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의 아내

She+Recession= Shecession

by 맨모삼천지교
[포스트 아포칼립스] 매거진에 담기는 이야기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확산 속에서...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은 뉴욕에서 경험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소설입니다.


아침이다. 9시부터 시작할 온라인 홈스쿨링 아침 미팅에 늦지 않게 태블릿 두 대를 식탁 위에 두고 그 앞에 아침으로 먹을 시리얼을 꺼내며 아이들을 깨웠다. 계란 프라이를 하기 위해서 올려둔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달구어 지는 향이 난다. 한 손으로 냉장고를 열고 계란을 꺼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이미 잘라둔 과일이 담은 접시를 들고 입으로는 아이들을 깨웠다.


“진아야!! 진수야!! 어서 일어나!!! 수업 늦을래?”

어제저녁에도 12시가 될 때까지 방 안에서 안 자고 노는 것 같더니... 두 아이는 역시나 늦잠이다. 이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가던 아침이 정말 있었던 일인가 가물가물하다.


“아.. 엄마, 어차피 얼굴 잠깐 보여주고 말건대 뭘 그렇게 신경 써....”

“맞아! 다른 애들도 다 잠옷 입고 오던데!”


평소에는 그렇게 싸우다가도, 이렇게 엄마한테 말대답할 때만 죽이 척척 맞는 아이들을 말없이 지긋이 쳐다보니, 그나마 눈치가 빠른 진아가 얼른 진수에게 일단 그만 말하고 식탁에 앉으라는 의미로 등짝을 때린다.

‘진수 눈치 없는 건 어쩜. 저렇게 아빠를 둘 다 빼다 박았나 몰라.’

아이를 깨우며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낸 것은, 방 안에서 아직도 안나오는 현진이 듣기를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 야행성이라 소음 없을 때 일이 잘된다며 주로 밤에 더 집중해서 일하는 그의 그 예민한 귀는 이럴 때는 전혀 효과가 없는지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 둘에 맞벌이 부부.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신 덕에 어찌어찌 서울에 전세 아파트 하나로 시작한 신혼이었고, 그 후에 아이 둘을 낳아 또 친정 엄마 찬스와 휴가를 돌려막으며 어찌어찌 허덕허덕하면서도 꽤 오래 회사를 다녔다. 커리어를 잃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했던 것은 아이를 보겠다며 집으로 돌아간 선배들의 후회와 남아서 버틴자들의 승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제법 많아진 후배들의 버텨달라는 눈빛이 읽히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이유들보다 좀 더 현실적인, 가계 수입과 지출의 문제까지. 이 모든 조합은 내가 매일 시간거지로 살면서도 쉽게 직장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었었다. 그렇게 버텨 곧 이사 승진이 얼마 안 남아 보이던 시점(즉 버틴자들의 승리를 나도 만끽을 해볼만한 시점이랄까), 현진이 말도 안되는 뉴스를 가지고 왔다.


"우리 미국 가면 어떨까?"

"엉???? 갑자기 왠 미국??? 당신 영어도 못하는데????"

"아.. 이 사람이. 나 영어 그게.. 지금 미국 주재원으로 결정되어 있던 지헌 선배가, 아버님 때문에 주재원 발령 미루어달라고 했나 봐. 인사부에서 그다음으로 갈만한 사람 확인하다가 비슷한 직무인 나에게 이야기가 왔어."

"여기서와 같은 일을 미국에서 하는 거야? 당신 할 수 있겠어?"

미국에 가는 건 그렇다 치는데, 영어를 배울 뇌는 버려두고 숫자를 보는 뇌만 키운 그는 어학에는 젬병이었다. 그런데 영어로 일을 해야 하는 곳에 가야 한다니...? 어처구니없어하는 내 표정에 본인도 어이가 없었는지, 처음에 진지하게 선언하듯 이야기할 때의 얼굴은 어디 가고 핏 웃으며 말했다.

"막상, 어차피 또 한국 회사라 영어 쓸 일은 일하는 데는 별로 없나 봐. 대부분 사내 커뮤니케이션이고... 지금도 일하면서 영어는 좀 써요, 이 사람아. 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라고. 참 내. 근데 내 일은 일이고... 애들한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당신도 좀 쉴 겸...한번 생각해 봐 "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못 내 아쉬운 건 그간 이어온 커리어였다.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그렇듯 때려치우지 못해 안달인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굽이를 하나씩 지나 어느 정도 회사 내에서 중간급 이상의 선배 자리에 있게 되고 보니 전보다는 덜 화나고, 더 내려놓으며 그런대로 또 즐겁게 일하는 법을 깨우칠 즈음의 연차였다. 그리고 마다하시는 친정엄마에게 빌다시피 부탁해서 아이들을 맡기며 버텨온 영유아기도 지나 조금은 아이들도 커있어서 전보다는 회사도 다닐만 해졌다 싶었더랬다.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했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도 아이들보다 우선순위에 두기는 어려웠다. 점점 심해지는 둘째 진수의 아토피도 미세먼지 없는 곳으로 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까지 얹고보니 마다할 이유가 사라져, 결국 우리는 살던 집도 단박에 처분하고 바리바리 이민가방을 들었다.


그렇게, 미국에 온 지 1년 반.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신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수월히 적응하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맨해튼이 바로 강 건너에 집 앞만 나가도 한식당과 파리바게트, 그리고 심지어 명동 칼국수까지 있어서 여기가 미국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헷갈릴 지경이라 적응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은행에 가도 한국 직원들이 있어 편했다. 학교에도 한국 아이들이 많은 것은 물론, 한국 엄마들 커뮤니티가 굉장히 탄탄했다. 그리고 그간의 회사 내 미팅으로 다져진 서바이벌 잉글리시는 내 생각보다 미국에서의 삶의 장벽을 더 낮추어주었다. 원체 외향적이지는 않은 현진은, 한국에서와 같이 잦은 야근과 술자리 없어져 회사 생활을 더 즐기는 듯 해보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적응하며 흐른 시간이 반년이 좀 넘었을까. 육아휴직에 이어 휴직계까지 내고 떠나온 회사에서, 미국지사에 가서 일해볼 생각 없냐며 물어왔다. 미국에서 일까지 하게 되리라 생각은 못했는데, 이제 두 아이의 학교 생활도 안정이 되어 완전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반일 정도는 가능할 듯 했다. 게다가 마침, 휴직하기 전에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전세계적으로 꽤 성공케이스로 공유되었던 터라, 여러모로 미국 지사에서 더 좋은 처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4월 첫 날을 출근일로 미리 정해두고, 짧은 가족 여행을 다녀오며 마지막 전업주부로의 일상을 즐기던 2020년의 봄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멋지게 차려입고 회사로 돌아서는 엄마들을 약간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진아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언제가 첫 출근이냐며, 어떤 옷을 입고 갈 것이고 무슨 일을 할 것이냐며 질문같은 응원을 더했다.


그랬다.

그랬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바이러스는 그 모든 걸 원점으로, 아니 그 이전으로 돌려놨다.

두 아이의 홈스쿨링은 아이패드를 누가 먼저 쓰느냐의 쟁탈전과, 과목별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숙제들로 그 포문을 열었다. 둘을 낳은 게 다행이다 싶게 친구들의 빈자리는 서로가 채우는 듯했지만, 두 아이 덕에 배로 생기는 집 안의 어지러움과 챙겨야 하는 학교 과제들은 두제곱을 넘어섰다. 거기다 집에 있으며 먹는 네 식구의 식사와 간식은 어찌나 많은지... 하루 종일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부엌을 오가다 하루가 갔다. 성장기에 접어든 것인지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진아는 냉장고에 붙어있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군것질을 즐기는 현진은 끊임없이 냉장실의 아이스크림을 보약처럼 꺼내먹었다.

한국에서와 비슷한 아파트 형태의 건물을 미국 생활의 첫 집으로 택한 결정은 최악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건물 내 이용이 가능했던 수영장과 놀이 공간, 공유 서재는 모두 폐쇄되고.. 결국 집 안에서 모든 가족이 복닥거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관리가 힘들고 커뮤니티를 만들기 어려워도 공간적인 여유가 가득한 널찍한 단독 주택을 택하지 않은 것이 후회로 몰려왔다. 한국의 친정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성화였다. 하지만, 우리가 나온 이후 가파르게 상승중이던 집값은 이미 두배가 넘어버려서, '집' 이야기만 꺼내도 시일야방성대곡을 할 지경인 유목민이 되어버린 우리는 마땅히 머물 거처도 없는 상태로 그저 귀국하고 부모님 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친정 부모님께 지며 살아왔는데...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적인 비자 승인을 막어버린 탓에, 차기로 나와야 할 주재원들의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이미 나와 있는 사람들의 귀국 일정은 더 불투명해진 상황. 그러니 돌아간다는 것은, 직장 역시도 모두 다시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출근이 예정이었던 나의 새로운 직장도 코로나가 한창이던 3월부터 5월까지는 출근은커녕 일단 업무 시작일을 미루어 두는 것으로 모든 것이 중지되었었다. 그러던 중, 6월이 되어 날이 조금 풀리고 많은 상황들이 완화되자, 일단 재택으로 업무를 시작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 와중에 채용을 그대로 진행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반가운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어떻게 하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먼저 내 머리를 후비고 지나갔다.

아이들이 이유식 먹을 나이가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이기도 했으니까. 누나 보다도 빨리, 온 지 반년 만에 입이 터져 술술 영어를 말하며 ‘이제 드디어 우리 집에도 네이티브 잉글리시 스피커가 생기는 것이냐’며 우리를 들뜨게 한 진수의 영어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진아의 경우는 그래도 홈스쿨링을 따라가며 친구들과 자주 온라인 플레이 데이트며, 미국 드라마를 보며 유지는 하고 있는 듯했지만 마찬가지로 서서히 표현력이 줄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때문에 학교에서 올려주는 홈스쿨링 과제를 하고,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하는 플레이 데이트를 잡아주는 것이 부모로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전부였기에 이것마저 여기서 더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재택을 하고 있는 현진은 몸만 집에 있을 뿐, 그 어떤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그닥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아이와 한 남자를 먹이고 집안까지 건사하며... 재택근무를 한다?

그것도 새로운 곳에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상사랑...처음부터 재택으로 합을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

이도저도 제대로 못하고, 둘 다 괜히 욕만 더 먹는 상황인건 아닐까.....?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매일이 고비 같은데,
내가 감내 못할 스트레스를 얹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나의 질문에 현진은 "아..되겠어? 애들은 그럼 누가봐...여기 누구 손도 못 빌리는데." 라며 불가능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표정이었다. 재택으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본인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선을 긋는 듯한 말에 난 입을 닫아버렸다.


고민 끝에, 린지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셋인 린지는 백인인 어머니와 흑인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흑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로스쿨을 졸업해서 변호사 일을 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그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둘이나 더 출산하고 지금은 NGO 기반의 환경개선에 집중하는 작은 회사의 법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배경도 환경도, 심지어 인종도 너무 다른 우리가 친구가 된 시작은 아이들 덕분이었다. 진아와 같은 반이었던 린지의 첫째 딸 조지가 단짝이 된 작년, 학급 미팅에서 아이들이 친하다보니 몇 번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가지 공통점을 우리는 빠르게 찾아냈었다. 남편이 비슷하게 워커홀릭 중증(뭐, 한국에 비하면 이 정도가 뭐 워커홀릭이냐 하겠냐만... 평일에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 없고, 가사에 있어서는 파스타 접시가 집안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일에만 관심있는 남편들은 우리는 '워커홀릭'이라 칭하고는 했다.)이라는 점에 금세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내이자 엄마로 속터지는 각자의 가정사를 공유하다 보면 가까워 지는 것은 글로벌 인지상정인가 싶게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게다가 현직 변호사인 린지의 남편이 한국의 대기업들의 미국 관련된 소송에 참여하기도 하며 한국으로 출장도 자주 다니는 편이라 '한국'과 '워커홀릭'이라는 공통점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두 가족은 금세 가까워졌다. 그래서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도 자주 전화하며 일상을 시시콜콜 공유하고 있었고, 나와 미국 사회를 모두 잘 아는 그녀였기에. 가장 객관적인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의 미국에서의 새로운 일 시작을 응원해 준 것도 그녀였기에. 답이 궁금했다.


"하지 마..."

"응??"

"지금은 못할 거야 너. 나도... 실은 지난주에 그만두었어. 도저히 안되겠더라구.... 이건 미션 임파서블이야."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이후 여성들의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건 리테일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녀 같은 고급인력은 예외가 아니었나??

"베이비시터도 못쓰는 상황에 아이가 셋. 거기에 둘은 홈스쿨링, 하나는 그 홈스쿨링을 방해하지 않게 곁에서 바로 돌봐야 하는 말썽꾸러기 4살. 너도 너무 알지? 거기다 그렉은 일 시작하면 그냥 집에 없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그래도 전에 일주일에 두 번은 부르던 하우스키퍼(집 청소해주시는 분) 도 못쓰고. 결국 그게 다 내 몫이더라고. 회사일은 회사일대로...당연히 돈 받는 만큼의 일은 해야 하는데, 이대로는 정말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라. 결국 그만두었어. 퍼포먼스도 제대로 못 내는 상황에 되려 나중에 이직할 때 더 문제 될 것 같기도 해서. 마침 회사에서도 막 사람 줄이고 있던 상황이라 이래저래 잘 된 것 같아. 잘리느니 그만두는 게 자존심이나 안 상하지..."

"아니... 너무 아쉽잖아. 나는 네가 별 말 안 하길래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 아이가 셋인데 도대체 어떻게 재택하며 일을 하고 있는 지 안 그래도 너무 의아했어... 그런 일 있었구나..."

"학교를 안 여는데, 일을 어떻게 해. 아무리 집에서라도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조각상도 아니고. 거기다 가르치라며..... 선생님 대신 애들을! 우리가! 이건 진짜 미친 짓인 것 같아."

"맞아............ 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로 쏟아내는 린지의 말은, 한국에서 익히 듣던 선배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라면, 한국이 학교를 폐쇄하는 것과 직장근무를 재택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예 다른 결정의 범주에 있다면...미국의 경우 [학교를 연다=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 [학교를 닫는다= 부모가 직장으로의 출근이 불가능하다]로 정리되는 상황이라, 학교와 회사라는 공간의 폐쇄는 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본인은 회사 출근을 해야하는데 아이는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발을 동동 구르는 한국의 지인들을 보며 나도 가슴이 타들어갔지만, 미국의 엄마들은 또 미국의 엄마들대로...발달되어 있는 시스템 덕에 회사 출근시보다 배는 되는 업무 강도를 집으로 끌고 들어와 나름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양국의 엄마들이 마주하고 있는 전혀 다르지 않은 한가지는, '홈스쿨링'이라는 전쟁의 최전선에 서야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전통적으로 여성만의 영역인 '가사'와 '육아'의 영역에 미국의 남성들이 들어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보다는 좀 더 앞선 20~30년 전이었다. 특히 코로나가 터진 이후는, 봇물 터지는 와이프들의 울화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장보는 심부름을 도맡는다던지, 요리를 함께 한다던지... 하는 형태로 나이가 지긋한 남편들도 꽤나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덕분에 닫힌 학교로 인해, 집으로 끌려들어 온 아이들의 "홈스쿨링"은 이 아빠들에게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이었듯 하다. 그리고 이 미지의 무언가에 대해서 엄마들이 당연히 맞서 싸워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미 최전선에 가있는 동안, 많은 아빠들이 이 부분은 그저 '어.... 어.....' 하며 한 발 물러서 저 멀리 펼쳐진 전쟁을 긴장만 한 채 관전 중이었다.

Photo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이렇게 홈스쿨링을 '엄마의 영역'에 놓아두는 것은 국경을 마다하지 않아, 한국의 옛 동료들과 함께 있는 카톡 창에는 긴급 보육에 친정엄마 찬스를 돌려 막고, 휴가까지 써도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기간을 커버할 수 없어 한계라는 하소연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와중에도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는데 불안하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걔 중에는 회사측에서 재택으로 근무형태를 전환한 경우도 있었지만, 집에 있으니 끝없이 눈에 보이는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하루종일 매달리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재택이라는 업무 형태를 이해 못하고 노는 줄 아는 '라떼' 같은 상사들에 대한 울화, 아이와 집에서 전쟁중인 상황에 아랑곳 않고 이 시국에도 회식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터지는 분통들로 각종 '분노'와 '슬픔'의 이모티콘들이 끊임없이 등장중이었다. 그런데, 맞벌이하는 문화가 훨씬 더 빨리 형성된 이 곳은 좀 다르지 않을까, 뭔가 좀 참고할만한 방식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들었던 전화기를 통해 이 곳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딘가 울고 싶어졌다.


오래 통화했는지 뜨겁게 달구어진 전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서 앉아 가만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방에서 일하고 있는 현진은 아침에 출근시간에 시작한 이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간식은 꺼내 간 것인지 아이스크림 껍질이 쓰레기통 옆에 떨어져있었다. 거실에는 진아가 읽다 쌓아놓은 책들과 진수가 오려놓은 색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식탁에는 아이들이 딸기를 꺼내먹었는지 분홍색 물이 말라붙은 흰 접시가 포크 2개와 함께 놓여있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일주일 내내 멈추지 않는 세탁기가 탈수가 끝났음을 알리며 삑삑 울고 있었다.


"엄마."

진아가 멍하니 있는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아..그래..."

"엄마. 엄마 출근 안해?"

아마도 내가 린지와 통화하는 것을 들은 눈치였다.

"응..그러게. 어째야 할지 고민이네. 해도 회사는 안가고 아빠처럼 집에서 할 것 같은데...가능할까 모르겠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진아가 말한다.

"해! 해! 엄마 내가 도와줄게!

내가 빨래 도와줄까?

뭐 하면 엄마 출근해?"


빨래를 도와 나를 응원하겠다는 이 작은 여성의 머리를 그저 쓰다듬으며 식탁의자에 걸린 앞치마를 다시 집어들었다.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참고 자료

https://news.joins.com/article/23817113


https://www.cnbc.com/2020/07/14/how-coronavirus-could-do-long-term-damage-to-womens-careers.html

https://www.nytimes.com/2020/05/09/us/unemployment-coronavirus-wom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