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선물이 아닌 나를 신경 써준 마음에 감동합니다
사소해도 좋아요
누군가를 만날 땐
작은 선물을 준비합시다
박 대리님 감사해요
제가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맞이하는 추석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서울생활이 재밌고 좋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적응도 잘 안되고 미술관 많은 것 이외에는 서울의 장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서 빨리 연휴가 와서 고향에 내려갈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부서장님은 명절 전이고 하니 다 같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부서장님이 술을 전혀 못하는 분이라서 부서 회식은 항상 점심시간에 가졌습니다. 이건 좋은 데 항상 똑같은 곳만 가는 곳은 좋지 않았지만요. 그날은 역시 추석 전이라 다들 고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다녀와야 혼잡도로를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저를 많이 챙겨주신 박 대리님께선 제게 추석 계획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사실 저는 별다른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저 버스를 예매해두고 도착하는 대로 친구들과 놀 생각밖에는 없었거든요. 대리님은 제가 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제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한 마디 해주셨습니다.
집에 내려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마요, 특히 엄마건 꼭 따로 챙기고요.
대리님 눈에는 제가 마냥 어리게 보이셨던 것인지 제가 명절날 집에 내려가면서 과일 한 상자도 없이 그냥 빈손으로 집에 갈 것이 걱정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리님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가면 부모님이 준비해두신 음식을 먹을 생각만 했지 아직까지 제가 뭘 챙겨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자 제가 아직도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다른 사람 집에 가거나 명절엔 선물 꾸러미를 챙겨가는 것을 봤을 텐데도 여전히 이런 일들이 저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리님의 조언 덕분에 집에 들고 갈 선물을 미리 챙겨두면서, 특히 어머니의 선물은 회사 근처의 백화점에서 스카프가 유명하다는 브랜드의 실크 스카프로 준비해서 집에 내려갔습니다.
부모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아직도 오랜만에 제가 집에 내려온 것이 좋으셨던 것인지 제가 챙겨간 선물이 좋으셨던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여하간 저는 대리님 덕분에 추석 명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퇴사한 지금까지도 저는 박 대리님만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이유는 뭐든 좋으니
그 이후로 저는 사람을 만날 땐 어떤 이유라도 붙여서 사소한 선물이라도 챙겨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물론 너무 자주 만나는 사람은 무리가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거나 처음 뵙게 되는 분들에게는 꼭 작은 선물이라도 하곤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도 괜찮습니다. 온갖 이유를 다 붙여서 드리는 편이니까요.
가령 최근에도 저는 교육 업무를 진행하며 교육생 분의 집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교육장에서 수업이 진행되어야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당분간은 희망하는 분들에 한해 강사가 교육생분들의 집에 찾아가서 수업을 할 일이 생겼거든요. 제가 지난주에 수업을 했던 어머님은 피아노를 전공한 교수님이었습니다.
제가 수업하는 내용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좀 더 능숙하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실습해보는 것인데요, 이번 교육생 분은 확실히 오랜 기간 학생들을 지도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적지 않은 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학구열이 대단하셔서 가르치는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일이 마침 빼빼로데이였습니다. 저는 수업도 열심히 따라와 주시고 또 교육생분께서 쉬는 시간마다 직접 만드셨다는 빵과 커피를 주셨던 것이 감사해서 가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 초콜릿과 빼빼로를 사서 갔습니다. 왠지 좋아해 주실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교육생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좋아해 주셨습니다.
교육생분께선 뭘 이런 걸 다 사 왔냐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모처럼 빼빼로데이고 해서 사 왔다고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러자 교육생께서는 저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사과부터 쿠키에 홍차까지... 정말 집에 두신 간식은 다 챙겨주시려고 해서 저도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더 큰 선물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교육생 분께서 피아노를 전공하신 분이라고 말씀드렸죠? 저는 쉬는 시간에 제가 최근에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님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를 피아노 앞에 앉혀두시고 1시간 동안 피아노 연주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날 제가 배웠던 것은 혼자서 독학으로는 결코 익히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또 제가 피아노 전공 교수님께 레슨 받아본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배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꼭 제가 선물을 드렸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계기 정도는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면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 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이처럼 사소한 선물은 우연이 더해질 경우 생각지도 못한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선물도 실력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은 쉬워 보이더라도 막상 제대로 하려고 하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의 취향, 좋아할 법한 것에 대한 추리, 상황에 맞는 품목 등등, 고려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물하는 것 또한 여러 번 하다 보면 점점 실력이 늘어간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집에 항상 여분의 편지지와 예쁜 편지봉투가 있습니다. 갑자기 선물할 일이 생겼을 때 짧은 편지 한 통이 더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할 수가 없으니까요. 또 지난번 말씀드렸듯 저는 제가 먹을 레몬청이나 생강청을 담글 때도 선물을 대비해 조금 더 많이 만들거나 선물용으로 담을 유리병을 구매해두기도 합니다. 이런 유리병에 레몬청을 담고 포장지로 감싼 뒤 리본만 묶어주면 근사한 선물이 완성되거든요.
'백수가 선물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목표하시는 것을 달성하시고 나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시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선물할 일도 생기실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부터 연습해두자는 것이 저의 생각인 것이죠.
또 정말로 선물할 사람이 없느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엔 부모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은 크고 약소함을 떠나서 매일 드려도 나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 당장 메시지 한 통만 보내드려도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만, 어떠신가요?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선물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해보는 것 말입니다. 저는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