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의 소리

작은 한숨과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 들린 S.O.S

by 맨모삼천지교

홈스쿨링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교육청으로 보내는 간단한 신청 메일에 이어 학업 계획서도 잘 작성해서 발송했고, 외국인인 우리가 가르치기 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목들은 러닝 포드(한국으로 치면 그룹 과외라 할 수 있겠다.)를 병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았다. 적어도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가 그곳에서 배우는 시간 동안은, 나도 내 일을 할 수 있었기에 2020년 3월부터 시작한 새 사업과 기존에 벌려두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도 전념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집에서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를 너무나 힘들어하던 남편 역시, 아이가 없는 고요한 시간에 집중하여 일할 수 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코로나로 인해 이미 2020년 3월부터 9월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을 다른 친척이나 가족들도 없는 이국 땅에서 오롯이 엄마, 아빠와만 보낸 시간이 반년을 넘어가던 시점이었기에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바이러스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러닝 포드에 참여한 가족끼리는 일종의 코로나 관련 프로토콜도 만들어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긴장도 조금은 내려놓고 그룹 내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신이 난 아이는 진짜 학교가 아닌데도 매일 저녁이면 내일 입고 갈 옷과 가방을 싸놓고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시작한 지 두 주 즈음 지나 아이의 입에서 '안네(가명)'이라는 친구의 이름이 자꾸 나오며 이 친구 때문에 힘들다 이야기할 때만 해도, '성격이 강한 친구'와의 사이에서 친해지면서 처음 겪게 되는 적응기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아이와 좀 더 친해지도록 자주 보고, 시간을 갖으며 서로를 알아가면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다 믿었다. 더불어... 차분하고 이성적인 것 같아 보이는 안네의 엄마와 안네의 성격이 참 판이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다분히 엄마는 '정상적'으로 보이니 함께 이야기를 잘해본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 그리고 러닝 포드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선생님께 우리가 현재 느끼고 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좀 더 세심하게 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화에 신경을 써달라 이야기하고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이미 뉴욕시 교육청에까지 제출한 나의 홈스쿨링 신청은 처리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학업적인 성취를 생각한다면 지금으로서는 홈 스쿨링(그리고 이미 시작한 이 러닝 포드)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방법을 찾아보자며 아이를 아이를 다독였다.



이 즈음.

아이에게 전에 본 적 없던 이상한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엉덩이가 가려워

자기 방을 만들어 준 뒤로, 한 번도 한밤중에 찾아온 적이 없는 아이가 갑자기 오밤중에 못 참을 정도로 엉덩이가 가렵다며 새벽에 우리를 깨웠다.


그러더니, 며칠 후부터는 잠들기 전에 엉덩이가 가려워서 못 자겠다고 호소할 정도로 원인 모를 가려움증이 심해졌다. 오밤중에 찬물로 목욕을 다시 하고, 얼음팩을 대주며 원인모를 아이의 고통에 답답해하는 저녁이 이어졌다. 아이는 아이대로 잠을 못 자고, 우리는 우리대로 걱정과 수면부족으로 피폐한 아침을 맞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낮에도 바지를 입혀 두면 엉덩이가 가렵다며 한 걸음마다 게다리 춤을 추는 듯한 이상한 포즈를 취하기 일쑤였다. 얼핏 보면 마치 다리가 불편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포즈를 반복하는데...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아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이상한 모양 만들지 말라 다그쳤는데...

"엄마! 엉덩이가 너무 가려워서 못 걷겠어..."라며 울상을 짓는 것이 아닌가.


병원을 가기도 찜찜한 코로나 시대에, 인터넷 항해를 통해 아이들에게 '회충'이 생기면 항문 가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소아과에 데리고 가서 검사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 끝에 찾아간 소아과에서도... 회충 관련 아무런 소견도 없는 것은 물론 외견상으로 피부에 어떤 이상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가려움 귀신이 엉덩이 붙어버린 것일까.



거칠거칠.
사포같이 변해버린 너의 피부

처음에는 손목에 작게 생겼던 아토피가 갑자기 몸 전체로 번진 것은 물론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긁어서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기고, 손톱으로 긁은 피부들이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이태리타월처럼 거칠거칠해져 갔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이 정도로 심한 피부 질환을 앓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 몸을 끌어안고... 저녁마다 보습제를 바르고, 얼음팩을 대주며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만 치는 시간이 이어졌다.

왜 갑자기 이런 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식생활과 생활환경에서 원인을 찾아보려 애쓰며 먹이는 음식들에 대한 일지를 쓰고, 침구를 바꾸고, 이 병원 저 병원 옮겨가며 진료를 받았다.



아이의 몸에 생기는 이상한 변화들이 점점 심하게 악화기로에 접어들 즈음.

그날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러닝 포드 수업에 다녀온 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가슴이 답답해."

"왜?"

"모르겠어."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음.. 아니 재미있었어. 아 근데 엄마, 있잖아..... 안네가 나에게 계속 소리를 질러."

"(아...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안네가 또 그랬어? 왜?"

"자기가 하라고 하는 걸 내가 안 한다고... 나한테 자꾸 소리 지르면서(shouting) 말해."

"안네가 왜 그럴까...? 안네에게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싫다고 말해본 적 있어?"

"응, 근데 그렇게 말하면 내 말을 안 들어. 내 말이 안 들리는 척을 해."

"음... 선생님께 이야기해 보면 어때?"

"선생님은.. 내가 그런 이야기하면 나를 혼내."

"아냐.. 혹시 네가 설명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엄마가 전에 선생님께도 말해두었는데..."

"오늘도 나한테 안네 mean(나쁘게)하게 군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거 말하지 말라고 혼났어."


하루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좋았다고도 하다가, 또 나빴다고도 하는 만 일곱 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말을 모두 다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며칠을 지켜본 결과 뚜렷하게 몇 가지 포인트가 이야기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이 안네라는 아이 때문에 괴롭다는 것.

아이가 선생님의 상황에 대한 대처에 마음을 기대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

그간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했던 플레이 데이트 중, 내가 직접 눈으로도 보고도 몇 가지 이해가 어려운 안네의 행동들이 있었기에 ( 예를 들어, 내가 아이 이름을 부르는 한국어 말투를 따라 하며 웃는다던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툼이 있자 빈이를 발로 차서 울린 뒤에 '쟤는 좀 배워야 해요'라고 말한다던지... 등등) 점점 상황이 과연 해결 가능한 수준인가 의문이 생겨났다. 과연... 이 문제를 과연 안네의 부모와,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보호자이자 어른인 선생과 함께 해결이 가능할지, 가능한 방법은 무엇일지..... 잠 못 이루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러닝 포드에서 근처 공원에 아이들이 다 같이 가서, 그곳의 생태계와 식물들에 대해서 배우는 일정이 잡혔다. 시간이 맞는 부모가 한 명 함께 가야 했는데, 마침 아이들의 대화를 직접 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혹시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간절한 마음에 참석한 그 날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날씨는 참 좋았다. 조금은 어두운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섰지만, 보는 것 만으로 막 좋아지는 그런 가을과 겨울의 중간 어디 즈음의 파란 하늘에 비관적인 마음은 접어 넣고 희망을 갖고 가보기로 했다. 실내를 벗어나 좋은 날씨에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아기 강아지처럼 다들 마냥 신이 났다. 가는 길에도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며 끝없이 떠드는 만 여섯 살 남짓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 넷을 보고 있으니... 그간 심각하게 한 나의 고민이 과연 그럴만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로 지난밤에도 나와 남편에게 안네 때문에 가기 싫다고 울던 아이도, 햇볕이 주는 에너지와 엄마도 함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딘가 든든해 보이는 마음으로 신이나 조잘대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공원에서 생태계 수업을 듣고 돌아오던 길 까지만 해도... 별 문제없어 보이니 다행이라며 마음속의 걱정의 싹을 열심히 지우고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집 근처로 거의 다 걸어왔을 즈음, 뉴욕 시민들의 또 다른 발이라 불리는 시티 바이크 CITY BIKE를 세워 놓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엇! 저기 City Bike다! 있잖아~~~ C는 [스~] 하는 소리가 날 때도 있는데, [크~]하는 소리가 날 때도 있더라고. K처럼! 그럼 신데렐라는 C로 시작할까, K로 시작할까?"

별거 아닌 작은 일도 친구들에게 조잘조잘 떠들고 싶은 나이. 한동안 못 만난 또래 친구들이니 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더 많이 떠들고 싶은 나이의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던졌다.


"넌 우리가 baby(아기)인 줄 알아? 그런 질문을 던지게?

제이, 얘가 지금 우리한테 신데렐라가 무슨 알파벳으로 시작하냐는데? 어이없지 않아?"

그리고 안네는 다른 친구 제이(가명)의 손을 이끌며 우리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같이 비웃기 시작했다.

"넌 그것도 몰랐어? 베이비야??"라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어른인 내가 곁에서 듣기에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이 상황에 아이가 의연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엄마인 내가 곁에 있는데도 멈추지 않는 안네의 놀림과 비아냥은 참 잔인했다. 당황스러움과 뭐라 할 수 없는 마음에 굳어버린 나의 곁으로, 눈물이 그렁해진 아이가 내 곁으로 와 손을 잡으며 조용히 나만 알아듣게 한국말로 속삭였다.

"엄마... 이런 거예요. 내가 말했던 게...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그 후 몇 차례 러닝 포드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직접 가서 아이들의 대화를 관찰한 결과...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상의 대화 속에 안네는 의도적으로 말을 무시하거나, 본인이 지정한 특정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하다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따돌리는 등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부모인 내가 그 자리에 있음에도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터질 때까지 몰아붙이는 안네의 어찌 보면 대담하기까지 한 행동은, 같은 공간에 있는 러닝 포드 선생님의 어떤 가이드도 받지 않으며 점점 심화되고 빈번해지고 있었다.

이제 막 사회성을 길러나가고, 규칙을 배우는 7-8세의 아이들 사이에 이런 문제는 어쩌면 어디서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단, 그 과정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가이드를 주고 Conflict (의견 충돌)이 Bullying(괴롭힘)의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적절한 어른의 개입과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인 것도 사실인데...

이 러닝 포드의 선생은 아이들 간의 작은 의견 충돌이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비화되는 상황 내내 곁에 있으면서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나의 구체적인 설명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도 이런 식의 답변만을 할 뿐이었다. "아, 진짜요? 안네가 그렇게 말했어요? 뭐.. 안네는 선생인 나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요 뭐. (어쩌겠어요?라는 제스처와 함께...)"


아. 도대체 그동안.

작은 아이가 보낸 시간은 어떤 시간들이었을까.

너에게 좋은 시간이기를 바라고 보낸 시간이 지옥이었던 걸까.

친밀감과 소속감 대신, 모멸감과 외로움을 배우고 있었던 걸까.


그간의 원인 모를 아이의 여러 가지 신체 반응과 아이가 해온 말 들의 연결 고리가 눈 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던 엉덩이의 가려움과, 아토피, 불면증은 아직 감정이나 상황의 표현이 미숙한 아이의 힘들다는 표현들이었던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날 오후.

러닝 포드의 선생님이 보낸 주간 리포트가 도착했다. 아이들에게 SOCIAL STUDY의 일환으로 이런 것들도 가르치고 있다며 보낸 주간 리포트 속 사진 속에는 이런 문구가 보였다.

"Speak kindly to others. 타인에게 친절하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를 하루 중 일부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기며 아이들의 교사로 존중하던 그녀에게 정말 이걸 가르치고 있던 것이 맞는지, 그리고 그 '러닝 포드'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정말 이걸 배우고 있던 것이 맞는지 묻기로 했다. 그리고 안네의 엄마에게, 그 가정에서 중요시하는 타인에 대한 태도의 원칙이 무엇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