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

by 아침햇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하지만 부자는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한때 전 세계 은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Silver King”이라 불린 유대의 대부호가 있었다. 칠십 평생을 돈으로 쌓아 올린 그의 삶은 바벨탑 못지않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노년에 깨달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돈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랍비를 찾아가 지갑을 털어내며 “스승님, 제겐 돈밖에 없습니다. 필요 없으시다면 태워버리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받아주지 않으신다면 저를 거부하시는 겁니다.”라며 울부짖었다. 스승의 대답은 간단했다. “필요하면 연락할게. 지금은 가져가거라.”


아마 이 장면을 본 천사가 있었다면 배꼽 잡고 웃었을 것이다. 세상 부의 정점에 선 노인이, 마치 용돈을 꼭 받아 달라는 아이처럼 울고 있다니. 그러나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신 참뜻은 바로 그런 깨달음 속에 숨어 있다. 은행, 보석, 아파트가 가득해도 내 영혼이 텅 빈 껍데기라면, 결국 인생은 거대한 모래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화가 러시아 신비가 구르지예프에게도 전해진다. 한 귀족 여인이 목걸이, 귀걸이, 팔찌를 한가득 껴입고 와서 “저 도 닦겠습니다!” 하니, 구르지예프가 말했다. “그럼 다 내놔.” 여인, 바로 순종하여 제단에 던져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구르지예프가 그것을 몽땅 돌려주었다. 신뢰의 표시였던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여인은 ‘혹시 돌려주는 건가?’ 기대하며 눈치 보며 내놨다가…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분노와 원망만 남기고 떠났다. 구르지예프의 말은 이랬다. “신뢰 없는 제자는 곁에 둘 이유가 없다. 게다가 보석은 우리 기관 운영비로도 유용하다.” 종교적 교훈과 현실적 재치가 묘하게 공존하지 않은가.


예수님도 니고데모 같은 학자가 밤중에 몰래 찾아왔을 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사회사업의 권유가 아니라, 그가 존재의 공허를 체험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문턱에도 못 선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한 임금이 산중 오두막의 노인을 만나 밝게 빛나는 얼굴의 비결을 물었다. 노인은 창밖의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작은 하늘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것이 내 행복의 비밀이오.” 훈장을 수십 개 달아 본들, 하늘 조각 하나가 주는 기쁨을 이길 순 없다.


결국 길의 시작은 가난이고 마지막은 청결이다. 옷조차 필요 없는 투명한 상태, 세상과 가면을 벗어던지고 맨 존재로 설 수 있는 자유. 다윗은 거의 벌거벗다시피 춤췄고, 사울은 성령에 취해 길바닥을 뒹굴었다. 도인은 화려한 비단옷을 거절하며 “짐승들이 웃을 거요”라 했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벌거벗고 놀며, 오히려 성인에게 잃어버린 자유를 가르쳐준다.


한 장난기 많은 기자가 벌거벗은 도인에게 여자의 몸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도인이 한 말이 걸작이다. “여자? 60%는 물, 나머지는 뼈와 살과 피지. 남자도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중간을 ‘몸’이라 부르는 것뿐이지.” 농담 같지만 순간, 관념들이 무너진다. 아름다움보다 호흡이, 힘보다 침묵이, 그리고 존재의 환함이 중요한 것임을 일깨우는 통찰이다.


인도의 크리슈나와 아르주나 이야기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제자가 신을 만나는 체험을 원하자, 스승은 우주적 참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장 같은 거대한 비전 속에서 제자는 질겁하며 “원래대로 돌아와 주십시오!” 간청했다. 크리슈나의 대답은 명료했다. “진짜 모습은 방금 본 그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본다면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감당 불가, 폭풍우에 창문이 깨지듯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은 결코 낭만적 판타지가 아니다. 가난을 자각한 영혼만이 출발선에 서고, 모든 가면과 옷을 벗어버린 적나라한 순수만이 마지막 목적지에 닿는다. 그 순간 하늘은 더 이상 머나먼 것이 아니라, 나무 사이로 비치는 작은 파란 조각처럼 우리 눈앞에 있다. 아마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의 옷이 빛이 되었던 게 아닐까.


결국 영적 삶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늘 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그 한 조각을 세상 무엇보다 값지게 여길 줄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 조각을 보며 미소 짓는 순간, 신은 이미 우리를 향해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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