을 깨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이 불렀든,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서 찾아간 상화인 것과 관계없이 저는 항상 밥을 사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밥을 사는 이유는 '가성비'와 '선택권'에 있습니다.


먼저 백수가 내는 한 턱은 가격에 비해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7천 원 정도의 백반 정도만 대접해도 직장에 다니는 지인들은 네가 왜 사냐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 저는 점수를 따기 위해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미안해, 더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이미 저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친구들은 저의 이 징글징글한 대사에 쉽게 마음이 넘어가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효과가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렇게 평소에 소소하게라도 밥을 사며 차곡차곡 적립해두면, 더 큰 보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보답은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을 쉬운 일처럼 말씀하시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 호감을 얻었다가도 순간의 실수로 지금까지 쌓아온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얻는 것도, 그걸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봤을 때, 백수가 사는 한 끼의 식사는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상대방으로부터 높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누구나 백수 시절을 경험해본 적이 있기에 백수에겐 돈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위해 눈 앞에 있는 백수가 소중한 돈을 쓴다는 것은 나쁘게 볼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사준 사람 마음대로


제가 밥을 사는 다른 이유는 한 턱을 냄으로써 제게 선택권이 넘어온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권은 상대방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제가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 때문이라도 밥은 꼭 제가 사려고 하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식사를 대접받고 나면 그 기억은 소화가 되면서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아, 그때 저분에게 밥 얻어먹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 생각이 여러 번 나게 되거나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하는 분이라면 저에겐 이번엔 내가 식사를 대접해야겠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제가 밥을 사는 입장이 되면 앞에서 했던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때 뭘 먹었는지, 얼마를 지불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마음이 편안합니다. 하지만 대접을 받은 사람에겐 여전히 그 기억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꾸 밥을 사려고 하면 누군가는 이걸 악용하려는 사람도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이건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밥을 사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상대로부터 호감도 얻고, 상대로 하여금 나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의 호감이 아주 값지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가격 대비 효과도 높다고 믿습니다.




밥보단 시간 구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른 사람이 시간을 내서 함께 소통하며 밥을 먹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 데다가 이 정도 식사는 혼자서나 다른 사람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의 연락에 응해줬거나, 혹은 저를 불러주었다는 것 자체가 저라는 사람이 상대방에게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도와줍니다. 그러고 보면 논어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중에서)


이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주고 함께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니,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 정도는 저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어떠실까요, 저는 밥 한 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는 것은 제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기다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죠. 그렇다면 밥 한 끼 정도는 우리가 대접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백수의 한 끼 대접은 정말 가치가 높으니까요. 친한 지인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시면 효과는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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