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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Dec 08. 2023

어떤 색깔의 가위를 줄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우리가 좋아하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뉴욕의 우리 집은 9층.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의 집은 18층.

당시 아이 베스트 프렌드의 엄마는 둘째를 출산 한 뒤, 기존에 하고 있던 사업을 접고 뒤늦게 정신과 상담의 쪽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학교를 다니느라 여념이 없던 시기였다. 남편 역시 막 시작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전미로 넓혀가느라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라 육아를 전담해서 도와줄 손길이 필요했기에, 오페어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오페어'란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아이를 돌보면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입주형 베이비시터]를 의미한다. 한국식으로 보자면 '입주형' 이모님이라 해야 할까.


미주나 유럽의 거주 생활비가 비싼 지역( 예를 들어 뉴욕이나 런던)에서, 부모들은 값싸게 젊은 보모들을 고용하고 젊은이들은 숙식을 해결하는 일자리의 하나로 많이 사용한다.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주로 미국의 대학생들이, 뉴욕에서는 영어를 배우거나 돈을 벌러 온 남미(ex-콜롬비아)또는 유럽(프랑스, 영국) 대학생들이 이와 같은 형태로 1-2년 비자를 지원받으며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원룸 스튜디오도 한 달에 최소 300-400만 원 가까이하는 뉴욕 맨해튼에서는, 이렇게 방 하나를 받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지만, 주말에는 뉴욕라이프를 즐기는 오페어들이 아이들의 육아를 주로 담당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디나 그렇듯, 사람 사는 모습은 다양하기 그지없어서 그중에는 그렇게 머무는 동안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져 결혼 후 쭉 뉴욕에 머무는 경우, 집주인인 아이의 아빠와 바람이 나 가정파탄의 주범이 되거나 사생아를 출산하는 경우, 본업이 유모인 것을 감추고 뉴욕에 거주하는 파워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경우 등등 참으로 다양한 케이스들이 존재했기에 이들의 면면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따로 드라마를 안 봐도 재미가 충분했다. (원래 막장드라마도 남의 일이면 재미있잖아요..? 헛헛헛. )

영화 '블루 재스민' : 상류층의 성공한 삶을 이어나가던 재스민의 남편은 19살짜리 오페어와 불륜을 저지른다.


당시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일하는 형태의 회사를 다니고 있던 터라 하교 시간 이후에는 늘 함께였지만 맞벌이 가정이 훨씬 많은 뉴욕에서는, 꽤 많은 아이들을 픽업하러 오는 사람들은 내니나 오페어들이었기에 아이의 부모들 못지않게 이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중, 가장 자주 만났던 것은 아무래도 같은 빌딩에 사는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집에 있던 오페어 마리아.


검고 굵은 웨이브가 풍성한 전형적인 남미의 여성 마리아는 콜롬비아에서 온, 영어보다는 스페인어가 편한 친구였다. 원래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 회사의 회계팀에서 일했었다는 마리아는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뉴욕 구경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지원하게 되었다고 수줍게 이야기했었다.

가족들이 그립긴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새롭고.. 무엇보다 뉴욕에서 사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날도 여지없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플레이데이트를 하겠다고 조르던 아이들은 18층 아이 친구의 집에서 놀겠다고 했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가까워와서,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저녁까지 같이 먹겠다며 조르는 아이들 때문에 결국 저녁까지 모두 함께 모여 먹게 되었던 그런 날이었다. 마침 만들어 둔 파스타가 있다며, 그걸 같이 먹이자고 말하는 친구 집의 오페어 마리아에게 쌩유베리머취를 날리고, 나도 함께 저녁을 먹기 시작했었다. (애가 놀러 갔는데, 나와 애 저녁까지 기꺼이 대접해 준다니. 지친 하루의 끝에 만나는 이런 사람을 우리는 귀인이라 부르지 않나요? ㅎㅎ)


밥을 먹은 아이들은 또 방으로 들어가 인형놀이를 하며 놀기 시작했고, 뒷정리를 돕던 나는 마리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나 발동하는 인터뷰 본능..)


"미국의 아이들과
(좀 더 구체적으로는 뉴욕의 아이들이겠지만)
콜럼비아의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선택의 차이인 것 같아.
여기서는 아이들이 아주 작은 것을 해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게 다른 것 같아."
"예를 들면?"
"만들기 하면서 가위 하나를 골라도, 여러 개를 보여주며 이 중에서 하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해.
우리나라(콜럼비아)에서는 물어보지 않아.
그냥 어른이 정해서 애들한테 나눠주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며칠 전에 갔던 미술관 워크숍에서 본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하는 수업이라, 입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매직으로 이름을 쓴 스티커를 가슴 쪽에 하나씩  붙여주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스티커 테두리 색깔이 노란색인 것이 있고, 파란색인 것이 있었는데...

"어떤 색 스티커가 좋으니? 어디에 이름을 써줄까?"라며 줄줄이 입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는 그 와중에도 일일이 색상의 선호도를 묻고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던 것. 솔직히, 그때 나는 '시간이 배로 걸릴 텐데.. 진짜 시시콜콜한걸 다 애들 의견을 일일이 물어보네.'라는 생각을 하며 뒤에 서있었더랬다.


그런데, 마리아의 눈에도 같은 부분이 보였다니.


'미국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때로는 불필요할 정도로 ) 다양한 선택지를 받고 있는데,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작게 주어지는 선택지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을까?'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를 꺼내서 나누어 먹으면서,

익숙하게 아이들에게 어떤 접시에 먹을래, 이 접시? 이 포크?를 물어서 기호에 맞춰 좋아하는 색상의 그릇에 케이크를 담아주며 생각했다.


더불어. 이 아이들이 아닌 '나'

나는 좋아하는 색상은 무엇이라고, 다 비슷한 것들 가운데서도 나는 '이것'이 더 좋다고 뚜렷하게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을 소리 내어 말할 기회가 많았던가?



그로부터 4년 후.

서울.


한국에 돌아와 학교 다음으로 가장 먼저 등록한 곳이 미술학원이었다.

집에서 쓸 수 있는 재료들은 한계가 있기도 했고, 분명 그토록 오고 싶어 하던 한국이지만… 적응하느라 마음에 불편함이 가득할 아이가 도화지에라도 가득 풀어내길 바람에 닿은 곳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갖가지 스트레스를 갖가지 그림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다만, 한국어가 허술한 부분이 많아서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잘 따라갈까..?’라는 걱정과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말에 질문을 계속하면.. 안 좋아하시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워낙 주장이 강하고 궁금하거나 하고 싶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 뉴욕에서 이런 부분을 아주 적극적으로 부채질해주는 어른들 덕에 더욱 거대해졌기에 기대 못지않게 걱정도 앞설 수밖에.


그리고 한 두어 달 즈음 다녔을까.

그날은 데리러 간 김에 선생님께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문의를 드렸다.

워낙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해서, 전체적으로 다 같이 동일하게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좋으면 열심히 참여하는데 그게 아니면 참여도가 확연히 떨어진다며 크나큰 자아를 가진 어린이에 대한 걱정을 표하셔서 "(역시 그랬군 ㅜㅜㅜ라며…) 그….. 그러게요.....^^;;;;"라는 답을 간신히 내놓으며 끄덕끄덕 하고 있던 나였다.


그 주간에는 "새"를 테마로 한 만들기와 그리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도화지에 드문드문 그려진 나무와 가운데 나무만큼 크게 그려져 있는 새 한 마리가 떡 하니 있는 우리 아이의 그림을 보고 "이.. 이건 무슨 작품일까요?"라는 질문을 드렸다.


"보통... 대부분의 아이들이 새를 그리라고 하면, 새가 있는 나무나 숲의 배치를 먼저 그리고...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그리거든요. 근데, 처음에 가운데 있는 새 한 마리만 그려서... 이 새가 어디에 있는지, 혼자인지 다른 새들도 있는지 한참을 묻고 물어서 이렇게 완성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 다른 또래 친구들은 전체적인 도화지 내 구성이 이렇게 빈 곳이 없이 꽉 차게 그린다는 말씀이시죠? 배경까지요."


"네, 그런 편이에요. 아.. 따님만 그런 건 아니고... 저희 학원에 따님과 같은 학교(=외국인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가끔 오는데, 이런 부분이 좀 비슷해요. 그냥 주제만 가운데 하나 크게 그리는 경우가 있어서, 주변 구성 요소들을 여러 번 질문해서 이끌어 내야 하는 경우가 잦네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그리고 있는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니,

새보다 훨씬 큰 크기의 나무가 배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고, 그 나무들의 가지에 고르게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백이 없이 조화롭게 가득 채워진 도화지를 바라보다, 아직 여백이 많은 우리 아이 그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둘러싼 [배경]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차이.


새가 사는 풍경과 주변의 '다른 새들'을 함께 고민하며 그 안에 [나]를 그려 넣는 그림과,

[나]를 먼저 그린 뒤 [주변]은 어떤지를 돌아본 그림의 차이는 사실 아이가 살아온 두 개의 전혀 다른 사회의 모습은 아닐까.



미술학원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그 얼마 전 학교 담임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로운 학교로 2학년 학기 중 전학을 가다 보니…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지 걱정이 되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 놀이그룹에 들어가느냐 아니냐가 학교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학기 중간에 전학 간 아이가 큰 걱정이었던 것.

걱정스러운 마음의 바닥에는, 그간 하교 후 학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눈에 들어오는 특이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쓰고 보니. '걱정'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등장하는 것인지...그렇다. 나는 걱정인형...아니, 걱정이 늘 많은 엄마다.)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여자 아이들은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대략 세 그룹 정도로 그 특징을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시장분석하는 직업병은 이런 데서 또…)


그룹 1

의견을 이끄는 리더와

여기에 무리 없이 동의하며 적극 따르는 아이들로 구성된 그룹 하나.

 "우리 이 놀이하자"라고 주동을 하는 아이는 각종 트렌디한 것들(요 또래는 특히 KPOP)을 잘 알고, 새로운 놀이를 잘 알고 있는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주로 그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그룹 2

반면, 이런 제안에 "응, 근데 이것도 같이 하자." 또는 "나는 이거하고 싶은데 어때?"라며 추가적인 의견을 내며 즉각적인 동의는 하지 않고 계속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는 제안을 던지는 아이들 몇몇.


그룹 3

그리고, 난 나만의 놀이를 하겠어.'라는 듯 다수가 속한 놀이 그룹에 전혀 속하지 않는 아이들 그룹이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첫 번째 그룹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쭉 자란 아이들의 많았고,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에는 리터니 또는 아예 외국인인 아이들.


아. 남자아이들은! 아주 속 시원하게 이런 것 없이 그저 축구공이 좋으면 이 그룹, 농구공이 좋으면 저 그룹을 오갔다.(아!! 심플해…!!!! 아, 부러워!!!!)


당시 우리 아이는, 여러 아이들이 노는 쪽에 끼고 싶어 하긴 하지만, 가진 의견이 많아 쉽게 껴지지 않는(?) 애매한 -.,-;;;; 상황. 그래서, 교실 안에서는 어떤지 걱정반+궁금한 점 반... 에 선생님께 조언을 부탁드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쭉 자라서 외국인 학교나 국제학교에 들어온 아이들과, 해외에서 온 아이들이 겉으로는 모두 비슷하게 영어를 쓰며 노는 것 같지만, 아무리 섞으려 해도 물과 기름처럼 묘하게 섞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전하셨다.

이런 장난감이 떠올랐답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

그 안에서 모두 영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가진 아이들 사이에는 묘한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의 이유 중 하나가, '내 의견'을 내세우는지 아닌지에 있는 것 같다는 나의 예상에도 조심스레 밑줄을 쳐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아직 상대를 설득하고 협의안을 찾아내는 과정이 쉽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결국 논의라기보다는 놀이에 [참여하거나, 말거나] 중 하나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이 마련. 결국 길게는 학교 안에서 마음을 터놓는 친구 그룹이 어떻게 되는지를 결정하게 되기도 하기에, 상담 후 마음으로 집을 향했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싶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

.

어쩌면, 한국에서 '아 그만 따지고... 그냥 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이런 이야기들을 나는 아이가 계속 할 수 있도록 (기왕 뉴욕에서 뽐뿌질 된 것....) 잘 가꾸어 주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주변을 먼저 돌아보고 적절히 타협하는 스킬을 먼저 가르쳐야 할까.


서로 중요한 너무나 다른 두 나라를 오가며,

그 환경을 투명한 유리처럼 드러내기도 하고,

어쩌면 유난히 더 도드라져 보이는 아이를 지켜보는 시간이 지나고 한 겹씩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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