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맨해튼의 돼지엄마

그리고 그녀의 아이

by 맨모삼천지교

"돼지엄마"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처음 이 단어를 듣고, 다소 살집이 있지만 귀여운 핑크색 피부의 엄마를 일컫는 말인가?라고 오해했었다. 그래도 하고 많은 동물들 중에 듣는 엄마 속상하게 왜 돼지인가 싶었는데. 실제 이 단어가 말하는 의미는 귀여움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것이었다.

돼지엄마

: 학원가에서 쓰이는 속어로 강사, 학원 등을 좌지우지하는 학원생들의 대표 엄마.
새끼돼지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하여 이러한 속어가 생겼다.

그냥 단순히 생각처럼 아이들을 학원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학부모 모습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돼지엄마는 그런 수준을 능가해 아예 학원가와 다른 학부모들을 한 손에 넣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조직 보스라 보면 쉽다. 실제로 시스템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주로 이들은 서울과 경기도권에 상주하고 있고, 분당신도시, 일산신도시, 평촌신도시, 목동, 대치동, 삼성동, 중계동 등을 일대로 구역별로 학부모와 학원을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한 블록만 넘어가도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말도 그렇고 사실상 학부 모판 조직폭력 그룹인 셈.
폭력만 없을 뿐 모임에 가담하지 않은 학부모에겐 협박 등을 일삼고
비정상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학교라는 공적인, 그리고 중립적인 기관 밖에서 생겨난 사교육의 공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일컫는 말인 이 단어의 뜻을 마주하며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돼지들이 생각났다. 누군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다가 점점 게걸스러운 돼지로 변해버린 엄마와 아빠를 보고 놀라던 센의 모습도. 사교육 시장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는 엄마의 모습도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돼지'라는 단어가 추한 의미로 세상 가장 소중한 단어인 '엄마'의 뒤에 붙어 버린 걸까. 씁쓸했다.


download.jpg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미지 출처: 구글

그런데 난,

바이러스로 학교가 멈추어 버리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부모들도 일하기 어려워진 뉴욕에서 새로운 학년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 세계 사교육의 1번지이자.... 헬리콥터 맘의 원조들이 살고 있는 뉴욕에서. 그래도 나와는 다른 반경에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돼지엄마'를 만나게 될 줄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습격을 받게 될 줄은 말이다.



처음 공립학교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의 학업 수준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을 때, 러닝 포드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같은 반 친구였던 제이의 엄마로부터 받게 되었다. 고민 끝에 일단 처음은 잘 모르는 다른 구성원들을 만나서 보고 생각해 보기로 했었고, 일종의 엄마들의 소개팅 같은 느낌의 첫 만남의 장소에서 안네의 엄마 세이지(가명)를 처음 만났다.


까르띠에의 팔찌를 겹겹이 하고 다니는 화려한 엄마류의 사람도 아니었고, 귀 밑까지 오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짧게 자른 손톱이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이후 탄력근무를 하며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라는 그녀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재택근무를 이어오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것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공립학교가 아닌 맨해튼에서도 가장 학비가 비싸다는 사립학교에 여섯 살과 네 살 두 아이를 보냈었던 것.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그 사립학교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1년에 두 아이를 합쳐 1억 5천만 원 가까이 학비를 내야 하는 사립은 그만두고 공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입학이 까다로워 일단 들어가면 고등과정까지 다니는 것은 물론, 아이비리그로도 수많은 학생을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라 그만두었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안네가 온라인 수업을 정말 싫어해서 방법이 없었고, 일하면서 두 아이를 집에 다 두고 수업을 봐주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말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일하며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또한, 어쩌면... 본인의 회사일을 하면서도 대학병원 의사인 남편의 직업 때문에 남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이 혼자 저글링을 하느라 애쓰는 중인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과거의 언젠가의 내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다.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집에 오며, 같은 침대를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남편을 두고,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빌려야 할 손은 수도 없었던 시기 속에 서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날 처음 만난 그녀에게 같은 엄마이자 일하는 여성으로의 안타깝고 애처로운 마음을 전했다. 그래서 만난 지 오래지 않았지만, 금세 이야기는 물 흐르듯 흘러갔었다.

공립학교로 아이를 전학하며, 교육 수준을 우려하며 러닝 포드를 병행하기로 했다는 그녀는 여러 가지 강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꼭 들어오면 좋겠다며 강하게 설득 중이었다. 세이지는 그 전에는 우리 아이를 본 적도 없지만, 이미 지난해 같은 학급이었던 제이의 엄마를 통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지 "꼭 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빈이가 욕심나서 강요하고 싶어!"라는 재미있는 말을 건넸다.


늘 학교의 각종 행사를 도맡아 진행하던 제이의 엄마의 초대로 참석했던 나는, 당연히 어디에서나 주인공을 자처하는 제이의 엄마가 리더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교육]이라는 이슈로 주제가 바뀌자 주인공이 안네의 엄마라는 것을 알아채고 내심 신기했다. 러닝 포드를 만들어야겠다며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엄마들을 끌어모은 것은 제이의 엄마였지만 막상 선생의 면접과 리뷰를 포함한 모든 활동은 세이지가 주도하고 있었다. 중국어 내니를 쓰며 만다린을 배우고 있는 세이지의 두 아이들은, 방학중 수학 과외 선생만도 다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두 명을 함께 고용하여 1학년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닝 포드에도 추가로 교사들을 더 고용하자는 등의 운영 관련 아이디어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세이지의 주도로 선생님의 면접부터 계약까지 다 완료된 후였고, 우리가 참석한 그 날은 그렇게 고용된 선생과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미팅 날이었다. 선생의 면접과 계약서류의 전달 및 각종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아이들의 학용품, 공부 공간에서 사용하는 집기 등등)의 담당을 자처한 것도 그녀였다. 그리고, 첫 미팅 날부터 향후 3개월 정도 호스팅을 하겠다고 나선 것 역시 안네의 엄마였다. 모두 그녀의 부지런한 싹싹함에 Thank you를 연발했다. 수업이 시작된 뒤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서 부모들에게 전송해주는 것도 그녀였고, 선생에게 채팅방을 통해 끊임없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녀였다. 전직 교사였다는 안네의 할머니(세이지의 시어머니)로 하여금, 고용한 러닝 포드의 선생이 교육 플랜을 리뷰받도록 한 것 역시 그녀였다.

business-2820658_1920.png mohamed_hassan의 이미지 by PIXABAY/ 실제 세이지는 이보다는 머리가 좀 짧다.

맨해튼 한가운데, 고층의 넓고 쾌적한 집.

교육자 출신의 시어머니와 의사인 남편. 보장된 고소득의 직업과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리고 아이가 둘인데도 집에 먼지 한 톨, 물자국 하나 없는 그녀의 집처럼 완벽 해 보이는 세이지의 생활.

그런데. 그 속에서, 딱 한 가지 굉장히 의외의 부분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이, 안네였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느낀 이질감은.... 후에 이어질 큰 문제의 징후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러닝 포드 시작 첫 주.

금요일 오후. 아직 여름의 잔기운이 남아 있는 공기가 따뜻한 9월을 즐기며 루프탑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피자를 시켜 아이들은 뛰어다니다 한 조각씩 손에 들고 먹고, 어른들은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느긋한 주말을 기다리며 자유의 여신상 뒤로 넘어가는 석양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빠들까지 함께 모여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홈스쿨링 신청 방법, 필요한 서류 등을 함께 논의하는 사이 아이들은 서로 몰려다니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무리에서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제이, 혹시 빈이 보지 못했니? 빈이 어디 있니?"

제이가 가르치는 손 끝에 있는 파티션으로 가보니 아이가 앉아 울고 있었다.

친구와 울기도, 웃기도, 싸우기도 하는 나이 만 여섯 살 반. 그래, 만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과 그럴 수 있지... 라 생각하며 다가가서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한테 말해봐."

"안네가, 나는 지금 줄지어서 하는 놀이 하기 싫은데.... 자꾸 그거 하래. 그거 안 하면 나는 같이 못 논다고 저리 가래..."

아직 서로 많이 친한 사이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부모들이 조금 개입해서 놀이를 정리해주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세이지에게 다가가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지금 (이러저러하게 애들이 놀다가 등등 설명...) 한 것 같은데, 안네에게 좀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세이지가 안네를 불렀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세이지가 안네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대략, 빈이가 울잖아~다른 놀이 좀 하면 어때... 이런 이야기 같았다) 점점 이런 엄마의 이야기에 안네가 반항하며 지르는 소리의 크기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울고 발을 구르며 난리가 났다. 세이지는 뭐라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도 안네의 흥분과 괴성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곁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세이지의 남편이자, 안네의 아빠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Just Shut Up, Be quiet!(아... 좀.. 닥쳐. 조용히 하라고)"

엄마가 안간힘을 쓰며 아이를 어르는 것인지 달래는 것인지 모를 애를 쓰고 있는데, 이 모든 소음과 난리가 너무나 꼴도 보기 싫다는 아빠의 태도. 의사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고 아무리 고려하더라도,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울고 떼쓰는 자신의 아이를 향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단어들이었다. 모두가 아이를 보면 눈에 하트를 띄우며 웃어주던 어른들이 넘쳐나고 자신의 아이에게는 SWEET HEART, MY LOVE를 연발하는 아빠들만을 만나던 우리에겐 실로 아주 오랜만에 본 차가운 얼음 같은 그런 어른이었다.


그 날, 결국 엄마가 이야기하면 할수록 데시벨이 더 높이며 잔디밭에 드러누울 정도로 울고 난리가 난 안네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고 판단을 했는지 세이지 손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안네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다시 서로 어울려 놀기 시작했고, 서럽게 울던 빈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 거리며 다시 뛰어다니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이가 잠시 울었던 사실도 금세 잊고 금요일 저녁이라는 즐거움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 사람 말이야. 안네 아빠. 미국 와서 만난 미국인 아빠들 중 제일... 좀 그랬어. 그 사람. 그렇지??"

"그러고 보니.. 그렇네? 아이한테, 그것도 자기 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심지어 모두 앞에서 그런 단어 써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 나도."


그리고 그 날 저녁 늦게 세이지는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아까 인사 못하고 왔네.
오늘 안네가 잠잘 시간이 다 되어 좀 피곤했던 것 같아.
먼저 왔어. 나중에 보자.

나는 답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 그런 날 도 있지. 나도 아이 엄마니 그런 상황 이해해. 다음 주에 봐.


이 때를 되돌아보면 이제는 너털웃음이 먼저 난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앞으로도 무수히 일어날 수많은 빈이의 눈물과 울분의 사건들 뒤에도 늘 우리는 [ 안네가 배가 고파서 좀 짜증이 난 상태라]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적이 없다] [두 아이가 성향이 비슷해 그런거다] 라는 세이지의 변명만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미안"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친절하고 사려깊은 세이지가,

돼지엄마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나무 위키- 돼지엄마*


https://namu.wiki/w/%EB%8F%BC%EC%A7%80%EC%97%84%EB%A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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