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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Nov 04. 2021

나와는 다른, 너의 뉴욕.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날씨가 좋은 11월의 가을이다.

기다리던 단풍도 들고, 추운 겨울 전에 야외 활동을 만끽할 시점이기도 한 요즘. 아이는 학교가 끝난 후 집에 갈 생각이 없이 한 시간도 넘게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로 뛰어다니며 놀기 바쁘다. 언제나와 같이 신나게 친구들과 시소를 타며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서있는데, 함께 노는 무리 속 한 아이의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거셨다.


"어머. 아이가 학교 새로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적응을 잘하나 봐요."

"아.. 이제 한국 들어온 지 두어 달 정도 되었나 봐요. 학교는 다닌 지 한 달 정도 되었어요."

"어머. 해외에서 오신 거예요? 어디요?"

"뉴욕이요."

"와... 좋았겠다. 뉴욕, 우리 애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인데. 그립겠어요"

"그렇죠. 많이 그리워요."

그때, 운동장을 휙 한 바퀴 돌며 엄마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던 아이가 달려와 곁에 서더니 대답을 이어갔다.

"No. I don't. It's so dirty. So many homeless (뉴욕 안 그리워요. 너무 더럽고 노숙자가 많거든요.) "

함께 이야기하던 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버리셨다.



처음 맨해튼에 갔을 때만 해도, 미세먼지가 창궐하는 봄이었던 한국에 비해 공기의 맑음이 코 끝으로 느껴졌었다. 미세먼지로 인한 비염과 눈병과 멀어진 아이는 놀이터를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아이를 데리고 가는 곳마다 언제나 웃음과 따스함으로 배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모르게 굽어 있던 어깨가 펴졌었다. 5번가의 화려함을 즐겼고, 트라이베카의 고즈넉함을 사랑했고, 배터리 파크의 아름다운 강가를 매일 뛰며 건강해졌었다. 작은 도시 안에 뺴곡하게 들어찬 수많은 매력들은 쉴 새 없이 얼굴을 바꿔서, 호기심의 끈을 놓을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두고 "더러워요. 그립지 않아요." 라니. 뉴욕의 친구들이 들으면 기절할 말이지 않은가. 한국행을 결정하고, 뉴욕이 그립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해왔을 때만 해도 "어떻게 뉴욕을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그런 것만 기억할 수가 있어. 너 이런 것도 했고 저런 것도 했고, 여기도 갔었고, 저기도 갔잖아~그건 진짜 뉴욕에 밖에 없는 거야. 여기가 얼마나 멋진 곳인데." 같은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내놓았던 나였다. 좋은 것들을 다 놓아두고 안 좋은 단면만 그렇게 크게 기억하는 것도 안타깝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유모차를 끌고서 어떻게든 뭐라도 하나 더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부질없어진 것 같은 마음에 서운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이해의 문을 열어준 건, 귀국 후 처음 집어 들었던 정세랑 작가님의 에세이였다.

... 그런데 막상 맨해튼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것은 쓰레기와 쥐밖에 없었다. 기껏 뉴욕에 데려가 준 결과가 쓰레기와 쥐라니, 엄마가 알면 어이없어할 테지만 아마 열 살짜리의 눈높이가 바닥에 가까워 더 강렬했던 게 아닐까?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뉴욕에 쓰레기, 쥐, 인종차별만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디즈니 월드에서도 사람들은 욕을 하며 아시아 어린이에게 침을 뱉곤 했었다.
-from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에세이/ 위즈덤 하우스 -


한참을 키웠는데도 이제 겨우 120cm를 조금 넘은 꼬마의 눈에 더 가까운 곳은 쓰레기와 쥐가, 그리고 정체불명의 녹색 물웅덩이가 즐비한 도로라는 사실을, 이 구절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10대 소녀로 맨해튼을 찾았던 정세랑 작가님의 눈에도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는 뉴욕의 바닥.

더 어리고 작은 내 아이에게는 더 가까웠을 땅바닥.

나에게는 수많은 브랜드들의 깃발과, 높이 솟은 독특한 건물들이 더 가까이 보이던 소호가, 아이에게는 울퉁불퉁 오래된 돌바닥 길과 그 사이의 쓰레기들, 그리고 길가에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던 노숙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나의 시선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해졌다.

가장 기억이 살아 있는 최근 1년간 뉴욕에서 코로나로 인해 격하게 좁아진 활동범위와, Black lives matter 시위로 인해 망가진 쇼윈도들, 많아진 홈리스와 불안해진 치안 속에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던 우리 가족. 그 안에 있던 아이가 마냥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있기를 바란 것도 결국 나의 욕심이었다는 사실에도 미안해졌다.  

비단 이 도시에 대한 기억뿐일까. 생활 속 무수히 많은 것들을, 많은 순간들을. 아이보다 수십 년을 더 산 나는 '엄마인 나의 생각이 맞으니 따르라'며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가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가 해야 하는 역할 속에는 '교육'이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명목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라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 지시를 아이에게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 어떤 것들이, 과연 '꼭 어른에게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었을까? 내가 좀 더 존중해 주었어야 할 아이만의 생각과 시선, 그리고 그 이유를 존중하지 않는 나의 강요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의견을 나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틀렸다]라고 한 적은 없었을까? 작은 아이에게도 이런데, 다른 타인들을 나의 렌즈로만 보고 판단한 일들은 더 많지 않았을까?

그렇게 더럽고 노숙자가 많다는 뉴욕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헤집어댔었다.


그날 이후.

여전히 막 귀국한 우리에게 사람들은 뉴욕이,맨해튼이 어땠냐고 묻을 때마다 나는 "너무 좋죠. 너무 재미있는 곳이라 너무너무 그리워요."라고 말하고 아이는 "전 싫어요. 더러워요. 쓰레기도 많고 노숙자가 많아서 난 한국이 더 좋아요."라고 상반된 답을 내놓는다. 뉴욕에 대한 아이의 답에 의외라며 갸우뚱 거리는 사람들 곁에서 이제는 나는 그저 웃는다. 그리고 종알종알 대답을 이어가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되뇐다.


'나와 달라도 괜찮아.  너에게도 지금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아도 좋아. 언젠가 삼십 대의 네가  도시를 게되어서…그 곳에 살던 30대의 엄마와 같은 눈높이가 되었을 때. 그 때 한번 새로 느껴보고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래도 다르다면? 그대로도 좋아.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나와 다른 생각의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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